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水門) 앞에서
수문(水門) 앞에서
  • 장윤재 교수
  • 승인 2018.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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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년의 분단과 반목 그리고 증오의 역사를 털어내려면 먼저 울어야 한다.
함께 울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남북이 함께 손잡고 울어야 한다."

구약성서의 느헤미야 8장은 예루살렘 성의 수문 앞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전한다. 때는 예수님 오시기 약 450년 전이다. 각자 자기의 성읍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전 백성이 이곳에 나아와 일곱 밤, 일곱 날이나 초막을 짓고 대 신앙집회를 열었던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극도의 위기 상황이었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해 포로가 되었다가 새로운 제국 페르시아가 들어섰을 때 그들은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의 귀향과 예루살렘 재건은 순조롭지 않았다. 바벨론에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과 귀향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타향살이 수십 년 동안 혼혈이 된 2세와 3세들은 멸시의 대상이 됐다. 게다가 전통적인 유목경제에 상인경제가 혼합되면서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와 반목이 빚어졌다. 한마디로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의 민족으로 존립하기 어려운 극도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바로 그때 그들은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모든 노력을 다해봤지만 더 이상의 길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전 백성이 수문 앞 광장으로 나왔다. 거기서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청해 들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무려 7시간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됐다. 그런데 성서는 모두가 그 말씀을 듣고 함께 울었다고 했다.(느헤미야 8:9) ‘함께 울었다’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태어났을 때 맨 먼저 운다. 성인이 되면 기뻐서도 울고 슬퍼서도 운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긴 이유는 더 많이 울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이 있던 날 영국은 울음바다가 됐는데, 이후 한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는 환자수가 뚝 떨어졌다. 많이 울었기 때문이다. 울음에는 신비한 치유의 힘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울었다고 했다.(느헤미야 8:8) 사실 그 말씀은 처음 듣는 말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귓등으로 흘려듣던 말씀이었다. 그런데 민족 공멸의 위기 앞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그 말씀을 들으니 깨달음이 왔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그들 앞에 정의와 생명의 길을 내놓으시고 그리로 애타게 부르셨건만, 언제나 보란 듯이 불의와 죽음의 길로 걸어간 자신들의 어리석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울었다. 아마 소리내며 엉엉 울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눈물이 그들의 상처를 치유했다. 그 울음이 갈라진 민족을 하나가 되게 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 앞에서 우는가? 가정과 일터에서 우리는 얼마나 진실로 가족과 동료의 손을 잡고 함께 우는가? 남과 북, 더구나 동과 서로 갈리진 이 민족은 도대체 언제쯤 하나님 앞에서 함께 울며 하나가 될 수 있을까? 73년의 분단과 반목 그리고 증오의 역사를 털어내려면 먼저 울어야 한다. 함께 울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남북이 함께 손잡고 울어야 한다.

 

장윤재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교목실장, 대학교회 담임목사
전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회장
전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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