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얇은 곳 Thin Places
[전문가 칼럼] 얇은 곳 Thin Places
  • 이민재 목사
  • 승인 2023.05.29 2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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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ertlukema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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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곳(thin places)’이라는 말은 켈트 영성에서 사용하는 매우 의미 깊은 은유이다. 켈트 영성은 5세기쯤에 시작되어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그리고 영국 북부지역에서 번창했던 기독교 형태다. 특히 켈트족의 창조 영성은 『원복(Original Blessing)』의 저자 매튜 폭스 같은 사람을 통해 요즘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영성가요 의사요 작가요 작곡가요 생물학자요 이 외에도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빙엔의 힐데가르트 같은 여성도 대표적인 켈트 영성가다.

‘얇은 곳’이란 무엇일까? ‘두꺼운 또는 두터운(thick)’ 곳의 반대다. 그러면 두꺼운 곳은 무엇일까? 고대 세계관에 따르면 하늘과 땅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영역이다. 전혀 다른 실재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간격은 멀다. 즉 두껍다. 그런데 하늘과 땅의 간격이 가까워지는 곳, 즉 얇아지는 곳이 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하늘이 땅에 닿고 침투하고 스며드는 곳, 성(聖)과 속(俗)이 만나는 곳, 성과 속의 접경지역이다. 일종의 성소요 거룩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성스러움은 매개 없이 세속에 현현한다. 이런 ‘얇은 곳’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현존을 그 어떤 곳보다 강하게 느낀다.

켈트 기독교에서는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선에서 좀 떨어진 이오나 섬이 고전적인 ‘얇은 곳’이다. 전통적인 순례지들 곧 예루살렘과 로마 성지도 얇은 곳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지 않아 실의에 빠진 아브라함이 광활한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된 곳도 ‘얇은 곳’이다.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하던 중 노숙하다가 꿈속에서 하늘의 사닥다리를 본 벧엘도 ‘얇은 곳’이다. 형을 만나기 전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뇌하다가 천사를 만난 얍복강도 ‘얇은 곳’이다.

모세가 양 떼를 치다가 하나님을 만난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도 ‘얇은 곳’이며,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산도 ‘얇은 곳’이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이긴 갈멜산도 ‘얇은 곳’이며, 특히 실의에 빠졌을 때 하나님이 “완전한 침묵의 소리(sound of sheer silence, NRSV)” 가운데에서 자신을 드러내셨던 호렙산도 ‘얇은 곳’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인간 무의식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을 대면하고 극복하게 한 광야야말로 ‘얇은 곳’이었다. 이러한 얇은 곳에 대한 경험이 초대교회를 세우고 확장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자기만의 ‘얇은 곳’을 간직한 사람이다. 기도원도 좋고, 피정의 집도 좋고, 원초적 자연이 보존된 숲도 좋다. 하지만 공간이나 장소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얇은 곳’이다. 내면의 얇은 곳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가로막는 에고가 사라진 내면 상태다.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을 왜곡하는 거짓 자아가 해체된 내면 상태다.

에고가 사라지고 거짓 자아가 해체된 내면 상태, 그게 바로 ‘가난한 마음’ 곧 무심에 이른 마음이다. 예수님은 괜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 게 아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장소는 문제가 아니다. 에고와 거짓 자아에서 해방되어 무심에 이르렀기에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현존을 알아차린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행 17:27-28)

궁금하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동시대인들에게 얇은 곳일까?

이민재 목사<br>은명교회 담임<br>감신대 객원교수
이민재 목사
은명교회 담임
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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