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북선교의 본거지 ‘양관’ 건립 112주년
충남북선교의 본거지 ‘양관’ 건립 112주년
  • 김성수 지역기자
  • 승인 2018.08.2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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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 초기 청주의 랜드 마크 ‘양관’ 충남북 선교의 산 역사
- 선교초기 문맹퇴치, 여성교육, 지도자양성기관, 청주 KBS 개국, 6.25때 야전병원으로 쓰여
- 건립 112주년 맞아 ‘보존’ 넘어 ‘역사화’ 필요성 제기 시점 맞아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청주 탑동 언덕에 당시 랜드마크가 된 서양식 붉은 2층 건물인 ‘양관’이 세워진지 110여년이 되었다. 1900년대 초 청주의 풍경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청주를 가로지르는 무심천변은 농지와 초가뿐이었을 때, 청주 선교본부인 ‘양관’을 짓기 시작하여 첫 번째 건물이 1906년 여름 완공된 지 112년이 되었다. 그 후 1932년까지 6채의 양관이 세워졌다. 현재 일신학원 안에 4채, 그리고 밖에 2채 총 6채가 보존되어 있다.

청주 선교본부 건물 및 뒤로 선교사 사택과 성경학교(녹색지붕)이 멀리 보인다.
청주 선교본부 건물 및 뒤로 선교사 사택과 성경학교(녹색지붕)이 멀리 보인다.

 

마펫의 뒤를 이어 예수학당 교장과 통역관으로 활약하며, 한국말에 능통하고 특별히 음악에 조예가 깊어 초기 찬송가 제작에도 깊이 관여했던 민노아 선교사(F.S. Millrt)가 1900년 청주에 전도하기 위해 내려왔다가 감동적인 이야기에 고무되었다. 자신의 선교지였던 경기도 죽산제일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던 청주출신 오천보 등 3명이 예수를 믿고 신대리에 자생적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 후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충북선교에 뜻을 정하고 1904년 청주에 내려와서 선교본부를 설립하였다. 1905년부터 청주시 탑동 야산을 26원에 사들여 나무를 베고 청주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붉은 벽돌로 서양식 양관을 짓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양관(洋館)’이다. 산에 나무가 얼마나 크고 많았는지 장정 150명이 2주 동안 도끼로 나무를 잘랐고 벌목한 나무를 옮기는데도 3백 명의 인력이 동원됐다고 한다. 건물을 지으면서 기와와 벽돌은 그곳에 있는 흙을 구워 만들어 사용했으며, 대들보는 민영천의 야산에 있던 소나무를 이용하였고, 유리창 문을 아취 식으로 내었을 뿐, 지붕이 조선식 기와지붕이고, 처마장식과 주춧돌 등도 전통 한옥과 흡사하여 양관 중에서 가장 한국 풍을 담고 있는 서양식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1908년, 1912년, 1228년, 1932년까지 선교사 사택, 병원, 성경학교 등이 건축되어 지역선교와 의료 봉사의 본거지로 이용되었는데, 충청북도 문화재관리위원회가 1983년 이들 건물을 모두 “제133-1호”에서부터 “제133-6호”까지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총회에서도 2012년 이들 양관에 대하여 “한국기독교사적”으로 지정하였다.

기록을 보면 청주 양관의 112년의 역사 속에는 많은 애환과 일화가 묻혀 있다. 개화 초기 스파이로 오해 받기도 하고 종교를 앞세운 서양문물의 전파자로 비쳐져 비난 받기도 하였지만 우리나라 근대화에 있어서 이들의 역할은 지대하였다.

1904년 밀러 목사가 처음 들어와 기독교 문화를 정착하고, 1906년 청주 대홍수 때에는 수백명의 이재민들의 피난처가 되었고, 1907년 계군 목사가 다음해 국유치(鞠有致) 목사가 들어와 많은 선교 활동을 펼쳤다. 1914년 노관·지도 의사 부부가 ‘소민병원’을 차리고 병고에 시달리는 주민들에게 의술을 펼쳐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양관 건물에서는 기독교 선교와 근대 교육, 병원 업무까지 병행하며 주민 계몽과 보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양관은 본래 선교사들 거주와 사무실용으로 만들었으나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과 문맹인 성인들의 배움터로 많이 활용되었다. 그러나 1914년 계군 목사는 결혼 후 건강이 나빠져 청주를 떠났고 이후 소열도 선교사, 부예선(富禮善) 선교사, 한부선(韓富善) 선교사 등이 양관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소환되고 주인 잃은 가재도구들은 공매 처분됐다. 1945년 광복되던 해 2월 KBS 라디오 방송국이 양관에서 개국되고 6·25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많은 선교사들이 양관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양관은 6·25 전쟁 기간 중에는 인민군 야전 병원을 활용되다가 수복 후에는 미국 고문관들이 사용했다. 1951년 봄 인민군 잔당의 기습공격으로 양관도 습격을 받았으나 미군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끝내 포기하고 도주했다고 한다. 그 후 청주에 기독교 선교가 활성화되면서 미국 선교사들은 하나 둘 떠나게 됐고 1974년 5월 9일 청주 양관 관리 운영권이 일신학원으로 넘어가 지금은 역사기념관과 교목실, 봉사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청주선교본부 건물과 뒤로 선교사 사택이 있다.
청주선교본부 건물과 뒤로 선교사 사택이 있다.

 

한편, 양관 6동은 1906년부터 1932년까지 이어진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른 건축적 특징을 나타내며, 서양식 건축 양식이 도입되던 초기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었으며, 아치식 창문과 지붕은 전통적인 기와지붕으로, 처마양식과 주초도 한옥과 흡사하여 한국전통 양식과 서양식이 서로 어우러진 건물이다. 내부는 온돌 대신 서양 스팀난방과 벽난로를 시설하였고, 지하에 공기난로를 설치하여 함석을 둘러싸 따뜻한 공기가 위로 올라가도록 하는 장치가 설비되기도 하였다. 또한 화장실은 베란다 각층에 수세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건립당시부터 정화조를 설치하여 수세식으로 하였다. 청주 최초 근대식 병원인 제6호 소민병원은 특별히 자연채광을 하였다. 당시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한 유리와 스팀보일러, 벽난로, 수세식변기, 각종 창호, 철물류 등 많은 수입자재가 사용되었다.

이런 모든 역사와 구한말 근대화 과정에서 청주 ‘양관’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볼 때, 양관은 기독교적 역사적 가치를 뛰어넘어 청주 근대화의 중심에 있는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충북노회 역사위원장 최현성 목사(충북노회 전노회장, 청주 용암동산교회 시무)는 ‘자신이 어린 시절 이 양관 언덕에서 뛰어 놀았다고 회고하면서, 청주 양관은 청주의 자랑일 뿐 아니라 근대문명의 산증인이고, 청주 근대화의 중심이었기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역사화 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고 ”앞으로 노회 역사위원회를 통해 어떻게 양관을 역사화할지 연구하고 논의를 본격화 하겠다.“고 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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