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학과 하나님론: 가부장적 사회의 反가부장적 하나님 아버지
여성신학과 하나님론: 가부장적 사회의 反가부장적 하나님 아버지
  • 이난희 박사
  • 승인 2024.05.23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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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이난희 박사
예수님은 한 성이 다른 성을 지배, 억압하는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반대하셨다.
예수님은 한 성이 다른 성을 지배, 억압하는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반대하셨다.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한신대 여성신학 박사. 전 한신대 강사.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전 사무국장, 공동대표, 현 출판홍보위원장. 전자책 『믹스 커피 한잔, 여성, 신학, 한 스푼』, 『신 없는 시대, 여성신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여성이 묻는 삼위일체론은 무엇이 다른가?』 번역서 (공역) 『기독교는 식사에서 시작되었다』, 『뚱뚱한 예수』 그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신학(theology: theos logos)은 신, 하나님에 대한 말, 이야기이다. 따라서 신학에서의 출발이자 중심은 신론, 하나님론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 어떠한 존재인가, 그분의 속성은 무엇이고, 행동은 어떠한가?’ 등을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흔히 성서에서 그리고 교회와 대중적인 신앙 언어에서 아버지라고 불린다. 하나님 아버지, 바로 이 처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내가 경험한 아버지가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이 경험한 아버지가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갖고 있다. (이는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조선시대 이후로 유교 문화 속에서 엄격한 아버지 중심, 남성 중심과 장유유서의 문화를 이루어 온 까닭이다. 여기에는 또한 일제 식민지 통치와 오랜 군부 독재정권에 의한 상명하복의 군사문화와 급격한 산업화를 위한 일사불란한 사회 통치 체제 등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무서운 아버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는, 탁 막히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난감해진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흔히 보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미지도 대개가 중년 남성이고, 혼자서 교인들을 설교로 가르치고 이끌어 가는 것으로 보이는 남성 담임목사 한 사람의 이미지와 겹친다. 이는 칼빈이 강조한 하나님의 절대적 위엄, 하나님의 영광을 중요시함 등이 변화되어 남성 담임목회자 중심주의로 나타난 측면도 있다.

흔히 서양 사상과 문화의 두 줄기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꼽는다. 구약성서에 기반한 히브리적 사상과 고대 그리스 철학에 기반한 헬레니즘을 일컫는 말이다. 그만큼 구약성서에 기반한 사상은 그리스 철학의 사상과는 차이가 있다. 서양 고대 사회에서는 신학과 철학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다. 플라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 즉 기원전 4-5세기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 그리고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마치 인간과도 같다. 변덕스럽고 서로 시기, 질투하고 싸우기도 하며, 인간과 뒤섞인다. 인간 삶에 간섭하여 불행과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예수의 삶 및 그의 죽음 이후의 세계는 고전적 그리스 시대인 헬레니즘 시대와 그 뒤를 이은 그레코 로만 세계였다. 즉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의 사상과 문화가 당시의 지중해 세계 및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널리 확산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유대 땅을 벗어난 기독교가 그 이외의 지역에 전파되면서 선교하고 신앙을 설명하던 바울 및 사도들 그리고 속사도 교부들이 당시에 지배적이던 헬레니즘적인 사상과 언어,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불가피했다. 기독교 신학은 철학과 끊임없는 대결과 대화를 해 왔다. 예컨대 바울의 신약 성서에서 나타나는 코이노니아 (사귐, 친교) 개념은 이미 플라톤에서도 등장한 개념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예수와 빌립보서의 바울 등은 플라톤의 향연 (심포지움)에서 등장하였고 그리고 당시 그레코 로마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던 심포지움의 기독교적인 형태인 ‘agape feast’ 곧 사랑의 축제적 식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심포지움의 그리스적 가치인 코이노니아, 필리아, 이소노미아, 헤도네 등의 가치들이 신약 성서에도 들어오게 된다.

한편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와 이미지는 어떠한가? 이미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은 가부장적 사회였다. 여성은 아버지와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였다. 솔로몬 왕의 경우처럼, 권력자인 왕은 많은 여성들을 아내와 첩으로 둘 수 있었다. 그러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권력으로 지배하는 분이 아니었다.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사랑의 하나님이다. 비록 마르시온 등이 구약의 하나님을 분노와 전쟁의 신으로 보고 배격하였지만, 실제 구약성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과 같이, 하나님은 자녀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었다. 또한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를 위로함같이 (이사야서) 하나님은 택한 자를 위로하는 사랑과 돌봄의 하나님이다. 더 나아가, 버려진 핏덩이 아이를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불쌍히 보아 돌보고 키우며 걸음마를 가르치며 기뻐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돌보고 율법과 말씀을 주어 가르치며 기뻐하는 분, 당시 사회의 가장 낮고 약한 자들인 과부, 그리고 고아와 나그네의 하나님이다. 이것이 바로 가부장적 사회의 反가부장적인 아버지 하나님이며 여기에 구약성서의 아버지 하나님의 위대함과 놀라움이 있다.

시편 기자는 그러한 하나님에 대해 아름다운 서술을 하고 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창조한 피조물들을 사랑하시는 분,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분... 여성신학이 말하는, 남성지배와 여성 차별의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하나님은 바로 이 구약성서의 反가부장적인 하나님 아버지이다.

또한 신약성서에서 예수께서 드러내신 하나님 아버지는 집 나간 탕자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무조건 그 탕자를 받아주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이다. 예수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하나님은 예수를 사랑하셨고, 예수께서도 제자들 곧 우리들을 사랑하셨으며,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예수께서는 당시 사회에서 천대받던 여성들과 아이들도 포용했고 예수의 사역에 많은 여성들이 섬기며 참여했다. 그는 구약성서의 600여개가 넘는 율법조항들을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하여 우리에게 주셨다. 이렇게 사랑을 명하신 예수 역시 한 성이 다른 한 성을 지배, 억압하는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反가부장적인 분이다.

전통 신학에서 하나님은 영원불변하고, 동일한, 고정된 어떤 실체인 존재로 이해되었는데 이는 플라톤 철학 및 신플라톤 철학의 개념 틀로 이해된 하나님이다. 성서에 나타난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위로의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을 고정된 실체이며 일자인 플라톤 및 신플라톤 철학의 개념으로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다. 추상화된 개념이란 니체에 따르면 반드시 생략과 압축 따라서 왜곡을 수반한다. 추상화된 개념으로 더 나아가 그러한 개념들의 논리적인 조합인 체계로 세계의 대상들을 포착하고 파악하려는 철학은 살아 있는 인간과 살아 있는 하나님을 다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신학의 신론, 하나님론도 불완전하고 부족한 시도일 뿐이다.

여성신학의 하나님론은 여성, 여성적인 것, 여성의 심리 등을 낯선 것으로 배척, 차별, 억압하고 대상화하지 않는 포용의 하나님이다. 남성이 중심, 기본이고 그것에 덧붙여진 보조적 존재, 혹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아닌 충만한 인간으로서의 여성과 그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긍정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러한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믿을 수 있는가?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숙고하며, 주님과 대화하고 기도하는, 주님과 함께하는 삶의 경험을 통해 주 하나님을 알게 된다. 특히 요한1서 4;16에 나타나듯이 ‘사랑하면’ 주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다. 즉 믿음의 형제자매, 가족들의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사귐과 관계에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한다. 전통 신학의 신 존재 증명처럼 추상적, 사변적, 형이상학적 사고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실천을 통해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와 교회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면들이 많이 있으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남녀의 성 차이와 그 어떠한 차이도 차별과 배제, 지배와 억압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 내 옆의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고귀한 존재로 보고 섬기고 사랑할 때, 하나님 나라는 지금 이 땅에서 이미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난희 박사
이난희 박사
이화여대 영어영문학
한신대 여성신학 박사, 전 한신대 강사
여신협 전 사무국장, 공동대표
현 출판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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