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그림에서 묻어나는 십자가 신학
[예술과 목회] 그림에서 묻어나는 십자가 신학
  • 최대열 목사
  • 승인 2024.10.21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파엘로, 1503

그림은 우리에게 미적 감동과 함께 여러 가지 것들을 전해준다. 그중에는 화가가 전하고픈 메시지도 있지만, 또한 의도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것은 그림이 역사적으로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작가의 인생과 감정과 생각 외에도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문화와 정서와 사상도 담겨있다. 그래서 그림에서 작가의 생각 너머, 작품을 의뢰한 공동체의 사상 너머, 시대의 정신이 묻어나기도 한다.

기독교 그림들을 보노라면 그 안에 묻어 있는 정신, 곧 신학을 발견하곤 한다. 예수의 십자가형(Crucifixion) 그림들을 살펴보노라면 그 안에 십자가에 대한 신학들이 담겨있음을 깨닫게 된다. 미술사에서 십자가형 그림들이 제각각 다르다고 하는 것은 그림마다 나름의 생각, 곧 나름의 신학이 담겨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같은 소재를 모티브로 하였기에 차이보다는 공통된 내용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묘한 표현의 차이는 미묘한 신학의 차이를 보여준다.

십자가형 그림에는 나름의 신학이 묻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을 그린 그림이니 십자가 신학이 묻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묻어난다는 것은 본래 어떤 물질이 다른 것에 닿아 그곳으로 옮아나는 것을 뜻하는데, 그것은 비단 물질만 아니라 분위기나 감정, 나아가 생각이나 사상도 해당된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묻어난다는 것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분명하든 희미하든 어떤 본질적인 것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십자가형 그림에는 기독교의 본질,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신앙이 담겨있다.

일례로 16세기 서양미술의 십자가형 몇 작품을 살펴보자. 라파엘로의 십자가형(가바리 제단화, 1502)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절정답게 구도와 색상 면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림은 우아하고 품위 있고 격조 있어 보인다. 특이한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하의가 붉은 색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상에 모두 붉은 색이 들어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시선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고, 또한 그의 몸에 참여하는 성찬에로 초대한다.

이젠하임 십자가

그뤼네발트의 십자가형(이젠하임 제단화, 1515)은 당시 르네상스 양식과 전혀 다른 양식의 그림이다. 르네상스의 십자가형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름답게 표현하였다면, 그뤼네발트의 십자가형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도 잔혹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지체 하나하나가 고통에 절어 절규하는 듯하다. 이런 모습은 이후의 십자가형 그림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 그림은 성 안토니우스 수도원이 운영하던 병원을 위해 제작한 것으로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고난당하셨기에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이해하시고 공감하시고, 그래서 위로하시고 치유하실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크라나흐, 1555

크라나흐의 십자가형(바이마르 제단화, 1555)은 라파엘로나 그뤼네발트의 십자가형 그림과 또 다르다. 이 그림에는 성서의 중요한 도상들이 도처에 포진해 있다. 마귀에게 쫓기는 아담, 모세의 율법, 장대에 달린 놋뱀, 성탄의 소식을 전해는 천사, 십자가형, 마귀를 짓밟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등. 이것들은 기독교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주제들이다. 그리고 특별히 이 그림에선 예수의 옆구리에서 뿜어 나온 피가 곧장 크라나흐의 이마에 떨어지고 있다. 이 그림은 중세 로마가톨릭의 사죄론에 맞서 오직 성서에 기초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다는 루터의 신학을 담고 있다.

최대열 목사, 『그림에서 묻어나는 십자가 신학』
최대열 목사, 『그림에서 묻어나는 십자가 신학』

그러고 보면, 십자가형을 그린 화가들은 나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해석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의미와 감동을 전하고자 하였던 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작품을 제작 의뢰한 공동체의 신학이 일부 반영되었을 수도 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자신이 살던 시대의 신학에 별 의식 없이 물들었을 수도 있다. 그럼, 오늘 우리 시대의 십자가형 그림은 어떠한가? 죄와 죄의식, 불안과 절망, 무의미와 허무, 갈등과 소외, 차별과 혐오, 빈곤과 질병, 전쟁과 재난, 생태계와 기후 위기의 시대에 십자가형 그림은 또 무엇을 담아내고 있는가? 어떤 신학이 묻어나고 있는가? 기독교 그림을 보노라면 교회가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신학이 보인다.

최대열 목사<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발달장애인선교연합회 회장명성교회 사랑부 담당 부목사
최대열 목사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발달장애인선교연합회 회장
명성교회 사랑부 담당 부목사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503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