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칼럼] ‘레드 퀸 효과(Red Queen Effect)'와 치타의 슬픔
[주필칼럼] ‘레드 퀸 효과(Red Queen Effect)'와 치타의 슬픔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18.09.05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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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돌아오는 길만 멀어진다."

생물학 이론에 ‘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라는 것이 있다. 레드퀸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이 쓴 ’이상한나라의 엘리스‘의 속편 ’ ‘겨울나라의 엘리스’에 등장하는 여왕과 엘리스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여왕은 엘리스의 손을 잡고 숲속으로 뛰는데 엘리스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느낀다. 이유를 묻는 엘리스에게 여왕은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온 힘으로 달려야하고,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물학자들은 소설 속 여왕의 얘기를 생태계에서 포식자(먹는 자)와 피식자(먹히는 자) 간의 경쟁적 진화과정에 적용했다. 포식자는 속도경쟁에서 앞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린 피식자를 잡아먹고 산다. 따라서 피식자는 생존을 위해 물려받은 선천적 형질에 후천적으로 끊임없는 학습과 노력을 배가시켜 더 빨리 달리게 된다. 하지만 절대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포식자도 피 눈물 나는 노력을 통해 그만큼 빨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두 생물체는 모두 과거보다 더 빨라졌지만 속도 차는 좁혀지지 않고, 포식자의 위험도 줄어들지 않는다.

레드퀸 효과는 실물 경제에도 적용된다. 한번 기술경쟁에서 뒤쳐진 기업은 다시 경쟁업체를 따라잡기 힘들다. 새로 기술경쟁에 뛰어든 신생기업이 선두 대열에 합류하기도 힘들다. 생태계 이론이 실물 경제로 확장된 사례는 많다. 경쟁전략이론인 가우스 이론(Gauss' s theorem)이 대표적이다. 러시아 과학자인 가우스는 두 종류의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같은 과에 속하지만 종은 다른 두 생물체를 같은 공간에 집어넣고 넉넉하지 않은 먹이를 주면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를 관찰하였다. 그랬더니 두 생물체는 가끔 티격태격 싸우기는 하지만 적당히 먹이를 나누어먹으면서 그럭저럭 생존했다. 반면, 과는 물론 종까지 같은 두 생물체를 대상으로 동일한 실험을 한 결과, 두 생물체가 치열하게 싸우다 둘 다 죽고 말았다. 가우스는 이를 ‘차별화에 의한 생존 원리’로 설명했다. 비슷할수록, 가까울수록 오히려 싸움은 더 뜨거워지고 살아남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경쟁의 역설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나 노회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도 같은 과, 같은 종끼리 싸우니까 너 죽고 나죽자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아프리카의 대 평원 사파리에서 여느 아침, 가젤영양이 잠에서 깬다. 가젤영양은 자기가 가장 빠른 치타보다 더 빨리 달려야한다는 걸 잘 안다. 그렇잖으면 죽기 때문이다. 치타도 가장 빠른 가젤영양보다도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치타는 땅 위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다. 속도를 시속 110~120km를 거뜬히 뛴다. 사냥할 때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다. 치타의 사냥성공률은 사자나 표범에 비해 월등히 높다. 치타의 주 먹잇감은 가젤영양이다. 가젤은 몸집이 작고 워낙 속도가 빨라 다른 동물들이 잘 사냥하지 못한다.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치타는 이 틈새시장을 주목했고, 가젤영양을 사냥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신체를 진화시켰다 한다. 최대한의 산소를 흡입할 수 있도록 폐를 넓혀 분당 호흡을 60~150회로 증가시켰고, 좀 더 많은 혈액공급을 위해 간과 동맥, 심장도 확대했다. 더 빨리 더 유연하게 뛸 수 있도록 다리와 등뼈는 가늘고 길게 바꾸었다.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턱과 이빨 크기를 줄이고 몸무게도 40~50kg으로 줄였다. 이런 전문화를 통해 치타는 세 걸음 만에 시속 64km까지 속도를 올리고, 1초에 7m씩 세 번 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치타의 비극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모든 것을 희생해 원하던 스피드를 얻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치타는 사냥 성공률은 높였지만, 왜소한 체격 때문에 애써 잡은 먹이를 절반이상 빼앗긴다. 가령 표범은 사자나 하이에나를 피해서 먹잇감을 나무위로 갖고 올라가지만, 치타는 그럴 능력이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치타가 가젤영양의 숫자가 조금만 줄어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이다. 전문화가 가져온 부작용이다. 판다곰이 먹이를 대나무 잎으로만 특화했다가 중국개발붐으로 대나무 숲이 줄어들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것과 비슷하다.

물론 전문화는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은 자연의 삶의 방식이다. 진정한 전문화란 헤르만 지몬의 ‘히든 챔피언’에 사례로 등장하는 세계적 강소기업들처럼 한 우물을 파되, 세상의 변화를 보고 우물을 파는 것이다.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이 있다. 빨리 팔 욕심에 좁게 파면 얼마가지 못해 삽이나 곡괭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빨리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돌아오는 길만 멀어진다. 애써 잡은 먹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치타의 슬픔은 결코 동물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슬픔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동물의 세계에 비교 할 수 없는 축복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편한 분인가. 우리가 원하는 것 기도만 하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세월이 지나고 보니 기도하는 것마다 주셨다. 우리는 광야를 달리는 것 같지만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가나안에 머물게 하심을 알 수 있다. 항상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CBS방송국 재단이사

NCCK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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