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70주년, 국민은 버림받았다.
여순사건 70주년, 국민은 버림받았다.
  • 박세홍 기자
  • 승인 2018.10.23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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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등 기독교인의 피해도 커
진영논리가 빚은 역사적 비극

10월 19일은 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꼭 70년이 되는 날이다. 제주 4.3사건은 미디어를 통해 많이 다뤘지만, 그와 유사한 성격의 여순사건은 아직도 말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운지 조용하다. 여순사건은 여수에 주둔한 제14연대에게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제주는 서북청년단과 응원경찰(육지경찰)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 소식은 여수 사람들에게도 들려다. 제주는 조선 시대 수백 년 동안 전라도에 속했던 섬이었다. 같은 지역민이 학살을 당한다는 소식은 여수 사람에게 전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지역 출신이 대부분인 14연대 군인들에게 제주 4.3사건에 투입되어, 그 잔학함에 동참하라는 명령은 쉽사리 수긍하기 어려웠다.

 

사건의 경과

14연대 내에 동요가 일었고, 14연대 안의 김지회, 홍순석, 지창수 등 좌익 계열 간부들이 반란을 일으켜 경찰서와 관공서를 장악하고, 순천뿐 아니라 전남 동부 6개 군을 점령했다. 여수 순천지역에서는 좌익계열 인사들을 주축으로 인민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경찰에 의해 고문과 폭력을 당했던 좌익 인사들은 우익인사와 경찰관을 보복 살해했다.

10월 21일 정부는 여수와 순천지역에 계엄령이 발효했고, 본격적으로 반란군과 진압군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고, 24일 진압군은 여수 전 지역을 탈환했다. 이 과정에서 군인과 민간인 포함해 적게는 2,000여명, 많게는 5,000여명이 넘게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진실화해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반란군에 희생당한 민간인은 189명이지만, 진압군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은 무려 2,043명이나 된다. 민간인 희생의 약95%가 반란군이 아닌 진압군에 의해서 자행되었다.

반군 동조자로 의심받아 진압군에 구금된 어린 학생들 사진=미국 사진기자 고(故) 칼 마이던스
반군 동조자로 의심받아 진압군에 구금된 어린 학생들 사진=미국 사진기자 고(故) 칼 마이던스

역사의 평가

일본이 망하고 등장한 건국준비위원회(회장:여운형)는 치안유지는 물론 친일 청산, 남북 단일정부 수립, 소작료 3.7제(지주가 3, 소작농이 7을 분배하는 제도)를 과제로 정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는 50%가 훨씬 넘는 소작료를 내야 했던 농민들에게 희소식이었다. 건국준비위원회는 갈수록 좌경화되고,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미군정청은 이승만을 내세워 건국준비위원회를 압박했다. 압박이 심할수록 점점 좌파는 음지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새롭게 정권을 쥔 이승만 정부는 정치기반 마련을 위해 친일파와 기독교를 이용했고,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쏟아냈다. 물론 대화가 안 되는 북한과 단일정부를 수립할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이런 이승만의 행동은 민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제주 4.3사건이나 여순 반란 때, 많은 주민이 반란군 쪽에 서게 되었다. 여순사건 이후로 정부는 개인의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사형 등 중형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학교마다 학도호국단을 만들었으며, 강력한 반공 정책을 폈다. 이를 통해 친일파 청산과 단일정부 수립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처형된 시신을 지키는 부녀자들사진=미국 사진기자 고(故) 칼 마이던스
처형된 시신을 지키는 부녀자들사진=미국 사진기자 고(故) 칼 마이던스

순교의 피

앞서 말했듯이 기독교는 반란군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당시 순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동인과 동신은 도망치라는 친구들의 권고에도 신앙의 싸움이라면서 피하지 않았다. 예수를 버리면 살려주겠다는 협박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사형장에서 총살로 어린 생을 마감했다. 손양원 목사는 반란군이 진압되고,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형장에서 구해 자기 아들로 삼아 그 생명을 살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후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들 말고도 담양교회 양동휘 집사, 함평교회 박병근 장로, 봉래교회 김창일 전도사가 이 사건으로 순교했다.

아직 여순사건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반란인가? 항쟁인가? 하는 경계에서 팽팽하게 줄다리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이 시기 좌익과 우익의 진영 싸움에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는 점이다. 여순사건은 극단적 진영논리가 역사적 비극을 낳았음을 기억하고,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는 귀한 역사교재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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