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개신교인으로 산다는 건 한국에서 개신교인으로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본 국민 중에 전체 개신교인의 비율이 1퍼센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모임에서 개신교인을 만날 수 있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모임에서 개신교인 한명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장로교 목사였던 가가와 도요히코(1888~1960)는 일본 기독교계에 참으로 보석같은 인물이다. 그의 삶은 개신교인이 많지 않은 일본에서 개신교인이 어떻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에 세계 최대의 서민 복지생협 ‘코프고베’를 설립했으며, 기독교 선교 뿐 아니라 일본 농민운동, 프롤레타리아 정당운동, 일본농민조합 창설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2009년에 일본의 가가와기념관은 가가와 성역 100년을 기념하여 가가와 도요히코를 젊은이들에게 쉽게 소개하기 위해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만화책을 출간했다. 이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가가와 도요히코를 알리기 위해 홍이표 목사가 이 책을 번역하여 2013년 도서출판 다행에서 ‘일본협동조합의 아버지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였다.
총 6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은 가가와 도요히코가 초창기에 왜 빈민사역에 헌신하고 그가 어떻게 일본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크게 활성화 시켰는지 잘 설명되어 있다. 참으로 가가와 도요히코의 삶에서 협동조합은 그 자체가 목회였다. 그는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보편적 평화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만 그의 양떼로 여기지 않았다. 그의 교구는 일본 전체였으며, 가난하고 연약한 일본국민 모두가 그의 양떼였다.
1919년 8월 그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오사카에 ‘공익사’라는 소비조합을 처음 설립했다. 그는 이 소비조합을 통해 인간의 영혼과 영혼이 서로 통하는 기초로서 새로운 경제체제가 조성되길 꿈꾸었다. 그가 그 당시 세웠던 ‘공익사’의 기본 방침은 총 4가지였다.
1. 질 좋은 일용품을 싼 가격에 판매하고 조합원의 생활을 안정시킨다.
2. 판매를 통해 얻어진 이익에 대해서 절반은 조합의 자본으로 적립해 두고, 나머지 절반은 조합원에게 배당하여 환원한다.
3. 상품의 직접 제조에도 관여하여 조합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4. 조합에 약국을 마련하고 의사를 청빙하여 실비로 진찰을 받을 수 있게 한다.
그가 약 100여 년 전에 설립한 ‘공익사’의 기본방침은 오늘 날 협동조합의 ‘기본방침’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따라서 오늘 날 한국에서 협동조합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가가와 도요히코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한번 정도 그의 삶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살아온 도요히코의 길이 뒷사람의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일상의 독서는 그 자체가 기도이며, 구원의 여정이며, 진리를 향한 순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