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멍에는 쉽고 가벼워 귀하고도 요긴하다. "
필자가 신대원에 다닐 때 미국인 미첼 선교사님(Carol Ann Mitchell)이 교회음악과 교수로 계셨다. 미첼 교수님은 1969년에 OMS에서 파송 받아 29세에 한국에 오셔서 ‘민지은’이라는 이름을 쓰셨고, 34년간 봉직한 서울신대에 18만 달러를 유증하셨다. 민 교수님의 트레이드마크는 가을햇살처럼 화창하고 온화한 미소와 1975년산 노란색 포니 자동차였다. 필자가 1990년대 초중반에 신대원에 다녔으니, 당시 민 교수님의 포니는 20년 가까이 되었겠다. 졸업 후에 학교를 몇 차례 방문했을 때도 노란색 포니는 여전히 카우만광장에 있었고, 신형 자동차들 틈에서 활짝 웃는 듯했다. 그 포니를 볼 때마다 같은 하늘 아래 참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고, 나 또한 그처럼 살겠노라 다짐했으며,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상상했다(마 21:7; 요 12:14).
(당)나귀와 말의 교배종에는 버새와 노새가 있다. 아비가 말인 버새는 비실거려서 잘 쓰지 않으나, 어미가 말인 노새는 힘이 세서 타기도 하고 짐을 운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귀보다는 노새, 노새보다는 말이 귀했겠다.
성경에서 나귀를 탄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창 22:3, 5), 모세와 그 아내와 아들들(출 4:20), 발람(민 22:21), 갈렙의 딸 악사(수 15:18), 아비가일(삼상 25:20), 시므이(왕상 2:40), 선지자(왕상 13:23), 수넴 여인(왕하 4:24) 등 다양하다. 이새는 다윗을 사울에게 보낼 때 나귀에 떡과 포도주와 염소새끼를 실려 보냈다(삼상 16:20). 나귀는 가산에 속했고(출 20:17; 신 5:21), 평범한 사람들이 널리 사용한 운반수단이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성경에서 노새를 탄 사람들은 왕자들(삼하 13:29), 압살롬(삼하 18:9), 다윗(왕상 1:33), 솔로몬(왕상 1:33, 38, 44) 등 주로 왕족들이었다. 또한 말을 탄 사람들은 바로의 기병대(출 15:1, 21), 힛타이트와 시리아의 왕들(왕상 10:29), 아람 왕 벤하닷(왕상 20:20), 페르시아 왕(에 6:8-9) 등 주로 이방 왕들이었다.
예수님은 노새도 말도 아닌 ‘어린 나귀’를 타셨다(마 21:2-7; 요 12:14; 슥 9:9). 마태복음은 나귀를 "멍에 메는 짐승"(hupozugion)이라 부연하고(21:5), 멍에(zugos)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소개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귀하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은 무겁거나 어렵게 군림하지 않으며, 그 멍에는 쉽고 가벼워 귀하고도 요긴하다. 가볍고 겸손한 예수님을 태웠으니 아직 어린 나귀는 힘들지 않았겠다.
그러나 오늘 한국에 어린 나귀가 감당하기 어려운 교회들과 무거운 교회 지도자들이 너무 많다. 한국교회에서 20년 된 포니는 영영 사라진 것 같다.
문우일 교수
현, 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국제모임 분과의장(chair)
현, 아현성결교회 협동목사
고려대학교(B.S.)/ 서울신학대학교(M.Div.)/ 시카고대학교(M.A.)
클레어몬트대학원대학교(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