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다산 정약용과 매화
[예술과 목회] 다산 정약용과 매화
  • 이경용 목사
  • 승인 2023.03.24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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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매화의 계절이다. 어느새 3월도 지나며 매향(梅香)도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다. 매년 3월이면 광양 매화축제가 있다. 오랜만에 광양에 가서 흐드러진 홍매, 청매, 백매를 보며 매향에 만취하고 봄을 만끽하였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매화도 한철이니 아니 가볼 수 없었다.

매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간송미술관의 사군자 전을 보면서이다. 오래전 우연히 신문에서 사군자 전시회 소식을 접하고 무엇엔가 끌리듯 다녀왔다. 단편적으로 알던 사군자들을 둘러보며 감동하며 압도당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난국죽(梅蘭菊竹)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작품마다 이런 기가 막힌 인생 스토리가 있다니, 설명을 듣고 천천히 둘러보는 내내 깊은 감동이 마음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사군자(四君子)라 한다. 군자란 본디 유교에서 지향하는 이상적 덕목을 가진 인간상으로 선비정신을 온전히 간직한 고결한 사람을 일컫는다. 어느 때부터인지 선비들은 매란국죽에서 그들이 지향하는 군자상을 발견하고 사군자라 부르기 시작했다. 매화는 눈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려 매향을 흩날리고, 난초는 박토에서 척박하게 살지만 맑은 향을 발한다. 국화는 찬 서리 내린 가을에 홀로 피어 오상고절을 자랑하고, 대는 절도 있게 수직으로 자라며 속은 비었으되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문사들은 매화의 아치고절(雅致高節), 난초의 외유내강(外柔內剛), 국화의 오상고절(傲霜孤節), 대나무의 세한고절(歲寒孤節)을 선비의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 문인화로 그려내었다.

정약용의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다산 정약용은 매화를 좋아한 분이다. 강진에서 귀양살이할 때도 다산초당에 매화를 심고 가꾸며 「다산팔경사」와 「다산화사」란 시에서 매화를 노래하였다. 특히 유배 중에 시집가는 딸 홍연을 위해 「매화쌍조도」를 그리고 결혼을 축복하는 시를 써주었다. 한 달 뒤엔 소실에게서 난 딸 홍임을 위해서도 「독매조도」를 그리고 어린 딸의 미래를 염려하며 축복하는 시를 지어주었다.

「부득당전홍매」 시비. 이경용 목사 제공.
「부득당전홍매」 시비. 이경용 목사 제공.

개인적으로 굳이 먼 광양까지 간 것은 광양매화문학관 앞에 있는 다산 정약용의 매화 시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학관 앞에는 다산의 「부득당전홍매(賦得堂前紅梅, 부득당 앞의 홍매)」란 시비가 있다. 이 시는 다산의 부친이 화순 현감으로 있을 때, 화순을 방문하여 지은 것이다.

대숲에 자리 잡은 그윽한 집, 창 앞에 한 그루 매화나무 서있네.

꼿꼿하게 눈서리 견디어 내어, 해맑게 티끌 먼지 벗어났구나.

해 지나도 꽃소식이 감감하더니, 봄이 오자 스스로 활짝 피었네.

그윽한 향기엔 진정한 속기 없으니, 붉은 꽃잎만 사랑스러운게 아니지.

 

다산은 겨울을 이겨내고 붉게 피어난 홍매를 감상하며, 그 그윽한 향기에 속기가 없다고 노래한다. 매향은 알싸한 톡 쏘는 청량한 향이 매혹적이다. 인공향수처럼 느끼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신선함과 청량함이 뼛속까지 맑게 하는 신비로운 향이다. 바울은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라 한다. 혼탁한 냄새와 매연이 난무하는 시대, 뼛속까지 맑게 하는 매향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한 갈망을 담아 오늘도 매화나무 아래서 매향을 맡으며 묵상한다.

 

이경용 목사<br>청주영광교회 담임목사<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br>영성나무 대표<br><br>저서<br> 『감정치유기도』(두란노) <br>『말씀묵상기도』(Lectio Divina, 예전단) <br>​​​​​​​『고난에 대한 다산 정약용과 욥의 대화』(영성나무) 등
이경용 목사
청주영광교회 담임목사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영성나무 대표

저서
『감정치유기도』(두란노)
『말씀묵상기도』(Lectio Divina, 예전단)
『고난에 대한 다산 정약용과 욥의 대화』(영성나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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