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역사를 거슬러 노동 지옥 사회로 돌아가기
[특별 기고] 역사를 거슬러 노동 지옥 사회로 돌아가기
  • 노중기 교수
  • 승인 2023.05.18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

노동개혁(改革)이 아닌 개악(改惡)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정부가 가장 많은 노력을 집중한 정책이 바로 노동정책이었다. 작년 5월 집권 직후와 연말 두 차례 진행된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나름 ‘성공적인’ 대응 이후 ‘노동개혁’은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그것은 교육개혁, 연금개혁과 함께 새 정부가 내세운 3대 개혁과제였고 그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노동문제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모순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해결하기 힘든 과제에 속한다. 특히 비정규직 차별 등 노동시장의 일자리문제는 청년들이 결혼도 하지 않고 출산도 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매년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극도로 낮은 출산율 문제는 사실상 노동문제인 것이다. 또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배가 넘는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 문제의 배후에도 노동문제가 있었다. 빈약한 사회복지 속에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노령 노동자들이 빈곤의 사각(死角)지대에서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 사회의 현실 때문에 윤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는 그 자체로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 영세기업,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갈라놓은 이중노동시장의 불공정과 차별을 없애겠다는 대통령의 되풀이된 약속이 그러하였다.

그러나 집권 1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정부 ‘노동개혁’의 실상은 약속과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개혁(改革)이 아닌 개악(改惡)이었다. 지금도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을 더 악화시켜 그야말로 최악의 ‘노동지옥사회’를 만들려는 시도 외에 어떤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과 실제 행동이 다른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국민에게 한 약속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정부, 대통령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말 그대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이 아닐 수 없다.

먼저, 주 69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려 시도한 것은 ‘개혁’과 전혀 무관한 역사적 퇴보였다. 대통령은 청년들이 일할 때 일하고 길게 쉬는 것을 원한다고 강변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였다. 노동부장관은 대통령을 따라 ‘노동시간 연장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개혁정책’이라는 억지로 지난 1년을 일관하였다. 대선 전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노동할 수도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 실수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현재 우리 노동법은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예외적인 경우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 주 52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법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주 40시간은 물론 52시간도 넘는 불법적인 노동이 넘친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1년에 300시간 이상 더 노동하는 장시간 노동국가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시간을 줄여 과로사와 산업재해 사망자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 시급한데 시간을 거꾸로 돌려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자는 셈이다.

계속되는 반민주적 탄압

다음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반민주적 탄압으로 일관한 지난 1년이었다. 이른바 ‘법치주의’로 노동현장의 불법과 부정을 일소하겠다는 명분이었으나 실제로는 전형적인 국가의 폭력 행사일 뿐이었다. 정부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의 회계장부를 들여다보고 전국의 건설노조 조직과 노동자 수백 명을 이 잡듯 수사하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토교통부와 노동부장관 등의 되풀이된 불법·비리 엄단 발언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확인된 불법과 비리는 극히 미미하였다. 결국 노동절 날 양회동 건설노동자가 분신 항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가의 불법적인 노동자 탄압이 반세기 전 전태일의 비극을 다시 불러온 것이었다.

법치주의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노동 탄압은 두 가지 점에서 반동적인 행태였다. 먼저 지난 40년 가까이 진행되어온 민주화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일이었다.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헌법적 권리이고 1987년 민주화투쟁의 성과였으므로 이를 되돌려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 시대로 돌아가는 일은 역사적 반동이었다. 또 국가가 주도하는 대국민 사기극이란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노동탄압을 노동‘개혁’으로 홍보 선전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불법·비리를 만들어내어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억압하는 것은 역사적 퇴행일 뿐이다.

셋째,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은 사실상 재벌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다. 작년 3월 대통령선거 직후 방문한 윤석열 당선자에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재계의 요구사항을 자세히 정리하여 전달했다. 당시 재벌의 노동관련 첫 번째 요구가 노동시간의 연장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 현재에도 노동‘개혁’의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직무성과급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파견노동 확대’, ‘파업 시 대체노동자 투입의 합법화’ 등도 모두 전경련 요구사항에 포함되어 있었다.

1987년 민주화항쟁 이래 이렇게 내놓고 재벌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한 정부는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정부는 기업(자본)의 요구를 수용하더라도 노동과 조율하거나 또 노동의 요구와 교환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정치적 조율과 교환을 제도로 만든 것이 사회적 대화 기구였다. 이는 대다수 선진국 민주정부가 노동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대화를 실질적으로 거부하고 재벌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하는 자유는 ‘가진 자의 자유’일 뿐이다.

집권 1년이 지나면서 노동자들은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현대사에서 노동자들은 국가의 탄압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민주노총은 이미 정권 퇴진 투쟁을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 69시간 노동’이라는 윤석열정부의 퇴행적 시도는 이미 실패하고 있다. 지금은 노동자를 시대착오적으로 억압한 권력의 말로가 어떠했던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노중기 교수<br>한신대 사회학과
노중기 교수
한신대 사회학과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