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교회 시리즈] ①상동교회, 실천하는 신앙인, 민족운동의 중심이 되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교회 시리즈] ①상동교회, 실천하는 신앙인, 민족운동의 중심이 되다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1.03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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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진행된 민족운동

 

제6대 담임목사인 전덕기 목사(왼쪽)와 1901년 완공된 상동교회 전경(오른쪽). 보훈처 제공
제6대 담임목사인 전덕기 목사(왼쪽)와 1901년 완공된 상동교회 전경(오른쪽). 보훈처 제공

수많은 독립운동가 키워낸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 통해 훈련받은 청년들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 등

독립선언서 발표한 민족대표로 성장

전덕기 목사와 상동교회 청년들, 애국운동에 앞장서다

서울 남창동에 위치한 상동교회 1층 현관 오른쪽에 세워진 1984년 6월 17일에 세워진 기념조각물. “상동감리교회 100년의 과거와 영원한 미래”라고 적혀 있다. 정성경 기자
서울 남창동에 위치한 상동교회 1층 현관 오른쪽에 세워진 1984년 6월 17일에 세워진 기념조각물. “상동감리교회 100년의 과거와 영원한 미래”라고 적혀 있다. 정성경 기자

상동교회는 1885년 미북감리회에서 파송 받은 스크랜턴 선교사가 병원을 세워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선교를 통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1888년 10월 9일 창립했다. ‘민중지향적 선교사’라 불렸던 스크랜턴 선교사를 17살에 만난 전덕기 목사는 선교사 부부를 도와 상동교회를 함께 세웠다.

1902년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국 각지의 청년회 대표들을 모아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1903년 당시 상동교회 전도사 신분이었던 전덕기 목사는 상동교회 내에 엡윗청년회를 조직했다. 이는 1889년 독립협회가 해산된 이후 흩어졌던 민족운동가 세력의 재규합이 그 인적토대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엡윗청년회는 성경공부와 토론회, 전도운동 등 종교적 목적으로 조직했지만 청년들에게 애국심과 구국정신을 고취하는데 있었다. 전 목사는 상동교회 내에 중등교육기관인 상동청년학원을 설립, 1904년 10월 15일 개교식을 가졌다. 이후 전국적인 조직체로 발전했다.

1907년 8월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이상설, 이위종. 국가보훈처 제공
1907년 8월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이상설, 이위종. 국가보훈처 제공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매일 저녁 구국집회가 열렸을 뿐 아니라, 상동청년회는 박제순(朴濟純) 등 5적(五賊)을 암살할 모의를 계획했다. 1907년 8월 당시 상동교회 청년회장인 이준을 비롯해 이상설과 이준을 헤이그 특사로 파견하는 것에 영향을 끼쳤으며 자주 독립운동 추진 및 시행에 앞장섰다.

기독교구국단체라 평가 받는 상동청년회와 상동청년학원은 구국청년 1천 4백명이 회원으로 참여해 반일구국운동을 전개했다. 여기에 참여한 인사들을 일컬어 ‘상동파’(尙洞派)라 부른다.

전덕기 목사는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상동교회 담임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상동청년학원에서는 주시경 선생을 통해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한글 보급 운동 등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앞장섰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전덕기 목사를 신민회 창립 핵심인사로 소개한다. 1907년 이회영, 전덕기,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안창호, 윤치호, 양기탁, 이경희, 김구, 최광옥, 김규식 등을 중심으로 조직 발전된 신민회는 교육 계몽, 신식 학교 설립, 신학문 수용 등이 주목적이었다. 활동지원은 상동교회 교인뿐만 아니라 주변 시장 상인, 개신교계에서 이뤄졌으며 또한 만주에 한국 독립군을 훈련할 신흥무관학교 훈련기관 설립에 뿌리를 마련했다. 이후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3.1운동과 상동교회, 민족운동의 중심으로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가 열릴 즈음, 독립운동가들은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청년당의 이름으로 한국 대표를 급파했다. 1919년 1월 18일 파리강화회의가 개막한 사흘 후인 1월 21일에는 고종이 급사했다. 이어 종교계와 학생들이 독립운동 준비에 나섰으며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경, 민족 대표 33인 중 29명이 태화관에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대표들은 독립선언식을 갖고 경찰에 그 소식을 알렸고, 헌병과 경찰에 체포되었다.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교회 지도자였으며 그 중 최석모, 오화영, 이필주, 신석구 등 4명이 상동교회 출신 인사들이었다.

상동교회의 민족교회연구소는 3.1운동의 사상적 흐름의 근원을 전덕기 목사의 목회와 3.1운동 전에 있었던 그의 화려한 민족운동에서 찾는다. 그 이유로 3.1운동의 기본정신을 선포한 독립선언서의 작성자가 평소 전 목사의 강력한 영향 하에 있었다는 사실과, 33인 민족대표 중 16명의 기독교인 가운데 9명이 감리교 대표로 대부분 전 목사의 영향 하에서 전부터 목회와 민족운동을 겸했다는 것이다.

감리교를 대표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이필주 목사는 상동교회의 삼총사 중 한명이었고, 최진사 최석모 목사와 오화영 목사도 그가 27세 되던 1907년에 세례를 받고 감리교인이 된 후에 전 목사의 영향 하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며 3.1운동 당시 그는 종교교회의 담임 목사로 있었다. 신석구 목사는 전덕기 목사와 동갑으로 상동교회에서 가까이 있는 수표감리교회의 목사로 있었다.

이 외에도 민족 대표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3.1운동 거사계획에 참석하고 상해에 가서 본격적 독립운동을 했던 현순 목사 역시 전 목사 밑에서 상동교회 부목으로 활약했으며 또 삼총사의 한 명인 김진호 목사는 배재학당에 있으면서 3.1동의 학생 동원을 맡아서 투쟁했다. 그리고 김구, 이승만, 안창호, 신채호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도 상동교회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상동교회 역사관에는 제1대 목사인 스크랜턴 목사의 사진부터 그때 당시 교회 모형과 나라를 위해 앞장섰던 이들의 기록이 남아있다. 교회 안에 민족교회연구소(사무국장 김종설)를 두고 끊임없이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전덕기 목사가 스크랜턴 선교사에게 들었던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고통 받는 자에게 평안을!”이었다. 복음을 삶으로 살아냈던 스크랜턴 선교사에 이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쳤던 전 목사와 상동교회 성도들.

상동교회는 지난 2018년 창립 130주년을 맞았다. 서철 목사는 상동교회를 ‘생기를 불어넣는 민족의 교회’로 소개했다. 서 목사는 “상동교회는 가난한 민중들에게는 ‘사랑의 생기’를, 나라를 강탈당한 민족에게 ‘독립의 생기’를, 가난한 민중들과 절망한 민족은 상동교회를 통해 ‘희망의 생기’를 호흡했다”며 “상동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생기를 호흡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상동교회의 제 1,5대 스크랜턴 목사(맨 오른쪽)와 제 6대 전덕기 목사(가운데)의 사진 옆에 선 제25대 서철 목사(현 담임). 상동교회의 역사는 진행 중이다. 정성경 기자
상동교회의 제 1,5대 스크랜턴 목사(맨 오른쪽)와 제 6대 전덕기 목사(가운데)의 사진 옆에 선 제25대 서철 목사(현 담임). 상동교회의 역사는 진행 중이다. 정성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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