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을 버리고 뜻을 향해 달려간 흑곰북스 2부
안정을 버리고 뜻을 향해 달려간 흑곰북스 2부
  • 황교진 객원기자
  • 승인 2018.02.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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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에 적응한 출판 운영과 기획

1부에서 교리 교육에 탁월한 콘텐츠를 공급해 보기로 한 흑곰북스의 탄생 과정을 다루었다. 부부가 전세금을 빼서 차린 출판사라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흑곰북스가 기존 기독 출판계와 다른 크리에이티브를 이어서 소개한다.

 

흑곰북스 첫책 《특강 소요리문답》
흑곰북스 첫 책 《특강 소요리문답》

 

특강 소요리문답만나다

가제본을 받았을 때 기억을 잊지 못한다. 4도 컬러의 책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동안의 땀과 눈물이 배인 뿌듯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 두꺼운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일은 저질렀고 돌이킬 수 없는 길에 섰다. 약간의 자포자기 느낌도 일었다. 그 불안과 의구심은 곧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페이스북 홍보를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특답이(황희상, 정설 부부는 첫 책을 이 애칭으로 부른다)를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밤늦게 페이스북에 올린 특답이 사진은 아침에 공유 230개를 기록했다. 당시 황희상 저자의 페친 숫자가 300명 수준이었으니, 엄청난 반응이었다.

 

책에 대한 애착으로 진행한 흑곰북스의 유통 방식

책 판형이 크다 보니, 제본소 마당에 쌓여 있는 규모를 본 순간 심장이 덜컥 했다. 대체 이 많은 초판 분량을 어디다 어떻게 다 소진시키나. 다행히 거실을 빌려 준 친구가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날마다 셋이 모여서 갑론을박을 했다. 유통과 영업에 경험이 없고, 가진 것을 다 쏟아 부어 만든 책이라 한 권 한 권을 신중하게 판매하고 싶었다. 일단 기독 총판을 통하지 않고 일반 물류 업체를 알아보았다. 지금은 개선됐지만 당시만 해도 기독 물류업체들 중에 책을 세밀하게 다루는 디테일 부족으로 운반 중에 표지가 찌그러지거나 이물질이 묻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물류 협력사로 고른 신생 업체는 감동할 정도로 성실하고 소중하게 특답이를 다루어 주었다. 이후의 흑곰북스 신간들을 지금까지 사고 없이 배송해 주고 있다.

 

총판 계약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친구의 조언 때문이다. 첫 거래부터 현장을 익히는 차원에서 무턱대고 총판에 맡기기보다 발로 뛰면서 직거래를 해보기로 했다. 우선 교보부터 찾아갔고, 신생 출판사 책은 잘 받아주지 않는 분위기를 뚫고 계약을 이뤄냈다. 엠디가 특답이의 디자인과 가능성을 보고 순조롭게 받아 준 것이다. 교보에 들어간 뒤로는 다른 온라인 서점들의 계약은 손쉬웠다. 온라인 판매가 이루어지자 독자들은 자신들이 구매하는 기독서점에 왜 특답이가 없냐며 주문하기 시작했고 연달아 주문량이 늘어갔다.

 

독자들이 영업해 준 특답이

그런데 출판 유통은 다른 제조사들의 유통과 다른 점이 있다. 외상으로 책을 받아 비치해서 판매된 만큼 공급가를 정산한다. 유통 과정에서 일어난 파본과 판매되지 않은 분량은 고스란히 반품시킨다. 출판사는 잘 만들어 놓은 책의 파본과 반품 관리라는 과제를 떠안고 어렵게 책을 공급해야 한다. 게다가 판매액을 수금하는 것도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서점마다 정산이 다르다. 대형 서점이 손님들이 오래 머무는 곳으로 매장 콘셉트를 바꾼 후 많은 방문객이 책을 구매하지 않고 서점에서 꺼내 읽고 돌아간다. 구매가 되지 않고 손때 묻은 그 책들이 출판사 재산인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비출판인이 출판사를 창업하고 접하는 이런 유통의 당혹스러움에 흑곰북스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특답이 주문이 많아지면서 흑곰북스는 기본적으로 책값을 먼저 받고 책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상식이었다. 1부에서 말했듯이 창업 부부는 인터넷 쪽에서 일했기 때문에 결제가 이루어진 뒤에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ID가 어느 시간에 무슨 결제수단을 통해 얼마를 지불했는지 정확히 데이터베이스로 쌓이는 방식에 익숙했다. 그러나 출판계는 그런 명확히 통일된 유통 시스템이 자리 잡히지 않았다. 책값을 받기 전에 책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워 현매, 매절, 직거래를 고수했다. 서점주들은 황당해했지만 독자가 분명히 있었기에 외상없는 주문은 하나 둘 이어졌다. 결국 독자가 서점을 압박해서 책을 비치한 셈이다. 출판 유통의 통상적인 관습에 정면으로 거스르며 공급한 방식에 다들 망할 거라 했다. 어떤 분은 건방지다며 화를 내기도 했지만, 흑곰북스는 정성껏 만든 책이 어느 서점에서 어떤 독자에게 팔리는지 확인하며 선배송하고 싶었다. 단 한 권을 팔더라도 투명하게 거래하고 싶었다. 실은 현실적으로 빨리 현금을 확보하지 않으면 다음 책을 제작할 수 없었다. 얼른 이어서 하권을 제작해야 했다. 페이스북에 특답이 상권을 얼른 사주셔야 하권을 만든다고 홍보했다. 독자들은 흑곰북스가 협박 마케팅을 하는 거냐고 하면서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직접 홍보대사가 되어 한 권이라도 더 팔리도록 도와주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늘 가슴 뭉클하다.

 

물론 전국 서점에 특답이가 쫙 깔리지 못했다. 지금도 흑곰북스는 선금을 받고 책을 공급한다. 대부분의 서점은 진열 후 판매로 거래하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은 동네 서점에 책이 없으면 출판사가 책을 안 갖다놨다고 생각한다. 저자로서 서점에 책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바심이 났지만 경영을 맡은 아내는 원칙을 고수했다. 전국 서점에 깔리고 신문 방송에 노출해서 판매를 끌어내기보다 실제로 책을 읽고 유익을 얻은 분들의 입소문으로 천천히 퍼지는 것이 옳다는 신념을 지켰다. 지나고 보니 그 신념이 옳았다.

 

사실 흑곰북스의 유통, 마케팅 행보는 자신감 있는 고집보다는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결국 책이 많이 팔리니까 흑곰북스의 선결제 방식은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평가받아 SNS 북마케팅의 선구자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유별나게 보일지라도 자신이 만든 소중한 책을 조금 더 깊은 애정으로 대하는 방식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니 전략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흑곰북스는 그 흔한 공유이벤트도 하지 않았다. 신간이 나오면 매번 엄청난 공유가 일어나는데 이벤트 상품이 걸려 있지 않은 자발적인 독자들의 관심이다. 신간 목록이 많지 않아도 믿고 읽는 흑곰북스로 교계에 퍼져나갔다.

 

전세금 회수, 강소 출판사로 성장

흑곰북스 책 《특강 종교개혁사》 표지
흑곰북스 책 《특강 종교개혁사》 표지

특강 소요리문답상권 이후 5개월 만에 하권을 제작했다. 그 뒤로 1년쯤 지나서 1만 권 판매를 돌파한 시점에 투자한 전세금을 회수했다. 하지만 보통 책의 4~5배의 제작비가 들어가 그 뒤로 증쇄할 때마다 제작비를 대느라 손에 쥐는 이익금은 많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책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면서 특강 소요리문답이 수많은 교회에서 매 학기 교재로 채택되었다. 3년쯤 되자 회사는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재무에 어려움은 없다. 신간 개발에도 조금씩 투자가 가능한 수준이다.

 

사무실을 출판 일을 하기에 가장 편리한 마포구로 옮겼다. 마포구에는 활동하고 있는 출판사가 4천여 개라고 한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출판업에 대한 공무원의 이해가 높아 세무 등 각종 업무가 편리하다. 이렇게 흑곰북스는 강소 출판사로 성장했다.

 

《특강 소요리문답》 세트에 이어서 특강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세트, 특강 종교개혁사,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등 한국 교회에 필요한 학술서와 교리서를 정선하여 정성껏 만들어 공급했다.

 

기독 출판 현실의 타개책

기독교 출판으로 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장은 작고 사업체는 돈이 돌아야 지속가능하다. 독자들의 책 구입량은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이를 독자 탓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독자들이 지갑을 열만큼 기꺼이 살만한 책은 얼마나 많을까? 이에 대한 고민을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책이라면 독자들은 책을 산다. 그런데 타깃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이유로, 책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경향이 있다. 너무 학술적이거나 유명한 저자만을 컨택하거나 식상한 주제의 책들이 반복된다. 학자는 학문을 과시하려고만 하고, 저자는 이름을 내려고만 하고, 출판사는 이윤을 극대화하려고만 한다면, 독자의 만족도에 초점을 맞추는 쪽은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한 사람의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정말로 변화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힘이 담겨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어머 이건 사야 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도록. 이제는 이전보다 더, 책 한 권에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 많은 책을 만들어서 뿌리는 것, 소위 밀어내기로 책을 팔아 매출을 맞추는 시대는 지났다.

 

흑곰북스 사장단 황희상, 정설 부부
흑곰북스 사장단 정설, 황희상 부부

출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흑곰북스에게 출판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창업 7년차인 황희상, 정설 부부는 조언하기를 조심스러워 했다. 경험은 단 하나의 사례일 뿐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가 일종의 성공담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뭔가 잘해서 얻은 성과도 아니고, 흑곰북스의 방식이 정답이란 보장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굳이 해줄 말을 고르라면, 출판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WHY) 출판을 하려 하는지 고심하기를 권유했다. 출판 창업의 기업가 정신을 분명히 해야 일을 잘할 수 있고 결과도 따라온다. 기술이나 의지는 다음 문제다. 황희상, 정설 부부가 출판 창업에 도전할 때 사전 지식과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게으르고, 몸도 약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무엇을 왜 할 것인지 분명하므로 하루하루 꾸역꾸역 견디고 버텨낼 수 있었다. 그것이 하루하루를 살게 했고, 독자들이 흑곰북스의 진정성을 먼저 알아봐 주었다. 어려운 길인 줄 알면서도 전부를 걸고 해보고자 했던 열정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덧입힌 결과물이 흑곰북스가 되었다. 어떤 책이 나올까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는 출판사, 흑곰북스의 현재와 미래는 독자들이 도와준다. 책의 불황이 걱정되어도 독자들이 있는 출판사의 현실은 재밌고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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