순교자의 언덕 몽마르트르(Montmartre)
순교자의 언덕 몽마르트르(Montmartre)
  • 임재훈 목사
  • 승인 2019.01.1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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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미상, ‘생 드니, 루스티쿠스, 엘레우테리우스의 순교’, 목각부조, 파리 몽마르트르 미술관
작가미상, ‘생 드니, 루스티쿠스, 엘레우테리우스의 순교’, 목각부조, 파리 몽마르트르 미술관

1. 갈로-로만(Gallo-Roman) 시기의 교회사가 투르의 그레고리(Gregory of Tours, c.538-594)는 그의 저서 ‘프랑크족의 역사’(Historia Francorum, Decem Libri Historiarum)에서 3세기 중엽 뤼테스(Lutèce, 오늘날의 파리) 지역의 선교사였던 생 드니(St. Denis, ?-c.250)를 언급함으로 초기 기독교회가 로마제국의 엄혹한 박해 시절에도 선교하는 교회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데키우스황제의 박해기(Persecution of Decius, 250-51)에 생 드니를 포함해 일곱 명의 주교들이 갈리아 선교를 위해 로마교회로부터 파송되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당대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등의 여타 서유럽 지역과는 구별될 만큼 그레코-로만 문화의 영향권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세느강 중앙의 시테 섬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하던 생 드니, 루스티쿠스, 엘레우테리우스 세 사람은 로마제국의 황제제의와 충돌하는 것을 원치 않던 토호세력에 의해 당시 로마의 군신 마르스와 상업의 신 머큐리의 신전이 있던 언덕에서 주후 250년경 순교한다.

황금전설(Golden Lgend)에 따르면 참수형을 당한 생 드니가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한동안 걸어가다 숨을 거두었다고 하니, 생 드니를 위시해서 Cephalophores(head-carrier, 자신의 목을 운반하는 사람) 유형의 순교자들에 대한 초기 중세 민간 신앙의 안타까움과 박해 세력에 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앙리 벨쇼르, ‘생 드니의 순교’, 1416, 목판에 템피라/캔버스에 옮김, 162x211cm, 파리 루브르박물관
앙리 벨쇼르, ‘생 드니의 순교’, 1416, 목판에 템피라/캔버스에 옮김, 162x211cm, 파리 루브르박물관

2. 결국 주후 496년 메로빙거왕조의 클로비스 1세(Clovis I)가 상파뉴 랭스대성당에서 신하 3,000명과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 순교자들의 피 흘림이 멈추고 프랑크 왕국 특유의 집단 개종의 기독교화(Christianisierung) 역사가 시작된다.

7세기 다고베르트왕(Dagobert I, 622-638 재위)은 메로빙거왕조 통합의 구심점으로 베네딕트 수도회와 함께 생 드니 무덤 주위에 기념교회를 건축하는 대대적인 현양 사업을 전개한다.

이때부터 생 드니와 위(僞) 디오니시우스(Pseudo-Dyonisius)를 동일시하는 역사적인 혼동이 일어난다.

위(僞) 디오니시우스는 6세기 초반 비잔틴 문화권에서 활동한 신학자로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의 기초를 이룬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선교할 때 회심한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행 17:34)라고 지칭하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근간으로 신과 인간간의 계층(Hierachy) 개념, 이에 상응하는 성례전을 통한 영적인 관계 그리고 인간을 향해 내려오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인간의 상호작용 가운데 신적인 역사(Divine Process)가 성취된다고 보았다.

836년 생 드니 수도원장 알뒤앵(Abbot Hilduin)이 ‘성 디오니시우스의 전기’(Vita St. Dionysii)에서 몽마르트르를 ‘순교자의 언덕’이라고 언급하며 생 드니와 위 디오니시우스를 동일시함으로 이후 중세교회의 혼동은 확고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혼동이 오히려 생 드니 수도원장 쉬제르(Abbot Suger)가 1140-1144년 생 드니 수도원교회를 개축하면서 서쪽 정면 파사드와 동쪽 제단 부분에 적용한 최초의 고딕양식(Gothic Style)을 위한 건축이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쉬제르는 이른바 ‘12세기 르네상스’로 불리는 중세교회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수용은 물론 신플라톤주의 신비신학을 사상적 근거로 유기적인 통합구조와 빛을 통한 천상의 공간의 지상구현체로서 고딕양식을 창안하였다.

한편 몽마르트르 정상에 세워졌던 베네딕트 수녀원(Abbaye des Dames, 1133)의 생 피에르교회(Église Saint-Pierre de Montmartre, 1147)는 여느 교회들과 달리 주보성인인 베드로 외에 제단부가 마리아와 생 드니에게 봉헌됨으로 몽마르트르가 순교 성지(sanctum martyrium)를 품은 곳임을 12세기 이래로 강조해오고 있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춤, 1876, 캔버스에 유화,        131x17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춤, 1876, 캔버스에 유화, 131x17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3. 얼마 전 파리 몽마르트르미술관(Musée de Montmartre, Paris)에 다녀왔다.
화사한 색채와 밝은 빛, 생동감 넘치는 구도, 활기차고 따뜻한 분위기를 지닌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춤’(Bal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의 배경이 된 제분소 풍차가 있는 마당이 기실은 보불 전쟁의 패전과 파리 코뮌의 좌절 이후 1870년 대 파리 시민들이 공허함과 피로감을 달래는 허름한 공간이었음을 전시된 사진이 알려주었다. ‘불유쾌한 것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유쾌하고 예쁜 것만을 그리려한’ 그의 예술세계의 한 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몽마르트르 화가들의 모델이었다가 곁눈질로 그림을 터득해 그녀의 드로잉을 본 드가(Edgar Degas)가 ‘이런 이 아가씨를 보시게! 바로 이거야, 자넨 이제 우리와 한 멤버가 된 거야’ 라고 말했다는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것은 이번 여정에서 누린 호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미 있었던 것은 미술관 제일 첫 번째 방 벽면에 걸린 작가와 연대미상의 목각 부조 작품 ‘생 드니, 루스티쿠스, 엘레우테리우스의 순교’(Martyre des Saints Denis, Rustique et Eleuthère)와의 대면이었다.

멀리 몽마르트르의 상징, 물랭(Moulin, 제분소 풍차)을 원경으로, 바로 가까이 로마의 신 머큐리 상을 근경으로 한 화면의 상단에 생 드니와 함께 참수형을 당하는 조력자 두 사람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현장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장면은 15세기 디종의 작가 앙리 벨쇼르(Henri Bellechose)의 ‘생 드니의 순교’ (1416)의 도상학적 구성의 영향이다.

목각표면을 고부조로 처리하는 데 사용한 기법상의 미숙이라든지 인물들의 디테일 묘사의 투박함 그리고 화면을 채색한 방식 등 여러 면에서 작품성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19세기 당시의 몽마르트, 파리 몽마르트르미술관
19세기 당시의 몽마르트, 파리 몽마르트르미술관

이곳 몽마르트르는 원래 파리지앵(Parisien)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멀리 이탈리아에서 온 선교사 생 드니가 참수된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 이다.

그 근원을 기억하라!
그 근원을 회복하라!
 

 

임재훈목사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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