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인생의 긴 여정에서 장애를 피할 수 없다. 불의의 사고와 육체의 노화는 비장애인을 한순간에 장애인으로 만든다. 다른 그 무엇보다 건강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런데 건강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 삶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설령 그대가 누워서 눈만 깜빡여도 그대는 고귀하다.
정태규 작가는 원래 부산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문학계에 등단하여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그 이후 교수가 되기 위해 박사학위까지 받으며 치열하게 문학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그의 열정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 그가 불과 50살을 조금 넘겼을 때 그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에 걸렸다. 이 병은 근육이 사라지고 척수의 운동신경 다발이 딱딱하게 굳는 불치병이다. 이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병을 완치하는 건 불가능하다. 오늘보다 내일,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빠지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고 나서 그는 일상적인 것조차 혼자서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는 말한다. 아내와 의학기술의 도움이 없었다면 본인은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현재 그는 침대에 누워서 목에 구멍을 뚫고 음식물을 공급받으며 하루하루 기적적으로 살아간다.
내 병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치유되는 그런 병이 아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나와 동거해야 하는 병이다. 불편한 동거일지라도 나는 완주하고 싶었다.
이 병은 어쩌면 끝까지 완주하는 데 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는 루게릭병에 걸린 정태규 작가가 '안구 마우스'라는 도구를 통해 쓴 책이다. 이 책은 그가 병상에 누워 모니터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눈을 깜빡이며 쓴 책이다. 이렇게 ‘안구 마우스’로 글을 쓰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글을 쓰는 속도보다 열배는 느리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글이 다른 사람의 글보다 열배 느린 만큼, 열배 더 깊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열배 더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정태규 작가의 루게릭병 투병기와 그의 주 전공인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그는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며 활동하는 현역 작가이다. 그가 눈을 깜빡이면 모니터에는 단어가 생기고, 문장이 연결되어, 글이 완성된다.
사람으로서 커다란 업적을 남겨야만 고귀한 것은 아니다. 사람으로서 숨 쉬고 눈만 깜빡이며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귀한지 모른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처럼 사람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 없다. 이렇게 '당신은 모를 것이다' 독서순례를 마친다.
"그리스도인에게 일상의 독서는 그 자체가 기도이며, 구원의 여정이며, 진리를 향한 순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