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코(1170-1221년)는 프란치스코(1182-1226년)와 함께 가톨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이들이 만든 수도회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도미니코가 수도회를 만들 때 이야기다. 1216년 말-1217년 초 도미니코는 로마를 방문해 교황 호노리우스 3세(재임 1216~1227년)를 만났다. 교황에게서 ‘설교자들의 수도회(Ordo Fratrum Praedicatorum)’라는 명칭의 수도회 설립을 공식으로 승인받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출발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부수적으로는, 기독교계에서 두고두고 전해질 일화를 낳았다.
호노리우스 3세는 금욕주의자 도미니코에게 로마 교회의 보물을 보여주며 “베드로도 더는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너무 오래 전 사건이라 전후 맥락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는 하지만 교황의 발언만으로는 그가 참으로 철없이 말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아무튼 그때 교황이 이 말을 하며 사도행전 3장 6절을 인용했다고 전해진다.
해당하는 성서 구절은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였다. 그러자 도미니코는 호노리우스 3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럼, 앉은뱅이를 세워 걷게 할 수도 없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3장 6절에 국한하면, 호노리우스 3세는 앞부분에 주목하여 그와 같은 말을 한 것이고 도미니코는 뒷부분에 주목하여 호노리우스 3세를 반박했다. 중세의 일이긴 하지만 일반 성직자도 아니고 교황이라는 사람이 성서 구절까지 인용하며 신실한 수도사에게 돈 이야기를 했다는 게 지금으로선 잘 믿어지지 않는다. 당시의 실제 대화는 어쩌면 지금 받아들이는 것과는 결이 달라서 그렇게 노골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과거 역사 속의 많은 교황이 지금의 교황과는 판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대로 호노리우스 3세가 더 적나라하게 말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적잖은 교황이 하나님의 종이라기보다는, 더도 덜도 아닌 그저 세속의 권력자였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예를 들어 여색을 매우 밝힌 중세의 어떤 교황은 순례 목적으로 자신의 로마 교회를 찾은 독실한 여성 기독교도들을 상습적으로 강간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성 순례자를 대상으로 희대의 엽색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교황 호노리우스 3세가 실제로 어떤 성품의 사람이었는지는 논외로 하고, 전해지는 일화에 국한한다면 성직자치곤 매우 강한 세속성을 드러낸 셈이다. 일화에서 도미니코는 균형추를 잡아주는 역할을 맡는다. 대화의 두 당사자에게 공유된 사도행전 구절과 관련한 도미니코의 발언은, 앉은뱅이를 세워 걷게 한 결과에 초점을 맞춘 듯하며, 앉은뱅이를 세워 걷게 한 권능의 주체가 누구인지에는 약간의 혼선이 있다. 이제 그 혼선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그 ‘누구’가 베드로임은 쉽게 확인된다. 복잡한 과정이 있었지만 요약하면 여러 주교 중의 한 명이었던 로마 주교는 자신을 베드로의 후계자로 자처함으로써 주교 중의 주교, 즉 교황이 되는 데에 성공하였다. 로마 주교가 주교 중의 하나에서 주교 중의 최고 주교로 격상됨에 따라 최고 주교, 즉 교황은 교회사의 영욕을 한 몸으로 체현한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에게 금과 은이 없었던 반면 베드로의 순교 자리로 알려진 터에 세워진 교회에는 금은보화가 넘쳐났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베드로의 177번째 후계자 호노리우스 3세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로마 교회에 금은보화가 넘쳐난 상황이 전적으로 호노리우스 3세에서 기인하지는 않았지만, 교황의 ‘능력’을 포함하여 중세 교회의 탁월한 비즈니스 능력을 방증하는 것이기에 도미니코는 그와 같이 냉랭하고 정곡을 찌르는 답변으로 교황과 로마 교회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짐작된다.
당연히 지금 가톨릭교회는 과거와 달라졌다. 그렇다면 한국 개신교 교회는 어떨까. “앉은뱅이를 세워 걷게 할 수 없게” 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도미니코’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데, 한국 교회엔 지금이 밤의 초입인 듯하여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