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의 미라에서 주교를 지냈던 니콜라우스는 주후 270년 12월 6일 소아시아 리치아 지방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일반 학문은 물론 종교에도 훌륭한 교육을 받았지만, 부모를 일찍 여의게 되었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니콜라우스는 대부분의 재산을 자선사업에 사용하고 젊은 나이에 주교로 임명되어 가난한 자들을 사랑으로 섬겼다. 그가 처음 사제가 되었을 당시는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기 이전이기에, 박해를 받아 체포되기도 했지만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이르러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고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 이후 니콜라우스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해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아리우스(Arius)를 이단으로 정죄하는데 기여했다.
니콜라우스는 그리스어 ‘니케’와 ‘라오스’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리스어 ‘니케’의 뜻이 승리이고, ‘라오스’의 뜻이 백성이기에 니콜라우스는 ‘백성의 승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니칼라우스라는 이름은 역사적으로 교황 5명과 러시아 황제 2명이 사용했을 정도로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는 널리 선호된 이름이다.
니콜라우스는 산타클로스의 원형이 된 인물로도 유명한데, 라틴어인 상투스 니콜라우스(Sanctus Nicolaus)를 네덜란드에서는 신터클라스(Sinterklaas)라고 발음했고 영어권으로 넘어가면서 산타클로스(Santa Claus)가 되었다고 한다. 성탄절 때 어린이들에게 니콜라우스의 이름으로 선물을 주는 관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산타클로스가 썰매를 타고 선물을 나눠주는 이미지는 독일 신화에 나오는 토르(Thor)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신화에서 토르는 염소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녔는데, 이 토르와 니콜라우스가 합쳐져 지금까지 루돌프가 끄는 썰매에 올라탄 산타클로스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니콜라우스는 로만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회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공경 받고 있으며,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 소재한 정교회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는 성당 이름에 니콜라우스의 이름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