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회,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의 희망
작은 교회,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의 희망
  • 김찬주 지역기자
  • 승인 2018.11.2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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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빌리목회지원센터 현창환 목사

현창환 목사는 그때 목사가 되기 싫었다. 그래도 교회 어른들이 “너 목사하면 잘 하겠다” 고 칭찬하면서 신학을 하라 자꾸 권했다. 경제학 전공으로 좋은 은행에 자리를 잡았지만 밤이면 신학교엘 갔다. 신학 공부를 마쳤는데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다. 갈급한 마음으로 주를 알기 위함도 아니고, 소명을 받아서도 아닌, 주변의 권유와 ‘그래? 그럼 한번 해보지’ 하는 마음으로 목적 없이 시작한 공부라 그런 것 같았다. 더구나 당시 IMF가 터져 월급이 많이 삭감되었는데도 공동의회 자료를 보니 담임목사 월급과 부교역자 월급을 합해야 겨우 자기 월급에 미칠 정도였던 교회 형편을 알게 됐다. 더욱 이 길은 아닌 것 같았다.

은행에 근무하던 시절. 어려움을 모르던 시기였다.(사진 제공)
은행에 근무하던 시절. 어려움을 모르던 시기였다.(사진 제공)

직장에서 대출 업무를 맡고 있어 알게 된 일도 한 몫 했다. 대형 교회에서 건축을 하면서 교인들의 작정 헌금을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게 하고 은행 대출로 받아내게 하는 것을 보았다. 교회가 대출을 받으면서 연대보증인으로 건축위원장인 장로를 세우고 교인들이 대출을 받아 헌금을 내게 하면서 정작 담임목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지어놓고 영광은 담임목사가 다 받고 교인들은 빚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게 교회란 말인가? 회의도 생겼다.

어느 날 몹시 허름한 옷을 입고 너무도 조심스럽게 대출계를 찾아와서 자기 직업이 무언지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말도 잘 못하고 3백만 원만 대출을 받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는 한 남자가 찾아왔다. 어렵사리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가난한 교회 목사였다. 소득증명이 안 되니 대출은 불가능했다. ‘돈이 없으면 일을 하지 뭐 하러 목사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냉정하게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대출계 담당을 하면서 돈의 힘을 절감했다. 최고급 식당, 최고급 유흥 시설을 다니며 접대를 받았다. 잘 나가는 인생이었고 ‘하나님보다 돈’이었던 시절이었다. 결혼도 했다. 내 인생은 상위 10% 안에 들어간다고 자신했다. 낮은 곳, 실패하는 인생을 몰랐다. 은행을 그만 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편의점을 두세 개씩 경영하면서 창업 컨설턴트로 정부 지원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컨설팅도 해줬다. 한 달에 십일조를 백만 원씩 할 정도로 풍요로웠다.

그런데 자녀를 얻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내에게 습관성 유산이 계속 됐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던데 나는 왜 그 당연한 임신과 출산이 안 되는 걸까? 남들은 선포하고 기도하면 되던데 나는 왜 그것도 안 되는 걸까? 신과 인생과 생명을 주제로 한 고민이 시작됐다. 하나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갈급함이 마음에 왔다. 습관성 유산 전문병원을 다니느라 삶의 터전도 아예 서울로 옮겨버렸다. 그때가 30대 후반이었다. 아내는 다섯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갖게 되었고 큰 아이를 출산했다. 어렵게 얻은 아이니 그 소중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한 통에 십만 원씩 하는 수입 분유를 먹여 키웠다. 한 달 백만 원짜리 영어 유치원도 보냈다. 아내는 다시 한 번 유산의 경험을 한 후 둘째를 가졌고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을 허락하셨다. 모두 여섯 번의 유산을 경험한 끝에 갖게 된 귀하고 귀한 아이들이었다.

진리 등대이신 하나님께로 가는 길로 들어서게 해준 귀한 두 아들이다. (사진 제공)
진리 등대이신 하나님께로 가는 길로 들어서게 해준 귀한 두 아들이다. (사진 제공)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에서 어려움을 겪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싶었고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심을 굳히고 아내의 동의를 얻어 신대원 공부를 시작했다. 결심하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고난이 찾아왔다. 그간 투자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고 사업을 해도 망해본 일이 없는데 하는 일마다 다 망하고 안 되고 손해보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쳐왔다. 사업을 하면서 벌어놨던 돈도 아이 갖느라, 학비 대느라 다 써버리고 수중에 남은 것도 없는데 되는 일도 없었다. 신대원을 마치면 유학을 가려고 재정 보증을 30만 불이나 제출하고 비자 인터뷰를 해도 두 번이나 거절을 당했다. 시애틀에 있는 선교센터에서 동역을 하자는 제의가 있어 그 길이 열리나 했더니 그것도 현지 사정으로 무산되고 이력서 넣는 곳마다 안 되고 심지어 친한 친구가 수석부목사로 있는 교회에 지원을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개척을 하고자 했으나 아내의 반대에 부딪혔다. 친정 가족 중에 개척교회를 하고 있는데 교인이 얼마 되지도 않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개척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작은교회 박람회' 현장 (사진제공)
'작은 교회 박람회'가 열린 현장의 모습.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어려움에 눈뜨게 됐다. (사진제공)

1년 반 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용인 지역 목회자 모임에 나가게 됐다. 가서 들어보니 미자립 교회의 형편이 너무 열악했다. 미자립 교회 목사들은 소득이 낮으니 소득 신고를 하면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도 받을 수 있고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도 받을 수 있는데 아무런 지원을 못 받고 있는 형편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이것을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살고 봐야지, 밥은 굶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2015년 6월에 생명평화마당이라는 NGO 단체를 만났고 매년 가을마다 감신대에서 주최하는 ‘작은교회 박람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3년간 봉사를 하게 됐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초청해서 교회 사역을 홍보하고 연대를 돕는 일이었는데, 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전국의 작은 교회를 찾아다니다 보니 목회자들의 형편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계층 월세 지원 등 다양한 복지 혜택이 있는데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홈텍스 신고 방법을 몰라 소득증명이 안 되니 아무런 지원을 못 받고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거였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 대출계를 찾아왔던 그 허름한 차림의 목사님을 차갑게 거절해서 돌려보낸 일이 계속 생각났다.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그리고 정말 미안했다. 그렇게 은행 대출이 안 되면 그 다음 수순은 현금 서비스, 카드론, 전화대출이다. 25%의 이자를 내며 채무 조정이 안 되는 상태에서 야간 대리운전, 택배, 건물청소 등의 일을 하며 고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대개는 전세 보증금을 빼서 상가를 얻는다. 그 다음은 집 월세와 교회 임대료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가난이 몰려오고 각종 적금, 보험 등을 다 해지해버려 아파도 마음 편히 병원 한 번 갈 수 없는 어려움이 닥친다. 작은 교회,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렇게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데 교단 차원에서의 지원은 유명무실하다. 사실 대책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인 과세 강의 중인 현창환 목사. 눈높이에 맞춘 쉽고 실제적인 강의를 한다.(사진 제공)
종교인 과세 관련 강의를 진행 중이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눈높이를 맞춘 강의로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사진 제공)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고 우여곡절 끝에 2018년부터 종교인 과세법이 시행됐다. 종교인 과세는 현 목사에게나 미자립 교회의 어려운 목회자들에게나 복음과 같은 좋은 소식이다. 그런데 노회, 연회, 지방회, 시찰회 등으로 종교인 과세 시행에 관한 강의를 나가보니 많은 목회자들이 세법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부분의 강의와 자료들이 세무사, 회계사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으니 일반인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득 신고를 안 하면 가산세도 낸다는데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교회를 잘 아는 사람이 설명해 주고 도와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스스로 소득 신고를 하고 싶어도 많은 제약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상황임을 알게 됐다.

현 목사는 유학과 시애틀 선교사의 꿈이 좌절되고 난 뒤 장래 일을 계획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 계획한 대로 되지도 않을 일을 놓고 뜻을 세운다는 것도 의미 없고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산다. 그런데 목회자들의 형편을 알게 되고 마음을 열어 내밀한 경제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해오는 목사들을 만나다 보니 이들을 정말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 이 일이 정말 필요하고 제가 이 일 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필요할 때마다 그 분야에 사람을 붙여주세요. 그러면 이 일이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일인 줄 알겠습니다’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일단 도움이 필요한 주변의 목회자들을 위해 임의 단체를 만들고 ‘쥬빌리목회지원센터’라 이름을 지었다. 쥬빌리(희년)는 땅을 잃은 사람들에게 ‘50년 후에는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의미를 갖는다. 개척교회 목사들의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그런 의미에서 희년의 희망이 된다고 생각했다.

일을 시작하니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형편이 어려운 작은 교회들의 법률적인 문제들을 무료로 돌봐주겠다는 변호사, 개인회생 및 파산 신청 등의 일에 무료로 상담을 해주겠다는 전문가, 사모나 목회자 자녀들의 심리 상담을 돕겠다는 상담사, 목회자 자녀들의 유학을 수수료 없이 돕겠다는 유학원 매니저, 자신의 영업 이익을 남기지 않고 5만 원 이하의 실손 보험을 설계해서 돕겠다는 보험 설계사,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의 설계로 노후 문제를 돕겠다는 연구소 등이 재능기부로 돕고 함께 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쥬빌리목회지원센터의 회원을 최소화해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회원 200명이 넘어섰고 도움이 필요한 목회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상담을 요청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니 목회자가 30만 명이라고 한다. 전국 구석구석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숫자의 목회자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현 목사는 사단법인 설립을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정부지원사업은 행정기관을 통해 지원을 받고 관리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이런 배경에서 폭 넓은 정보와 플랫폼 구축, 정부지원사업에 유리한 위치에 있으려면 제도적 정치가 필요하다. 개인 자격으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제약 상황이 너무 많다. 사단법인이 설립되면 중앙 본점과 광역시를 중심으로 지점을 설립하고 지역마다 자립자활센터를 열어 목회자들을 도울 수 있다. 현재 2백여 명의 회원들이 전국에 퍼져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떤 궁핍한 이야기를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넉넉함은 어려운 시절을 지내온 덕분인 것 같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현창환 목사는 자기를 가리켜 오후 5시에 포도원 주인을 만나 일자리를 얻은 그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은혜를 나누고 싶고 희망을 말하고 싶다. 현재 교인 수 30명 미만인 교회는 무료로 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후원 형편이 나아지면 무료 상담 범위도 100명 미만의 교회로 확장하고 싶다. 유학 비자를 거절당하고 마지막 남은 돈으로 작은 교회를 돕겠다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완전히 다 망하고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들기를 수없이 반복했던 시절도 있었다. 큰 아들이 냉면을 사달라는데 그거 사줄 돈이 없어서 애가 할아버지에게 받은 용돈에 손을 대고 간신히 한 그릇 값을 만들어 사먹이고는 돌아서서 많이 울기도 했다. 10억 재산을 다 날리고 단돈 6,7천원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 지금 이 일을 하면서 목회자들의 생활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 살고 있는지, 정체성의 혼란마저 가져오는 극심한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목회자들에게 마중물 역할을 해주고 싶다.

목회자 월 사례비 및 소득 변동표(자료제공-현창환)
목회자 월 사례비 및 소득 변동표 (자료제공-현창환)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실시한 목회자 월 사례비 및 소득 변동표를 보면 목회자들의 개인 소득은 줄어들었는데 가정 소득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사례비 외의 목회자 개인 수입이 늘어난 것은 목사들의 이중직이 늘어났다는 것이고 가정 소득이 늘었다는 것은 가족들이 생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회의 80%가 교인 수 1백 명 미만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는 목회자가 얼마나 될지,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이제는 돈에 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장 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라고,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현 목사는 주장한다.

유학을 가면 ‘4천 년 전 희년제도, 현 자본주의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싶었다. 만약 유학을 가서 박사논문을 썼으면 자기 잘난 맛에 가난한 목사들을 난도질하며 얼마나 시건방을 떨었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유학의 길을 막으시고 현실에서 그 답을 찾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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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수 2018-11-27 01: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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