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답’을 찾아서] 동막교회 120년,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머물다
[2024년, ‘답’을 찾아서] 동막교회 120년,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머물다
  • 최상현 기자
  • 승인 2024.04.04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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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_곽재욱 목사
진행_박진석 목사(본보 편집인)
정리, 촬영_최상현 기자
곽재욱 목사
곽재욱 목사

1904년 4월 15일, 서울 마포에 세워진 동막교회가 창립 120주년을 맞이했다. 동막교회 곽재욱 목사는 “우리를 인도하신 에벤에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시대의 새로운 변화와 도전 앞에서 계시의 말씀과 경건으로 올바로 응전하는 결의의 뜻을 함께 세울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동막교회는 4월 14일 120주년 기념 임직예식 거행, 28일 동막 홈커밍데이, 5-6월 역대 부목사 출신 담임목사 초청 예배, 종교 개혁지 탐방, 10월 120주년 기념 찬양제, 120주년 교회사 출판 등의 연간 사역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호에서는 곽재욱 목사를 만나 동막교회의 비전을 들어보았다._편집자 주.


Q. 120주년, 참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적 책임과 소명으로 인한 부담도 있을 것 같다. 우선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린다.

1999년 말, 동막교회에 부임했을 때 우리 교회는 100주년을 3년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래서 나의 첫 과제는 교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이제 12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고 은퇴까지 4년을 남겨 둔 시점이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섬기라고 보내신 뜻은 한국 교회의 역사와 함께 흘러온 동막교회의 존재 의미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동막교회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동막교회의 공식적인 역사는 120년에서 약 4-6년 정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된다. 교회를 세운 사무엘 무어 선교사는 매우 특별한 분이셨는데 그는 특히 서민들, 당시 사람대접도 받지 못한 백정들을 위해 고종 황제에게 청원하여 해방령을 받아냈다. 그는 억눌린 사람들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대변했고 그런 그를 도와 휴 밀러 장로가 동역하면서 교회의 기반을 닦았다.

이 교회 부지는 과거 운현궁의 끝자락에 위치한 터로, 고종황제가 교회의 부지로 쓰라고 직접 하사한 유일한 교회다. 1884년, 갑신정변 때 민영익 자객들에게 자상을 입고 쓰러진 것을 알렌 선교사가 치료하면서 큰 호감을 얻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과 동막교회 부지를 받게 된 것이다. 한편, 동막교회는 목회자와 장로의 아름다운 협력의 모델이기도 하다. 순교자만 하더라도 창립자 사무엘 밀러 선교사와 조경의 장로, 즉 목사와 장로가 한 명씩 배출된 교회다.

그리고 동막교회는 늘 지역 주민들 가까이에 있었다. 오래 전 홍수가 나면 한강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덮었다고 하는데, 당시 지역 주민들이 교회에 모여 피난 생활을 했다. 1990년대, 서울 각 지역이 개발될 때 이곳은 소외된 달동네였는데, 교회는 주민들이 쉬고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그야말로 서민들의 쉼터였던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Q. 사무엘 무어 선교사님이 가진 복음의 열정, 120년이 흐른 오늘 동막교회가 이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지역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곳곳에는 여전히 소외된 주민들이 있다. 우리교회는 가난한 이웃들, 노인들을 섬기는 한편,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도 관심을 갖고 사역중이다. 이곳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숙명여대, 서강대의 정 중앙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청년들을 어떻게 품고 인도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중 하나다.

해외 선교의 경우에는 지난 100주년 때 몽골 울란바토르에 100주년 기념교회를 세웠고, 120주년을 맞이하면서 작년에 모든 선교 자산을 현지에 이양했다. 목회자 사택, 건물과 토지, 운영권을 모두 이양한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고, 현재 그곳은 현지에서 가장 많은 청년이 모이는 교회로 자립하여 스스로 선교도 하고 있다.

Q. 목사님은 선교사로, 교수로도 사역하셨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면?

총 12개 대학에서 60학기 넘게 강의했던 것 같다. 지금도 장로회신학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모스크바 장신대, 볼리비아 개신교연합대학에서 조직신학과 기독교윤리, 사회학을 가르쳤다. 볼리비아 개신교연합대학은 공식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은 첫 학교라서 의미가 있었다. 선교는 해당 국가의 사회적 상황과 함께 어우러지지 않으면 자칫 ‘성적주의’ 선교로 변질될 수 있다. 그 사회를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진정으로 받아들인 후 변혁시키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쳤다.

Q. 팬데믹 이후, 교회 사역 측면에서 변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로 인한 목회적 대응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리 교회도 코로나로 인해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당시 나는 한국 교회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리고 교단에서는 어떤 방침을 가지고 있는지 신중하게 살피고 그에 따라 대응책을 결정했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에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타격이 컸고, 팬데믹 이후 출석성도가 30%가량 줄었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했고, 120주년을 맞이하면서 분명한 회복의 계기가 되길 기도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각 교회의 사역은 온라인으로 크게 확장됐다. 많은 교회가 오프라인과 온라인 예배를 병행하고 있는데 나는 교회의 존재 본질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주일 예배는 온라인으로 송출하되, 새벽예배는 현장에서만 드릴 수 있도록 했다. 모든 예배를 영상으로 대체한다면 자칫 예배가 아무 곳에서, 아무 시간에나, 아무렇게나 드릴 수 있는 것이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배는 성도들이 함께 만나고 접촉하며 교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온라인화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성도들이 이러한 염려를 잘 수긍해주신다.

교회 입구에 세워진 기념비

Q.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목회, 선교, 신학의 영역을 모두 넘나들며 경험한 후 그 세 가지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셋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지만 나눠져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목회지에 적용할 수 없고, 선교는 또 다른 영역으로 펼쳐지는 현실. 이제 가능하면 목회자들이 신학과 선교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는 그 세 가지 요소 모두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목회의 위기는 ‘개별주의’라고 본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가장 큰 과제, 가장 큰 적이 아닐까 싶다. 큰 교회 목사가 되면 거대한 집단의 지도자처럼 자리매김 되는 현상도 큰 문제 중 하나다.

신학의 위기는 목회 현장과 동떨어진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 커리큘럼을 보면 19세기 조직신학, 성서신학에 머물러 있다. 과연 그러한 학문으로 목회 현장의 현실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선교의 위기는 ‘성적주의’다. 성적주의는 과장, 거짓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로 깜짝 놀랄 정도의 거짓이 판을 치고 있다. 능력이 있어서 모금을 잘하는 사람들은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신실하게 선교에 헌신하는 이들은 생활도 힘든 형편이다. 이를 위한 종합적인 해결책이 필요한데, 개교회의 파송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총회 차원에서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는 특별 기구가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Q. 모든 목회자들의 고민이기도 한 초고령화 사회, 그리고 저출생 시대. 고령인구를 위한 목회, 다음 세대 목회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가?

저출산, 고령화, 세속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현재 한국 교회가 출산장려 운동도 하고 정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사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한반도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피를 나눈 2,500만 명의 동포를 남겨두신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통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이 되면 인구문제, 노동문제를 해결할 기반이 만들어 진다. 이것을 추상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통일을 준비해야하고, 나는 하나님께서 그 선물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같은 언어를 쓰는 조선족도 상당히 많다. 그들에게 국적으로 물어보면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나라와 동화율이 굉장히 높고 우리 문화에 관심도 많다. 뿐만 아니라 몽골 선교를 해보니 현지인들이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고 외모도 거의 비슷했다.

즉, 우리나라가 통일을 넘어 조선족, 고려인, 몽골인 까지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회 또한 이주민들이 잘 동화될 수 있게 관심을 가지고 관련 사역을 해나가면 좋겠다.

동막교회 역사관에서.
동막교회 역사관에서.

Q. 끝으로 목사님의 비전이 있다면?

졸업을 잘하는 것이다. 목회자들이 졸업을 잘 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일평생 섬겨온 교회와 목회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졸업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그 모델을 남기고 싶다. 이를 위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과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동막교회 120주년 사역에 집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차기 목사님께 사역을 잘 이양하는 것, 원만하게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100주년, 111주년, 120주년을 잘 섬겼으니 다음에 섬길 목사님이 130주년을 잘 맞이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사실 지난 25년 간 품고 있었던 꿈이 있었는데 사회교육관을 짓는 일이었다. 될 것 같으면서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되자, 내 일이 아니라 다음 사역자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할 때까지 기반을 잘 만들어 두는 것이 남은 비전이다.

한국 땅에 동막교회를 세우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주님께 영광과 감사, 찬양을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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