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칼럼]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
[주필칼럼]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
  • 이창연 장로
  • 승인 2018.11.14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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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 그 곳으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 천상병은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경기도 의정부에 살던 말년에 그는 해질녘이면 단골 술집에 들러 혼자서 막걸리 한두 잔 걸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당시 단골 술집의 주모는 할머니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단골 술집을 바꿨다. 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뻔히 들여다보던 부인이 슬쩍 물었다. “새로 가는 술집주인은 젊은 여자인가 보죠?” 시인은 아이처럼 화들짝 놀랐다가 늘 아내에게 했듯이 “문디 가시나 --”라고 입을 삐쭉거리며 대꾸했다. “새로 가는 술집은 잔이 더 크다 아이가.”

작고한 시인의 부인이 운영하던 인사동 ‘귀천’ 이라는 찻집에서 사적으로 들려준 이야기다. 남몰래 술잔크기를 재보면서 속으로 득의양양했을 시인의 순진무구한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그의 술 욕심은 무욕(無慾)에 가깝다. 그런데 천상병이 단골술집을 바꾼 것은 한 시인의 일화에 그치지 않는다. 천상병의 술잔은 문학의 존재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천상병은 홀로 마시는 술잔의 크기에서 자족(自足)의 환희에 도달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원했던 문장을 쓰게 된 작가의 희열뿐만 아니라, 홀로 조용히 문학작품에 감동한 독자의 눈물과 다를 바 없다.

천상병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천상병은 서울대상과대학을 나온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아 몸이 망가졌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였다. 급기야는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년)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그 다음 날”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저승 가는데 돈이 든다면 나는 여비가 없어서 저승에도 못가나”라고 읊었던 그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일 수 밖에 없다.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 이 우주에서 강력한 분이 나의 빽 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그러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 ‘귀천’은 1970년 발표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시는 생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 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니 필자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무더운 올 여름, 홀로 막걸리 한잔에 입맛을 다셨던 천상병을 그리워하듯이.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 그 곳으로.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CBS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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