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의 농인(청각장애인)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장애인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가 겪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농인이셨지만 외국에서 공부도 많이 하시고, 다양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많이 하시던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도 꼽히는 큰 농아인 교회 담임목사님이셨습니다. 늘 참석하시던 장애인 관련 행사가 열린 어느 날, 본인이 앉아야 할 자리를 향해 가는데 안내하는 분들이 목사님 일행을 붙잡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처럼 손을 잡고 과도하게 친절하게 안내해서 마음이 상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안내를 담당했던 분은 장애인이기에 도와주어야 한다는 순순한 마음으로, 또 봉사의 마음으로 그 일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목사님은 그 친절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까요?
우리는 ‘장애인’하면 그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장애라는 이름에 따르는 어떤 고정관념(stereotype)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개인적인 차이점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동일집단(homogeneous group)으로 바라봄으로 장애인을 한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장애인차별과 교회', WCC 신학성명서/최대열 역, 2003). 또한 장애를 먼저 바라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만났을 때, 먼저 그 “장애”의 유형이 무엇인지부터 묻거나 생각합니다. 지적장애인지? 자폐성장애인지? 지체장애인지? 청각장애인지? 유형화하고 장애정도로 등급화 합니다. 그리고 “장애유형”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가지고 그 사람을 규정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유형화해서 장애인을 만나게 되면,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 온 사람인지? 등등 사람에 관계된 것들은 모두 그 “장애유형과 장애등급” 뒤로 숨어버리게 됩니다. 사람을 먼저 보아야 하는데,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형성된 장애를 먼저 보게 됩니다.
영어로 장애인을 ‘Persons with Disability’ 라고 씁니다. 장애라는 단어 ‘Disability’에 의도적으로 ‘Persons with~’라는 표현을 붙여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 먼저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을 먼저 보기 위해서는 의도적인(의식적인)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장애인에 대해서”(about the disabled)가 아니라, “장애인을”(the disabled themselves) 배우고 알아가야 합니다('장애인을 잃어버린 교회', 안교성, 2003).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우리 신앙인들은 장애를 먼저 바라봄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집단화하고 대상화하여 차별하는 것을 당당히 거부하고, 장애인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그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치열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이상록 목사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