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에세이]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 김제우 청년
  • 승인 2018.10.2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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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한 절망이 있어야만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죽어야 살 수 있다.
십자가의 부활이 전하는 메시지는 죽음으로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김제우 청년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강릉예향교회/바람길교회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에는 공통된 지점이 있다. 하나, 종교적 고백에 있어서 경험은 고백에 우선한다. 둘, 종교적 담론에 있어서 고백은 담론에 우선한다. 다시 말해 경험이 있고나서야 고백이 존재하고, 고백이 있고나서야 담론과 체계화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는 초대 교회의 가장 큰 과제였다. 예수님을 옆에서 지켜본 사도들의 경험은 삼위일체니 영지주의니 하는 이론과 주장들 이전에 존재하던 것이었고 더욱 강렬한 무엇이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구성원들의 경험은 다양한 서신과 저술에서 보이듯이 고백으로 진화했고 이후 공의회에서 교리와 담론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한국 교회는 이렇게 중층적으로 경험과 고백 그리고 담론을 넘나드는 통전적인 신앙인을 양성하고 있을까?

먼저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다. 자신감을 조금 보태 말하자면, 나는 위와 같은 경험과 고백 그리고 담론을 어려서부터 넘나들 수 있었다. 강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목사님이신 아버지의 목회를 보며 강렬한 종교적 경험을 했다. 시골의 약하고 작았던 교회가 평화가 넘치고 건강한 공동체로 성장하기까지의 처절한 팔딱거림은 나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또한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담론을 탐구했다. 내가 악의 문제를 질문하면 우리는 밤을 새워가며 어거스틴부터 디트리히 본 회퍼까지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대학에 진학해 서울에 올라와서는 청년들 10여명이 섬기는 작은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이 교회에서는 누구보다 나와 신앙적인 차이가 있지만, 누구보다 열린 생각을 가지신 목사님과 다양한 신학적 관점과 사고를 나누었고 개방적인 태도로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 열린 논의의 장은 내가 성경을 보며 경험한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는 고백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도와주었고, 나는 이제 지금 여기의 담론을 고민한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국교회는 어떤 청년들을 양산하고 있는가? 한국교회가 만들어내는 청년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감각적이다. 조용한 사색과 고민이 들어갈 틈이 없는 채 방언과 CCM의 홍수 속에서 신앙적 갈증이 갈증인지도 모른 채 감각적 자극으로 신앙을 채워가고 있다. 경외로 표상되는 종교적 경험은 소음의 자리가 아닌 외로운 광야의 자리에서 싹틀 수 있다. 다음으로 천편일률적이다. 한국교회에서 공식적인 코스를 성실하게 밟으며 자라난 청년들은 십일조를 잘 내고,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친구들을 존재로 보지 않고 전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앞의 문제들 각각에 대한 찬반을 차치하고, 그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공장제 신앙인들이다. 맹목적이고 폐쇄적인 고백은 교회 담장 밖의 눈물과 절규에 무심하고, 복음의 고백과 담론은 교회 밖을 넘어서지 못한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그래서 어떡하라는 것인가?”,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소리만 쏟아내면 끝이냐?”, “너만 운 좋았던 거냐?” 이렇게 내게 묻는다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충언과 기독교를 향한 사랑을 오해하지 마시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모든 청년들이 존경해 마지않을 만한 목사님 아버지를 가질 수 없고, 모든 청년들이 자유롭고 개방된 공동체에 소속될 수 없다. 나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이야기가 단지 쏟아내기 위한 냉소적인 조소는 아니다. 이런 시구가 있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한국교회는 정직한 절망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자꾸만 몇몇 개교회의 교육 운동과 새로운 움직임을 과대평가하며 생존의 결심만 다짐한다.

우리 이제 한국교회가 청년들을 길러내는 데 무능했음을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양육방식에 사망선고를 내리자. 정직한 절망이 있어야만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죽어야 살 수 있다. 십자가의 부활이 전하는 메시지는 죽음으로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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