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비롯하여 한국 사회의 전(全)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왜냐하면 기독교 이단과 사교 집단들이 표출하고 있는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들은 종교 중독이 빠진 이들이 신앙이라는 미명 아래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더 고민해야 하는 사실은 여전히 자신을 ‘메시야’라 자처하는 이들이 백여명에 달하며 이들은 발생시키는 종교 중독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진정 발견할 수 있을까?
그런데 종교 중독에 빠졌다가 빠져나온 이들의 인터뷰를 자주 접하다 보면 해결책을 위한 실마리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초기 종교 중독자들이 이단과 사이비 집단들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과 소위 정통교회들의 가르침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교주를 중심으로 구원을 사유화하는 이단 및 사이비 집단들의 구원에 대한 가르침이 기존 교회의 구원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문제는 ‘구원론의 왜곡’이라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필자는 작금의 현실이 과거 한국교회가 양적 성장을 위해 무시해 왔던 종교 중독의 문제와 이를 심화시켰던 왜곡된 신학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번영신학과 근본주의는 한국교회의 구원론 왜곡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첫째, 번영신학의 경우, 구원론 왜곡의 가장 직접적인 역사적 요인이다. 왜냐하면 군사독재 시절의 한국교회는 시대적 사명보다는 개발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감당하며 양적 성장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70~80년대의 소위 ‘한국교회의 놀라운 대부흥’은 사실 번영신학에 의한 구원론의 직접적인 왜곡의 결과였다. 당시 교회의 양적 성장을 주도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원론을 단순화하였을 뿐 아니라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성공을 기독교적 구원으로 둔갑시켰다.
이는 자본의 주물화(呪物化)를 의미하는 것이며 개신교가 주물숭배(呪物崇拜, Fetishism)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기독교 이단과 사이비 집단들에서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둘째, 근본주의에 의한 구원론의 왜곡이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구원론은 거의 유사한 가르침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대적 환경에 따라 지속해서 변화해 왔다. 이는 구원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이 달라져서라기보다는 그 가르침을 이해하는 이들의 인식이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한국교회 내 근본주의자들은 19세기 말에 등장하여 1920년대에 구체적으로 정립된 미국의 강경한 근본주의의 구원론을 모든 시대에 걸쳐 통용되어 온 유일한 구원론인 것처럼 주장하며 구원에 대한 가르침을 단순화하고 변질시켰다.
하지만 보수적인 혹은 근본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구원론의 핵심이라 여겨지는 ‘구원의 여정’에 대한 설명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나아가 찰스 핫지(Charlse Hodge)는 구원의 여정으로 구원론을 단순화하기 보다는 구원계획(예정과 은혜언약),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그리고 이 사역을 성도의 구원에 적용하는 성령의 사역들을 구원론의 내용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주의의 문제는 20세기 번영신학의 부흥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구원론의 왜곡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21세기 한국교회 내 구원론의 진정한 회복은 첫째, 기독교 역사를 통해 구원론이 어떻게 변화해 왔고 무엇이 변화되지 않았는가를 면밀하게 살피며, 둘째,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구원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신학적인 공론의 장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