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목회] 한량을 위한 변명
[예술과목회] 한량을 위한 변명
  • 박혁순 목사
  • 승인 2018.1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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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루가 떨어지는 은행나무를 넋 놓고 바라보다 신호를 놓칠 뻔했다. 마침 뒤에 대기 중이었던 차가 가볍게 경적을 울리는 바람에 나는 다시 기어를 넣고 출발했다. 자연을 관조하거나 ‘멍 때릴’ 수 있는, 잠시의 짬을 허락하지 않는 도시생활. 그렇게 능률과 속도라는 현대문명의 가치에 우리는 매시간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간다.

‘나무를 바라보기.’ 문득 오늘 이것이 나에게 생각거리, 곧 선불교에서 말하는 ‘화두’(話頭)가 되었다. 실제로 당나라 말기 날카롭고 참신한 화두로 세상에 깨침을 이끌었던 조주선사는, 어느 승려가 불교의 근본진리를 묻는 화두인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을 때 “뜰 앞의 잣나무”라 대답했던 예가 있다. 아니, 불도(佛道)가 겨우 “뜰 앞의 잣나무”라니! 이에 대해 나는 분석하고 싶지 않다. 다만 불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현재로 체험하는 진리의 현장” 정도의 코멘트를 드려야겠다.


또한 한자로 ‘한가할 한(閑)’자(字)를 보자면 문틈(門)에 나무(木)가 보인다. 이를 통해 상상해보건대, 대청마루에서 앉아 마음을 내려놓고 대문 밖 나무를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 ‘한가하다’는 것이 아닐까? 바람에 흩날리는 가지를 따라 마음도 흩날려 보고, 산새 한 마리 내려앉을 때 그 가벼운 무게감을 느껴보고, 모시적삼 서걱거리는 소리 같은 나무의 노래에 시름을 잊어 보는 것, 그것이 뜰 앞의 잣나무 또는 문틈으로 보이는 나무와 함께 세계의 실상을 체험하는 일환이 아닐는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길에 있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만유에 깃든 신성, 아니 만유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이다. 온통 선교와 목회에 골몰했던 바울마저 교회에 보내는 서신 가운데 불현듯 독특한 문장 하나씩을 부연 없이 남겨 놓은 적이 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6) ;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1) 영민한 신학자들은 이 구절 등을 통해 ‘초월신론’을 극복하는 ‘만유재신론’을 정초하는데, 문제는 그러한 신학적 진술들이 우리의 삶에 요구되는 새로운 시각과 감수성으로 깊이 안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유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이 얼마나 놀라운 진술인가? 우주 도처에서 또는 우리 삶의 현장에서 숨 쉬고 있는 하나님의 현존,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 우리가 이 한 가지 사실을 깊이 각성한다면 이 세상에서 허투루 보고 허투루 만날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나와 마주하는 모든 것들, 내 망막에 맺히는 만상(萬狀) 가운데 누가 계신다는데! 하여 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한량’(閑良)이 되었으면 한다. 돈 잘 쓰고 잘 노는 사람으로서의 한량이 아닌, 문틈으로 엿보이는 뜰 앞의 잣나무에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또 ‘어짊’[良]이 있는 사람.


오래전 내 아들이 제 두 발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을 즈음이 생각난다. 어느 화창한 주일에 아들은 교회 앞마당을 기어가던 풍뎅이 한 마리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더랬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친 풍뎅이에 제 나름 호기심과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을 터였다. 아들은 풍뎅이에, 또 아비는 그런 아들에 흥미를 느껴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개구쟁이 한 녀석이 다가 오더니 풍뎅이를 발로 밟고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황당하기 그지없던 순간, 나는 목사로서 교회학교 학생에게 무어라 훈계해야 할지 어떠한 말을 만들 수 없었다. ‘너도 나중에 풍뎅이로 태어날 거야!’ 할 수 없으니, ‘풍뎅이를 밟아 죽였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을 거야!’ 해야 했을까? 인간의 ‘영적인’ 생명 이외에 말할 것이 별로 없는 교회의 현실을 깊이 고민해 본 계기였다.


한량이 되어 금가루 흩날리는 은행나무를 감상하자, 뜰 앞에 서있는 잣나무를 응시하자. 거기에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표정을 만나자. 그리고 우리 자녀들과 함께 그 경험을 나누자. 함께 앉아 바람을 맞으며 문틈으로 엿보이는 나무의 춤을 감상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행여 아이로부터 ‘엄마, 저 곳에서 예수님이 춤을 추어요!’, ‘아빠, 하나님이 춥겠어요!’ 하는 말이 들려온다면, 들에 핀 백합과 하늘 나는 새를 보며 천국을 그린 예수님의 제자로서 제격일 것이다. 

 

박혁순 목사 창신교회 담임 창신대 겸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혁순 목사
창신교회 담임
창신대 겸임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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