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친구, 푸(Pooh)’
‘잊고 있던 친구, 푸(Pooh)’
  • 박형철 교수
  • 승인 2018.11.30 00: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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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그리운 계절이다. 문득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갔다는 사실에 놀라며 내 주변의 사람과 일을 돌아본다. 한 해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지, 그 중에서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친하다 생각하는 지인들과 친구들은 얼마나 챙겼는지 되짚어본다. 그리고 뭐 하느라 그리 바빴는지 잘 모르겠지만 1년 동안 전화 한 통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해한다.

때로 일상 속에서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소중한 것들을 ‘화면’ 속의 삶과 관계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의 유우미에게서 나타나는 진정한 친구의 모습은 감동을 준다. 친구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사업을 접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대신 사과한다. 평생을 함께 하며 모든 걸 알고 있는 그녀는 친구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는 휴지통 같은 친구이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도 그런 친구가 그리고 그런 존재(신앙경험)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소중함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자문한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친구뿐 아니라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나에게 잊고 있던 친구가 찾아왔다’ 어른이 되어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한 친구와, 빨간 풍선을 들고 있는 귀여운 곰돌이 친구가 포스터 문구 밑에 함께 서 있다. 디즈니의 라이브 액션(live action)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Christopher Robin, 2018)가 개봉했을 때 많은 어른이들은 반가움을 표시했다. 2018년 최고의 에세이로 뽑히기도 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속 푸의 대사(저자가 ‘곰돌이 푸’)를 보며 지친 삶을 위로받던 수많은 어른이들은 화면 속에서 30년 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고무되었던 듯하다.

동화 속 캐릭터들을 실사화 한 라이브 액션이라는 영화장르를 통해 전달되는 신선함은 매우 중요하다. 다 알고 있는 내용, 대사, 상징들일지라도 사람들은 화면 속 펼쳐지는 새로운 기법과 판타지적 요소들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와 느낌 속에서 새삼스레 감동한다. 그리고 이렇게 방법론적으로 설정된 유리한 조건 아래, 영화 속 소품과 장치들 그리고 인형 친구들의 대사 속 상징들은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이지만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특히, 느린 듯 미련한 것 같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갈 뿐인 푸의 모습과 그의 말 속에서 우리는 느림의 미학 그리고 삶과 신앙의 정수들을 발견한다.

100 에이커 숲을 뛰놀던 아이 크리스토퍼 로빈은 자라서 ‘철이 들고’ 이제는 명품 가방회사 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30년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푸, 피글렛, 이요르, 티거 등 동물친구들이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 우리의 삶과 신앙에서도 어떤 것은 변하지만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다.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가치가 있다면, 너무 쉽게 변하고 잊히는 것들이 있다. 문제는 그 주체가 ‘나’라는 것이다.

동심 속 상상의 세계가 재현된 몽환적 화면 속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신비와 은혜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때의 순수, 초심, 본질, 첫사랑을 기억하고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화면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여전히’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는 푸와 친구들에게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의 그 마음을 지키고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

영화 속 ‘도토리’는 순수와 초심을 상징한다. 어린 크리스토퍼 로빈이 숲을 떠날 때 피글렛은 도토리를 선물한다. 친구들을 잊지 말라고. 하지만 치열한 현실 속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도토리는 가치 없고 쓸모없는 추억 정도로 남는다. ‘풍선’은 일상의 행복, 현재라는 선물, 가족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상징한다. 하지만 “풍선보다 일이 중요해?”라고 계속 묻는 푸에게 어른 친구는 서류가방을 내민다. 그리고 “그게 뭘 해주는데?”라는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고 철이 든다고 착각한다. 모든 걸 알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신앙의 연륜이 자연스레 쌓이고 성숙을 이룬다고 너무 당연히 여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일 갱신되는 신앙이 아닌 종교인으로서의 겉모습만 남는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순수, 초심, 행복 그리고 삶과 신앙의 소중한 가치들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우리는 ‘길을 잃은’ 크리스토퍼 로빈이다. 결국, 나침반이 필요한 건 푸가 아니라 크리스토퍼 로빈과 우리이다.

우리의 변하지 않는 친구 푸의 입을 빌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아무것도(nothing) 안 하다 보면 대단한 뭔가를(something) 하게 돼”이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 푸, “느려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푸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평안과 위로 그리고 섭리(providence)를 느끼는 건 너무 감성적인 걸까? 내가 뭔가 대단한 것을 하려고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푸처럼 하루하루를 살고, 순수를 살고, 초심을 살아갈 수 있다면? 푸가 가장 좋아하는 날인 ‘오늘’이라는 선물을 감사함으로 붙잡고(seize the day)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려 살아갈 수 있다면 진정한 카르페디엠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30년 동안 매일매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문 앞에서 사랑하는 친구를 기다리는 푸의 모습 속에서, 그리고 한 공간에 있어도 함께 할 수 없는 친구를 어디에선가(somewhere) 항상 기다리는 푸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오래된 친구를 발견한다. 평생이 지나도록 언제나 끊임없이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 내가 어디를 가도 그 어디에든(everywhere) 함께 있는 친구, 때로 나는 잊고 있어도 나를 절대로 잊지 않는 친구, 임마누엘 주님 말이다.

 

 

 

박형철서울여자대학교 특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형철
서울여자대학교 특임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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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부르스 2019-02-12 21:37:06
와~~ 푸를 다시 찾아보고싶네요^^*
임마누엘...아멘-!!

와우 2018-12-06 20:11:30
하루 중 가장 따스함을 전해주는 글이네요~~!! 이런 글과 마음을 담아내실수 있는 교수님의 믿음이 정말 와닿아요.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동그리 2018-11-30 22:10:39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ㅠㅠ
임마누엘 주님이 "느려도 괜찮아."라고 위로해주시는것 같아요~

쥴라이 2018-11-30 21:57:08
영화를 봐야겠네요..그저 옆에 있어주는 친구가 그리운 밤입니다

필그리임 2018-11-30 21:22:37
Carpe Diem in Chris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