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이오스] 성서와 시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텔레이오스] 성서와 시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신현태 목사
  • 승인 2024.10.30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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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빌브로는 ‘여전히 시대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책에서 “현대인들은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정신적 소화불량’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때론 악의적인 허위 정보에 마음을 빼앗긴 채 누군가를 혐오하는 깃발을 흔드는 극단적 집단주의 증상도 보인다. 균형감을 가지고 분별하고 성찰하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내가 접하는 정보들을 가감 없이 수용하는 문제점을 누구나 갖기 싶다. 따라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신하거나 적대하며 분노하고 혹은 열광하면서 막연한 두려움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어떤 신문과 어떤 매체를 주로 보는지가 곧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옳다. 다시 말해, 무엇을 주목하느냐가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소비 문화에 물든 뉴스 미디어 생태계는 소비자로 하여금 습관적인 집착과 중독, 수동적인 반응과 관망, 혹은 혐오와 배제와 분노 등으로 이어지게 하는 도덕적 악순환을 낳게 한다. 자신이 어떤 안경을 쓰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없는 편향 폭식에 해당하는 정보 홍수 속에 점점 저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매체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고리즘(algorism)에 사로잡혀 균형을 잃은 채 한쪽으로 편향된 기사와 자료만을 자동적으로 탐독하게 되고 그것이 마치 사실(Fact)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사실이라기보다는 사실 보도의 형식을 갖춘 정보 제공자의 해석과 관점 기록이라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과 해석 사이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스스로 정보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중독적 집단 최면에 빠지게 된다. 이는 자신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까지 많은 어려움을 주게 만든다. 또한 시대와 역사에 대한 해석에까지 중대한 오류를 가져오게 만든다.

성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서 속에는 역사, 이야기, 고고학, 문학, 예술, 시, 상징, 은유, 함축, 암시, 은폐, 묵시 등의 다양한 장르와 층들이 내재 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성서를 문맥과 배경과 시대 상황과 성서가 갖고 있는 본래의 큰 주제인 하나님 나라의 관점과 바르게 연결하여 해석해 내기는 쉽지 않다.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작업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본문 성서가 진실로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에 맞는 적합한 해석을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중대하다. 그러나 목회자들과 신학자들 역시 스스로 지금 자신이 무슨 안경을 쓰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성서와 시대를 읽어내는지 냉철하게 멈추어 서서 겸허히 성찰하지 않으면 스스로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대죄를 범하게 된다.

성서와 시대를 바르게 읽고 해석해 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편중된 생각과 정보 접촉 알고리즘을 겸허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문맥과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자신의 기호에 따라 성경 구절을 이리저리 많이 인용한다고 하여 그의 주장과 설교가 복음적이거나 성서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단어와 문장의 직접적인 의미를, 도리어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하고, 왜곡 인용하고 강조하다가 본문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와 정반대의 내용을 강설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성서의 주인공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약 성서는 오실 예수, 신약 성서는 오신 예수, 다시 오실 예수의 말씀이다. 따라서 신구약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삶과 십자가와 부활의 관점에서 해석해 내어야 한다. 또한 신구약 성경의 큰 핵심 주제인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해석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굴절된 역사가의 관점 너머의 하나님의 통치 시각으로 전체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작품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아마도 우리의 역사적 트라우마인 공산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한 평가가 극단적 반감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정권에서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심어 놓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낡은 옷을 벗지 못한 채 읽는 오독이 아닌지를 냉철하게 살펴보고 분별해 내어야 한다. 그의 작품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해 내기 위해서는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온전히 찾아낼 수 있는 문학 작품에 대한 주제적 독해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와 상처에 대한 사실과 해석에 대한 균형 있는 지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작가가 말하는 여전히 청산되거나 해결되지 못한 상처와 고통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편향된 시각으로 찬반에 동조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해묵은 이념 논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독자는 과연 자신이 어떤 색안경을 쓰고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지 먼저 멈추어 서서 살펴 볼 일이다.

성서와 시대를 바르게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신학자들이나 역사가나 문학가 역시 그들 나름대로의 편향된 시각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서와 지난 역사와 오늘의 역사를 바르게 읽어내기 위한 치열한 탐구심을 결코 버리지 말아야 한다.

무분별한 정보 홍수 시대에 맑은 샘물을 마시듯 바른 정보와 글사이에서 던져주는 온전한 해석을 위한 선택의 몫은 스스로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신현태 목사<br>​​​​​​​시인, 영월 생태수도원장
신현태 목사
시인
​​​​​​​영월 생태수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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