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여가의 힘
쉼과 여가의 힘
  • 옥성삼 교수
  • 승인 2018.06.1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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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콕스나 몰트만의 놀이신학(Theology of Play)에 기대어 예수님의 메시아적 삶에 깃든 쉼과 여가의 향기를 찾아보면 몇 가지 특징을 만날 수 있다. 첫째로 복음서에 기술된 예수님의 삶은 사역중심으로 보이지만 메시아로서의 사역은 쉼과 놀이와 통합적 일치를 이룬다. 하나님 나라는 비유로 된 이야기로 선포되고, 제자 양육은 생활을 함께 함으로, 바쁜 일상에도 한적한 새벽기도와 선상의 휴식을, 신앙절기를 메시아 사역을 완성하는 연출무대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일과 쉼과 여가는 취사선택의 우열이나 대립 구조가 아닌 하나로 연결되고 통합된 삶의 세 가지 모습으로 상호침투적이고 순환적 일치성을 가졌다. 즉 일하고 쉬고 놀이하는 것은 삶을 이루는 다른 모습이지 어느 요소만을 분리할 수 없다. 몰트만의 신학적 표현을 빌리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순환적 사귐과 일치성을 뜻하는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로 이해 할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으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옛사람의 오감이 아닌 ‘새사람의 감각’(요 1:14)으로 일하고 쉬고 놀이하셨다. 오늘날 여가활동은 대부분 상업화되었기에 본능적으로 과시와 구별짓기, 소유와 욕망을 지향하는데, 주기도문에 잘 드러났듯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현재화하는 새사람의 감각을 지녔다. 이는 타종교에서 말하는 주체적인 해탈이나 득도를 통한 변화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미완의 감각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지속되는 감각이다. 신학자 발타살의 표현을 차용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은총안에서 부어지는 새로운 지(知)·정(情)·의(意)와 오감(五感)인 ‘영적인 감각’(spiritual senses)이다.

빈센트 반 고흐 '낮잠'
빈센트 반 고흐 '낮잠'

세 번째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예수님의 삶에는 천국의 명랑성이 생동했다. 메시아적 비극 가운데 예수님의 일상은 희노애락과 두려움은 물론 천국비유, 애찬, 예루살렘 입성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해방으로써의 저항과 반전, 자유를 주는 해학과 의례가 힘 있게 실천되었다. 휴고 라너가 제시한 비극적 존재이지만 동시에 유쾌한 영혼의 존재인 ‘엄숙하고 즐거운 인간’(grave-merry man) 의 개념에서 예수님의 쉼과 사역과 여가를 바라볼 수 있다.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이 메시아 사역의 핵심 프레임이라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성과 속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금기적 의무로 굳어버린 율법에 대한 창조적 파괴였다. 시간과 공간적 이해에 머물던 하나님 나라를 ‘성육신 사건’과 ‘지금 여기의 관계성’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현재화했다. 미완으로 찾아온 일상속의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호연계성은 전례와 염려에 갇힌 삶에 자유를 선포했다. 쉼과 여가가 생산적인 일의 부차적이고 저급한 가치로 보이지만 예수님의 공생애가 그렇듯 내용적으로는 삶의 본질적 요소이다. 일이 생산을 통해 생존의 필요를 채운다면, 쉼은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refreshment) 시간이고, 일상의 분주함과 본성적 욕망을 비우고(kenosis) 오늘을 성찰하는(reflexivity)하게 하며, 놀이는 창조의 완성인 안식일에 하나님과 창조물이 함께 누린 기쁨을 맛보게 한다.

여가와 믿음의 공통점이라면 없어도 먹고사는데 별 지장이 없어 보이지만, 경험될수록 삶의 핵심이자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삼위일체, 성육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등이 21세기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신학이라면, 성장정체기속에 위기를 맞이한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의 삶을 새롭게 열어주는 처방이 쉼과 여가의 재발견이라 본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쉼과 안식의 힘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복음서는 오늘 우리에게 사역과 쉼과 놀이가 함께 어우러진 메시아적 삶을 따르는 제자이자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

 

 

옥 성 삼 연대연합신학대학원 책임교수
옥 성 삼 연대연합신학대학원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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