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성령의 역사
설교와 성령의 역사
  • 박원호 총장
  • 승인 2018.07.1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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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는 말씀 사역에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중심적인 역할이다."

신학교를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신학교로 돌아왔다. 그 동안에 신학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도 많은 변화를 겪는 것 같다. 많은 변화 가운데 뚜렷이 다가오는 것은 말씀 사역의 변화이다. 20여년 동안 성경 연구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말씀에 대한 헌신과 자부심도 놀라웠다. 하지만 목회 현장에서의 반응은 오히려 부정적이다. “왜 요즘은 예전과 같은 설교자가 나오지 않아요? 왜 요즘 설교는 영감이 없어요? 제발 설교 잘하는 목사를 키워주세요.”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문제인가? 설교는 근본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다. 모든 말씀 사역은 성령으로 시작되어 성령으로 마친다.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으며 성령으로 해석되며 성령으로 선포되어진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안타깝게도 근대 성경 비평학의 흐름 이후 성령의 역사는 마치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면서 점점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말씀의 사역은 점점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오늘날 성경 비평학은 파산이다”라는 월터 윙크(Walter Wink)의 선포는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다. 성경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넘쳐남에도 말씀의 사역이 능력과 권위를 잃어가는 것은 비판(criticism)이라는 접근 방법 자체가 갖는 문제 때문이 아니겠는가. 성경을 생명이 아니라 하나의 객체로 본다면, 성경과 나의 관계를 주체와 객체와의 분리라는 관계로 본다면, 성경의 접근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아야 한다면 생명으로서의 성경은 심각하게 훼손될 뿐만 아니라 현실의 아픔은 당연한 결과이다. 성경의 계시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의 산물이다. 영감은 논리와 객관을 뛰어넘는 사건이다. 비판적인 노력이 당연히 필요하지만 영감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하느냐? 그렇지 않다. 지난 100여년간의 비평학의 공헌은 결코 무시되어선 안 되며 버려서는 더 더욱 안 된다. 다만 비평적 관점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하며 이제는 이를 활용하되 온전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더구나 아인슈타인 이후의 과학도 뉴턴의 근대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과 하나됨으로 나아가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 사역에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중심적인 역할이다. 설교나 성경 공부는 성령의 상호 관계적 논리를 충실히 따라가야 한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단지 기도로 성령의 도움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의 준비와 선포 과정 전체가 성령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성령의 관계적 논리는 객관과 주관이 서로 존중하며 논리와 감정이 함께 어우러지면 인성과 신성이 갈등하거나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되며 하나되는 논리를 말한다. 비평적 자세가 분열과 갈등을 가져오며 그 반대로 비논리적인 영성의 자세가 혼란과 현실 도피를 가져온다면 성령의 관계적 논리는 하나 됨과 질서를 그리고 평화를 가져오는 논리이다. 이 논리는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우주의 운행 원리이기도 하다.

오늘도 성령의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일하심으로 세상을 평화로 인도한다.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였던 제임스 로더(James Loder)는 이 과정을 갈등, 기다림의 시간, 상상력의 도약 그리고 해석으로 설명한다. 갈등의 기간은 나와 성경이 부딪히는 과정이며, 기다림의 기간은 나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성령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과정이다. 때가 준비되면 상상력의 도약이 영감으로 다가오며 마침내 갈등이 해결된다. 마지막 해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말씀에 대한 묵상이다. 오직 말씀만을 대하며 말씀의 음성을 듣는 인내함을 요구하는 묵상이 없이는 성령의 논리도 그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외적인 성령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작에서 마지막 전개까지도 관계적 논리를 충실히 따를 때만이 말씀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목적인 평화와 하나됨을 이룰 것이다. 말씀 사역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며 그 성령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이 땅에 평화와 기쁨을 이루는 것이다. 아울러 본문(text)과 상황(context)간의 대화도 기억해야 한다. 본문은 빈 공간에서 주어진 것도 아니며 빈 공간을 향해 선포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본문에는 상황이 주어져 있으며 본문은 상황의 소리를 들어야 하며 상황은 본문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수고는 현실과의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설교는 이 둘 간의 신중한 대화의 사건이다. 다시금 말씀의 본질에 충실한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소망한다.

 

박원호 총장

실천 신학 대학원 대학교 총장
계명대(B.A.)와 장신대(M.Div.)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Th.M.)
Union Theological Seminary
& Presbyterian School of Christian Education(E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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