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영화와 복음]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3.05.29 2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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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동어반복이 아니다. 같은 ‘크레이머’끼리의 싸움이다. 물론 중의적으로 사용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남편 테드 크레이머와 아내 조안나 크레이머 사이의 양육권 분쟁이다. 하지만 좀 더 내면으로 들어가면, ‘크레이머’라는 한 개인의 가정과 사회에서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거기엔 단지 남편, 아내, 아이로 구성된 가정의 역할과 관계를 넘어서서 직장과 동료, 사회적 역할과 시선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고 자각하는 자아정체성 확립과 자아 성취의 문제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크레이머’로 대표되는 한 부부의 이름에는 여러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로버트 벤튼 감독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가 단지 이혼한 부부의 양육권 소송에 관한 영화로만 그치지 않는 이유다.

테드(더스틴 호프만)는 유능한 회사원이지만 가정엔 소홀하다. 어느 날, 몇 차례의 귀띔에도 반응하지 않는 남편에 지친 조안나(메릴 스트립)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라고 선언하고 집을 나간다. 7살 난 아들 빌리(저스틴 헨리)와 남게 된 테드는 난생처음 접하는 집안일이 매우 서툴다. 빌리를 깨우는 일부터 아침을 준비하고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픽업하고 놀아주는 반복되는 일상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 때때로 발생하는 소소한 사건에 상담까지 해야 한다. 그러면서 직장에선 어렵게 따온 프로젝트도 완수해야 한다. 모든 게 낯설고 실수투성이인 테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와의 생활에 익숙해가고 아내 조안나의 심정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집안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회사 내의 역할과 성과는 줄어들고, 결국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해고된다.

한편, 테드를 떠난 조안나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자아정체성을 찾고 우울증도 극복하지만, 아들 빌리에 대한 마음만은 견딜 수 없었다. 이에 테드를 찾아가 빌리를 데려가겠다고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조안나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빌리의 양육권 소송에 들어간다. 법원에서 대리전으로 치러지는 양육권 분쟁. 여전히 상대방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남아있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양측 변호사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밝히지 않아도 될 감춰진 모습까지 드러내며 논증하고, 결국 조안나의 승리로 판결 난다. 드디어 빌리를 데려가는 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게 빌리와 하루를 시작하는 테드를 보며 조안나는 아들을 데려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다 보니, 조안나 역시 테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마음이 생긴 까닭이다. 다시 엘리베이터 앞, 눈물을 닦으며 조안나가 테드에게 묻는다. “나 어때?” “아름다워!” 미소 띤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영화는 끝난다.

1970년대 미국 사회. 당시까지 아이 양육은 전적으로 엄마의 책임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사회가 분화·발전하고 다양화되면서 여성의 권리와 주장이 커졌고, 엄마와 아내의 역할뿐 아니라 한 개인이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아정체성 확립과 실현에 관한 문제가 생겨났다. 이제 여성의 역할은 단지 집안일만 맡는 것에서 벗어나, 자아실현과 사회와 직장에서 충분히 제 역량을 발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때 대두된 가장 큰 이슈가 아이 양육과 부부간 역할에 관한 자리매김이다. 생각과 의견의 차이가 생겼을 때, 남편과 아내는 남남으로 만났으니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자녀는 혈연으로 연결된 존재이기에 인위적인 방법으로 그 관계를 끊을 수도 없고 끊어지지도 않는다. 테드와 조안나 사이에 발생한 문제는 표면적으론 아들 빌리의 양육에 관한 어려움과 책임소재의 유무 때문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계기도 빌리에 대한 사랑의 마음 때문이다.

가정에 문제가 발생할 때 가장 아픔을 겪는 건 아이들이다. 부모가 싸우는 원인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자책한다. 결국, 삐뚤어지고 어긋난 정체성을 갖게 되고 분열되고 왜곡된 자아상이 생겨난다. 비록 생리적 차이로 인한 남녀 역할의 구분은 어쩔 수 없지만, 변화하는 사회에서 남녀와 부부의 역할은 예전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것이 사랑이 바탕이 된 상호이해와 공감, 협력이다. 단지 ‘사랑 때문에’라는 감성적 차원을 넘어서서, 삶의 주체로서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며 이뤄가는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 더불어 일과 삶의 조화도 중요하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단지 아담과 하와를 통한 생리적 결합만을 의도하신 건 아니다. 온 인류의 온전하고 건강한 번식과 번성을 위해서는 공동체와 하나됨 그리고 관계성이라는 사회적 측면이 다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돕는 베필(suitable helper)’은 연약하고 열등한 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이 갖지 못한 탁월한 성격과 능력의 소유자임을 전제한다. 그것은 배타적 이기주의를 넘어선 조화와 연합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숭고한 희생이자 선을 위한 몸부림으로 표출된다.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문화사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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