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 켤레, 하나님의 흔적
구두 한 켤레, 하나님의 흔적
  • 오동섭 목사
  • 승인 2018.09.07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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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1886  Oil on canvas 45 × 37.5 Van Gogh Museum Amsterdam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 Vincent van Gogh 1886 Oil on canvas 45 × 37.5 Van Gogh Museum Amsterdam

우리가 고흐의 작품을 말할 때 흔히 생각나는 것은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의 카페테라스’ 등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에 잘 알려지지 않는 중요한 작품이 있다. 한 때 이 작품을 두고 철학자 하이데거와 미술사 사피로와 데리다가 논쟁을 하기도 했다. 그가 1886년에서 1887년에 파리에서 머무를 때에 그렸던 이 작품의 제목은 ‘구두 한 켤레’이다. 고흐는 화폭에 낡은 구두 한 켤레만 덩그렇게 그려놓았다. 누군가 오랫동안 신은 이 낡은 구두 한 켤레를 보면 구두의 한 쪽은 구두 목이 접혀있고, 신발 끈은 풀려 흐트러져 있고 마치 흙도 묻어있는 것 같다. 이 그림의 배경에는 아무것도 없이 단지 구두만 외로이 놓여있다. 구두 뒤의 밝은 빛의 배경은 구두를 더욱 돋보이게 표현되어 있고 누군가 신다가 잠시 벗어놓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버려놓고 가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하이데거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단순히 신발은 신는 도구를 넘어서서 그 속에 숨겨진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런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했다. 데리다는 이 구두 한 켤레는 그 구두가 농촌의 어느 여인의 것인지, 남자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구두에는 한 가지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고흐는 이 그림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고흐는 독실한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고 자신도 전도사로서의 삶을 살며 가난하고 열악한 광산에서 사역자로 섬겼다. 기본적으로 고흐는 삶의 깊은 밑바닥에서 부터 하나님을 향한 강한 열정과 깊은 갈망을 품고 있었다. 고흐에 대해 깊이 연구하며 마치 자신이 고흐가 된 것처럼 고흐의 삶을 추적하며 글을 쓴 일본작가 노무라 아쓰시라는 고흐에 대해서 한마디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고흐에게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숭고함의 표출’이었다는 것이었고 이 사실은 나를 무척이나 놀라게 했다. 내가 고흐에 대해 갖고 있었던 것은 불같은 성격, 항상 다른 사람과 싸움을 일삼는 기인의 이미지였으므로 설마 그의 생애의 목표가 성직자에게나 어울릴 법한 ‘숭고함’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고흐에 대해 신앙적인 관점에서 잘 표현한 클리프 에드워즈의 『하느님의 구두』에서 고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흐는 성공에 이르는 열쇠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인생여정에 어떤 교훈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글과 그림을 통해 우리는 전혀 새로운 모습의 영적 지도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고군분투하고, 실패하고, 사방이 가로막혀서 혼란스러워하고, 실험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낡은 희망을 저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미술사를 전공한 캐슬린 애릭스이 쓴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의 서문에서 고흐를  “반 고흐가 남긴 수많은 편지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종교적인 믿음이 그의 일생을 매우 깊게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편지는 성경 구절과 기도문, 전도사 시절 이야기, 전통적 종교 사상과 근대적 사상을 두고 가족들과 논쟁을 벌여가며 갈등했던 내용, 반 고흐 예술의 기초를 이루는 종교적 개념들로 채워져 있었다.” 헨리 나우엔은 고흐를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고흐는 그의 일생을 통해서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숭고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처절한 삶의 한 가운데에서,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삶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그림을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였다. 그는 끊임없이 그의 그림을 통해서 그 숭고함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자 실험적인 작업들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흐는 이 과연 구두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이 그림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 구두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한 마디로 주인의 부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림에서 구두 외에 다른 것이 없다. 일반적으로 구두를 그리려면 주위에 다른 정물들이 좀 있어야 하는데 고흐는 단지 구두만 그린 것이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을 주듯이 구두 외에는 모두 여백으로 남아있다. 사실 고흐는 이전에 일본 그림에 대해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흐는 우키요에 밝은 색채와 단순하고 단조로우며 그리고 싶은 대상만 특별한 명암 없이 명쾌하게 그리는 기법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고흐의 ‘구두 한 켤레’는 이러한 영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구두 한 켤레만 그리고 여백에 다른 장식도 없이 구두를 돋보이게 하는 밝은 색깔로 배경을 마무리 했다.


한편, 고흐는 파리로 이동하기 전에 매우 암울한 시간을 보냈었다. 돈이 없어 굶기를 수도 없이 하고 충치가 열 개가 넘어 음식을 삼키기에도 힘들었을 정도였었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피해 고흐는 무작정 파리로 이동했다. 이때 그는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과 만나며 밝은 색채에 눈을 뜨게 되고 인상파의 기법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흐는 이 ‘구두 한 켤레’ 작품을 그리게 되었다. 아마 고흐는 당시 몽마르트의 벼룩시장에서 낡은 구두 한 켤레를 사고는 누군가에 의해 이 구두가 어떻게 나왔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이 구두를 팔고 생을 이어가려고 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 주인이 이미 이 세상 떠나고 평생 그를 섬겼던 구두가 시장에 나왔을 수도 있다. 고흐는 그 신발을 사서 신어보고 몽마르트 언덕과 파리의 거리를 걸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삶을 치열하게 살아갔을 노동자의 삶을 느끼고자 했을 것이다. 고흐는 구두를 신고 걸으며 구두의 주인이 자신과 같이 괴로움과 고통의 삶을 살아 온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죽음 저 너머에 있는 주인의 해방을 느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 구두를 한 참을 보던 고흐는 주인을 잃어버린 구두를 통해서 신비로운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했을 것이다. 삶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던 사람들과 함께 고통 받고 울고 웃으며 함께 했던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했을 것이다. 고흐는 그 구두를 보며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과 조롱을 받으며 죽음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발을 감쌌던 거룩한 구두라고 생각했으리라.


신발은 단지 발을 감싸는 그 무엇이기 전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신발은 본질적으로 인간이라는 고유의 존재에게만 부여한 특권의 상징이다. 직립보행 할 수 있는 인간만이 누리를 수 있는 특권의 상징이며 자신이 누군가를 보여주는 표식이 되어 자신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인 능력, 자신의 삶의 가치와 목표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하나님은 새로운 삶을 위해서 모세에게 이전에 신었던 세상의 신발을 벗어 버리라고 명하셨다. 그런 세상의 껍데기를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신을 신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우리에게 옛 신발을 신고 옛 길을 걸어가라고 집요하게 유혹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하던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더니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발을 씻기 씻고 닦아 주신다. 이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마 예수님은 제자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마음이 동하여서 친히 자신이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그 마음에 깊은 사랑과 걱정이 있으셨을 것이다. 이제 곧 그들이 겪어야 할 고난을 생각하시며 그들이 신고 있던 먼지 묻은 신발을 벗기고 정성껏 발을 씻으셨다.
 
우리는 하루를 살기 위해 온 종일 신을 신고 고군분투하다가 집에 돌아와 그 신을 벗고 안식을 취한다. 어떻게 보면 고흐의 작품에 그려진 주인이 떠나고 남겨진 신발처럼 하루를 살아온 우리 구두는 주인 없이 가지런히 문 앞에 놓여있다. 하루를 살아온 구두에는 그날에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 속에 담겨져 있다. 또한 하루를 함께 하시며 격려하시고 도우시고 울고 웃으셨던 하나님의 흔적도 담겨져 있다. 짙은 먼지로 쌓인 신을 벗기고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안타까워하시던 주님은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온 우리에게 발을 씻어주며 위로하고 격려하시며 말씀하신다. ‘정말 수고 했구나! 정말 고생했어! 내 안에서 편안히 쉬렴.’
고흐의 ‘구두 한 켤레’에서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며 우리를 품으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은혜와 사랑의 흔적을 조심스레 보게 된다.

 

 

 

 

 

오동섭 목사미와십자가교회 위임목사스페이스 아이 대표극단 미목 공동대표
오동섭 목사
미와십자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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