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신앙의 관점에서 본 담임목사직 세습
역사와 신앙의 관점에서 본 담임목사직 세습
  • 가스펠투데이
  • 승인 2018.02.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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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신학포럼' 진행

 

홍지훈 교수가 명성교회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신학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홍지훈 교수가 명성교회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신학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8일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장신대 교수모임 주관의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신학포럼 및 연합기도회'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주요 현안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

 

기독교 역사 2000년은 ‘신앙의 역사’인 동시에 ‘교회의 역사’다. 교회(church)라는 용어는 에클레시아의 번역인데 '기관‘의 의미가 강한 용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루터는 교회(Kirche)보다는 공동체(Gemeinde)라는 용어를 선호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독일 루터교는 교회 공동체(Kirchengemeind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기관' 또는 '기구'로써 가시적이지만, 그 본질은 '공동체'로써 불가시적이다. 공동체는 그 공동체를 이끄는 '정신'이 있는데, 비가시적인 정신을 가시화하는 일이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다. 따라서 2000년 기독교의 역사 또는 교회사는 반드시 기구로서의 관점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끄는 '정신'의 관점에서 관찰해야 한다. 그 정신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다.

마찬가지 논리이지만,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었는지 되묻는다면, 같은 대답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뿐만이 아니라,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존재하였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품었던 예수의 신앙이다. 그 정신이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흔적을 남겼는지를 추적하는 작업이 오늘 우리가 모여 논의하는 '담임목사직 세습'에 대한 역사신학적인 비판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사실 '대물림'이란 생물학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전이라는 것은 후손의 책임이 아니다. 만일 당뇨나 고혈압 또는 특정한 암이라는 질병이 가족력에 포함되면, 후손에게 이런 질병이 대물림될 확률이 매우 높다. 후손이 자신의 가족력을 알면, 그 질병을 안 물려받으려고 열심히 운동하고 식습관을 바꾸며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게 된다. 동시에 대물림은 재산상속에서도 크게 작용한다. 재산을 크게 물려받는 후손은 좋겠지만, 가난을 물려받는 후손은 가난 탈출과 자수성가를 꿈꾸며 노력한다.

'대물림'을 생물학적이라고 한 이유는, 좋던 싫던 대물림은 존재하고 이에 대한 수용과 거부가 그 반응으로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질병이든 사업체든 유산이든 모든 일에는 대물림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후손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므로 담임목사직을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일도 '당연히' 시도하는 유전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질병이나 가난이라면, 절대로 안 물려받으려고 할 것이고, 권력이나 재산이라면 물려받으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던져야 하는 질문이 바로 이런 '대물림' 과정 속에서 '예수의 정신'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년 교회의 역사를 예수의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보자고 한 것은 '교회론'의 문제로 세습 문제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습이 문제가 되기까지 그 전에 더 많은 교회론의 문제가 누적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의 정신을 본질로 삼고 2000년 역사를 이끌어 왔는지 되물어야 한다. 대물림의 수용이나 거부의 기준이 자기 사랑(amor sui)이었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amor Dei)을 잊은 것이다. 예수의 신앙이 작동하면, 하기 싫은 것도 하게 되고, 하고 싶은 것도 안 하게 된다. 율법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 복음이 생물학적 대물림의 법칙을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사 속에 남긴 복음의 흔적이 중요하다.

거대담론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를 기관이나 기구로만 여겼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 4세기의 기독교 공인과 국교화는 전형적인 기독교 제국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지배이념으로 등극한 기독교는 기구로써 존재할 뿐, 예수의 정신을 점점 상실해가는 기구교회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잠깐 프라하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 1371~1415)가 남긴 말을 들어보자. “나는 자신의 악한 욕망 때문에 어렸을 때 빨리 사제가 되어 좋은 집에 살며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성경을 알게 되면서 그것이 악한 욕망임을 알았다.”*

성경이란 최초의 기독교적 정신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후스의 고백은 14세기 말의 기독교 상태와 사제직의 성격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최초의 기독교 정신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온 제국교회의 계급적 교권 아래에 함몰된 예수의 정신을 성경을 알고 나서 깨닫기 시작하였다는 후스의 고백은 교회의 머리가 누구인지를 묻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적어도 종교개혁은 본질에서 멀어진 교회 제도를 제자리로 되돌려놓으려는 회복적 시도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성경에 드러난 복음을 기준으로 “악한 욕망”의 껍데기를 제거하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는 더 이상 프로테스탄트도 개혁교회도 아니다. 종교개혁과 개혁교회가 극복하려 했던 문제는 '성직자 중심주의'(Clericalism)였다. 루터가 주장한 만인 사제직(Priestertum aller Gläubigen)은 성직자 중심적 교회와 계급적 성직 제도의 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신앙의 세계 속에서 중심은 그리스도뿐이고 그 외의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프로테스탄트 방식으로 건축된 예배당도 이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단이 정 중앙에 있고 신자들은 그 주위에 둘러앉는다. 로마 가톨릭 예배당이 긴 구조로 계급적인 자리 배치를 지향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직분은 신분도 계급도 아니다. 담임목사직의 대물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직분을 신분으로 둔갑시키는 '악한 욕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결정에 따른 직분 선출 과정을 거쳤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는 반증이 된다. 대물림이란 심지어 프로테스탄트 운동과 개혁신학이 걸었던 목숨 값을 가벼이 여기는 처사이다.

AD 590~604년 사이에 재위한 그레고리 1세 교황을 우리는 기억한다. 로마의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안락한 삶을 던져 버리고 수도사가 된 그는 교황의 자리에 오르지 않으려고 애써 피했던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수호자였으며, 자신을 '하나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불렀다. 성직자들의 도덕적 수준을 고양시켰고, 순결 서약을 강화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자기의 신분이었던 귀족의 지위를 버렸다. 하지만 중세 1000년간 교황 중심의 로마 성직자단은 종교권력을 넘어 세속 권력에까지 욕심을 부렸다. 그리고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에게도 '가문'이라는 것이 등장하였다. 대부분 교황이 귀족 출신이었고, 전 교황의 친인척이거나 사생아 교황이 다수 등장한 것은 종교권력의 독점이며 일종의 대물림의 역사이다.

루터가 출생할 때의 교황의 알렉산더 6세(재위 1492~1503)인데 본명은 로드리고 데 보르지아(1431~1492)이다. 주교와 추기경을 거쳤으며, 선대 교황 갈리스토 3세(재위 1455~1458)의 조카였다. 심지어 그는 2명의 정부(情婦)에게서 9명의 사생아를 낳았다.** 그중에 체사레(1475~1507)는 19세의 나이로 추기경을 역임하였다. 다음 교황 비오 3세도 비오 2세 교황의 조카였다. 병들고 늙어서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죽자, 다음 교황인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가 선출되었는데, 그 역시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조카였다. 3대 연속 조카 교황의 사례였다.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면죄부가 가장 극성을 부리던 시기도 이 시기였고, 베드로 대성당이 건축되던 시기도 이때였다.

루터의 비판이 가장 날카로웠던 시기의 교황은 레오 10세(재위 1513~1521)였다. 본명이 조반니 데 메디치(1475~1521)로 피렌체의 지배자며 위대한 로렌초로 불리던 메디치의 둘째 아들이었다. 막강한 아버지를 둔 조반니는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를 다녔고 문학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13세에 추기경이 되었고, 37세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역대 가장 사치한 교황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로 재원을 마련하였다.

다소 길게 교황의 역사를 소개한 것은 '종교가문'의 결탁이 어떤 결말로 달려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 권력에서 나와 세속 정치를 이용하여 또 다른 권력으로 이어지는 교황선출의 역사는 비단 로마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1000년간이나 직분을 신분으로 바꾸는 생물학적 유전을 거듭하도록 방치하고 심지어 독려한 결과가 똑같은 방식으로 500년 역사를 달려온 프로테스탄트 안에서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우리가 항의하기(protest)를 멈춘다면 말이다. 만일 우리가 계속 개혁하기(semper reformanda)를 멈춘다면 말이다.

역사의 의미는 과거 인식을 통하여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역사 학습의 근본적인 목적은 “비판력 증진”이다. 그리스도인은 일반 역사를 넘어서 신앙의 역사를 비판적인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앞서 기구화된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의 정신을 대비시킨 것도 껍데기와 본질을 구별할 줄 아는 비판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물이 담긴 컵을 예로 들자. 목적은 갈증 난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이지만, 컵이 없으면 물을 담아 놓을 수가 없다. 반대로 아무리 비싼 컵을 가져와도, 담을 물이 없거나 썩은 물이라면 그것 도한 아무 의미가 없다. 기구화 된 교회는 컵이고, 물은 그 속에 담긴 예수의 정신이다. 컵은 컵의 역할을 해야 하고, 물은 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뒤바뀔 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다. 역사의식과 비판정신은 본질과 형식이 뒤바뀐 것을 알아채고 반성하여 개선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2000년간 교회는 패러다임을 바꾸어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던 최초의 제자들은 고대교회를 형성하였고, 고대교회는 교부들을 통하여 교회 전승을 힘겹게 이어갔다. 콘스탄티누스의 공인과 더불어 등장한 중세 로마교회는 스콜라 신학과 함께 제국교회를 만들고 교황과 성직자단 중심의 교회 패러다임을 완성하였다. 종교개혁운동은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패러다임으로 지역중심의 교회구조를 선택하였고, 이는 국가교회의 출발을 알렸다.

우리 한국교회는 유럽의 근세적 기독교 경험이 없다. 정통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경건주의 운동이 각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기독교 역사를 이끌었던 경험 없이 교파별 기독교를 미국으로부터 전수받았다. 오랜 세월 다양한 경험이 뒤섞인 채로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전해 받은 한국 기독교가 분파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 것이나 개별 교회 중심적 기독교가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전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이제 개별교회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회와 총회라는 상위 기구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공공성의 상징이다. 교회의 공적 역할이 강조되는 이 시기에 노회와 총회의 감독과 치리가 공적이지 못하면, 교회는 교회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퇴보하고 만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성직자 중심주의의 벽을 허물었다면, 개혁교회의 정치구조는 철저하게 대의 민주적 협의체를 구성하게 만들었다.*** 만일 개별적인 교회의 결정이 우선한다면 역사는 거꾸로 흘러가는 셈이 되고 만다. “담임목사직 대물림”이라는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2000년 기독교 역사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뒤흔드는 문제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욕심이 충돌하는 신앙의 현장 속에서, 생물학적 유전인 ”악한 욕망“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고 복음이 이끄는 ”역설적 선택“을 하는 역사적 비판정신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 Tomas Butta, 이종실 옮김, 『체교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만나다』, (동연 2015), 22.

** P.G. Maxwell-Stuart, 박기영 옮김, 『교황의 역사』, (갑인공방 2005), 192.

*** Hans Küng, 이종한 옮김,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분도 2001), 720~721.

 

홍지훈 교수(호남신학대학교 종교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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