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전문가 칼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 임재훈 목사
  • 승인 2023.03.20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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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한참 전에 창문을 통해 아무것도 없고 아주 커 보이는 샛별만이 있는 시골을 보았다.” (Letter 593, c.2 June 1889)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어느 새벽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밤하늘에서 받은 인상을 담은 편지를 보내며 그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1889)의 탄생 배경을 언급하였다. 얼마 전 편지에 등장하는 창문이 있는 프로방스의 한적한 시골에 있는 생 레미 요양원(Cloître et Clinique de St-Paul-de Mausole, Saint-Rémy-de-Provence)에 다녀왔다. 고흐가 일 년간 머물렀던 병실에 한참 동안 서 있으면서 그 방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을 고흐의 시선, 고흐의 마음을 느껴보려 하였다.

사진1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73,7x92,1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73,7x92,1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고흐의 병실, 생 레미 요양원
고흐의 병실, 생 레미 요양원
고흐의 병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 생 레미 요양원
고흐의 병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 생 레미 요양원

수년 전 뉴욕근대미술관(MoMA, NY)에서 작품을 대면하였을 때는 거친 붓 터치로 묘사한 밤하늘의 역동적인 형상과 화면을 가득 채운 강렬한 원색의 색채들이 표현하는 그의 감정의 흐름이 우선해서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쇠창살이 있는 요양원의 작은 방과 종종 산책이 허용된 옛 수도원 건물을 에워싼 구릉지와 사이프러스와 라벤다 등의 수목과 화초로 우거진 자연환경을 접하고서 작품에 담겨있는 그의 예술혼과 불굴의 소망, 깊은 영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 레미 요양원 입구의 해바라기를 든 고흐 동상
생 레미 요양원 입구의 해바라기를 든 고흐 동상
옛 수도원(Monastere Saint-Paul-de-Mausole) 건물에 있던 요양원
옛 수도원(Monastere Saint-Paul-de-Mausole) 건물에 있던 요양원

 

2. ‘별이 빛나는 밤’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가 아를(Arles)에서 고갱과의 불화로 귀를 자른 자해 사건(1888.12) 후 우울증의 치료를 위해 스스로 입원한 생 레미 요양원 시절(1889.5-1890.5)의 작품이다.

요양원에서 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1층에 마련된 아틀리에에서 작업할 때는 맑은 정신으로 임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10년 남짓한 고흐의 화가로서의 활동기(1880-90) 중 아를 시기부터 정립한 그의 화풍이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 때이다.

‘별이 빛나는 밤’은 화면의 구성과 균형, 조화, 비례, 강조 등 조형적 요소들이 잘 구비되었고 특유의 임파스토 기법도 완벽하게 구사된 완성도가 높은 명작이다. 일반적으로 고흐를 후기인상주의(Post-Impressionism)로 분류하지만, 그는 이 작품에서 이미 사실의 재현에 머물던 인상주의를 넘어 색채의 주관적인 사용으로 작가의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주의의 길을 엶으로 현대미술의 태동을 이루었다. 또한 낮에 실외에서 대기와 자연광의 변화에 따른 순간을 재현한 외광파(Pleinairisme)의 전통과 달리 밤의 정취와 분위기를 표현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1888), ‘밤의 카페 테라스’(1888) 등 자신의 밤 연작에서도 밤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ône), 1888, oil on canvas72.5×92cm, Musée d'Orsay, Paris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ône), 1888, oil on canvas72.5×92cm, Musée d'Orsay, Paris
밤의 카페 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 1888, oil on canvas, 80.7×65.3cm,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밤의 카페 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 1888, oil on canvas, 80.7×65.3cm,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화면 중앙에 표현된 나선형으로 운동하는 흰 구름과 굵고 짧은 붓 터치로 표현한 대기의 움직임, 동그란 달무리와 별 무리에 에워싸여 밝은 빛을 발하는 달과 별의 묘사를 그의 정신질환에서 오는 몽환적 표현으로 보는 이해는 광기의 천재라는 ‘고흐 신화’가 작품의 올바른 해석을 오도한 대표적 경우이다.

 

3. 작품의 화면은 세 가지 모티브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부분은 화면의 2/3를 차지하는 밤하늘의 모습이다.

짙은 코발트블루의 하늘은 연이어서 채색하지 않고 짧게 끊은 점선과 굵게 찍은 점을 이어 그려 점선의 방향으로 밤이 움직이는듯한 느낌을 준다. 그 가운데를 관통하여 흐르는 흰 구름은 폭풍우가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면서 격정적이고 역동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우측 상단에는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칠해진 그믐달이 점선으로 연결된 달무리에 에워싸여 태양처럼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으며, 편지에서 언급한 샛별은 회오리치는 대기의 움직임 아래,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천상의 열한 개의 별 중 가장 크고 밝게 빛나고 있다.

샛별의 발광을 강조하기 위해 노란색과 흰색을 두텁게 칠할뿐더러 아예 튜브에서 짜낸 물감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고 캔버스에 바르는 방식을 취하였다. 각각의 별들은 별 무리와 함께 빛나고 있으며 곡선이 강조된 하늘 전체는 유동적인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타오르는 검은 불꽃 같은 형상의 사이프러스 나무이다. 고흐가 아를 시절에 선호한 모티브가 해바라기라면 생 레미에서는 사이프러스에 집중하였다. 해바라기가 낮, 태양, 사랑, 삶을 상징한다면 사이프러스는 밤, 달, 고독, 죽음을 의미한다.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듯 수직으로 상승하는 이미지를 지닌 사이프러스는 프로방스 풍경의 전형적인 요소였으며 특히 수도원 주변에 많이 심긴 수종이었다. 사이프러스가 이루는 수직의 선은 완만한 구릉지가 이루는 수평의 선과 함께 화면을 구성하고 있고 우측 상단에서 밝게 빛나는 달의 반대편 좌측에서 어둡게 채색되어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이프러스는 땅과 하늘을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흔들림 없이 대지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사이프러스는 마음의 병을 얻은 고흐를 위로하였으며 하늘로 우뚝 솟은 생명력은 구원의 상징인 하늘로 향하는 고흐의 마음을 격려하였다. 또한 사이프러스는 고흐가 존경하는 화가 밀레 이후 인상파에서 추구해온 자연과의 직접적인 교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격동하는 짙푸른 하늘과 어두운 실루엣을 이루며 검게 치솟는 사이프러스를 확인한 관람자의 시선은 화면의 세 번째 부분인 고요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로 향하게 된다. 밝은 하늘과 대조적으로 마을은 어둡고 차분하며 평온한 분위기이다. 화면의 중경을 이루며 마을을 감싼 듯한 구릉지와 올리브 숲의 곡선 그리고 몇몇 집 창으로 보이는 노란 불빛은 포근한 안락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요양원 창을 통해 내다본 외부에는 원래 인적이 없는 산과 들, 나무와 꽃만이 있는 자연의 세계이다. 화면에서 하늘 아래에 펼쳐진 마을의 풍경은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고흐의 기억 속에 있는 생 레미와 고향 뉴넨(Nuenen)의 모습이 오버랩 된 광경이다.

그리고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는 교회의 첨탑은 프로방스 양식이 아니고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였던 고흐의 부친 테오도로수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22-85)가 목회하던 뉴넨교회의 첨탑 모습이다.

원래 목회자가 되기를 원했던 고흐는 벨기에 보리나주 광산에서의 헌신적인 사역이 교회지도부에 비판적으로 여겨져 목회의 길이 좌절된다. 고흐는 자신에게 그림으로 설교해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는 소명이 있음을 깨달아 27세의 나이에 뒤늦게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런 결정의 배후에는 구필 화랑 헤이그·런던·파리지점 사원으로 근무했던 경험이 작용하였다.

헤이그에서의 본격적인 미술 수업 중 시엔과의 이별로 상심한 고흐는 뉴넨에 귀가해 약 이 년간(1883.12-1885.11) 가족들 곁에 머무른다.

뉴넨교회의 모습을 담은 ‘(예배 후) 교회를 나서는 뉴넨교회 회중들’(1884), 농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을 담은 ‘감자 먹는 사람들’(1885) 그리고 부친의 사망 후에 제작된 ‘성경이 있는 정물’(1885)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예배 후) 교회를 나서는 뉴넨교회 회중들, 1884, oil on canvas, 41,5x32,2cm,Van Gogh Museum, Amsterdam
(예배 후) 교회를 나서는 뉴넨교회 회중들, 1884, oil on canvas, 41,5x32,2cm,Van Gogh Museum, Amsterdam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1885, oil on canvas, 82×114cm,Van Gogh Museum, Amsterdam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1885, oil on canvas, 82×114cm,Van Gogh Museum, Amsterdam
성경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Bible), 1885, oil on canvas, 65.7x78.5cm, Van Gogh Museum, Amsterdam
성경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Bible), 1885, oil on canvas, 65.7x78.5cm, Van Gogh Museum, Amsterdam

화면의 마을 중앙에 나타나는 교회는 부친이 목회하던 곳이다. 또한 뉴넨은 타향살이에 지친 고흐를 품어준 가족들과 함께 지낸 고국에서의 마지막 마을이다. 그리고 네덜란드 시절의 어두운 색조의 초기작이 제작된 젊은 고흐의 꿈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긍휼(Compassion)의 심정이 어려 있는 곳이다. 그런 뉴넨교회의 첨탑이 하늘과 맞닿아 있지 않고 예배당의 불빛이 꺼져 있다고 해서 신앙에 대한 부정의 상징으로 그려졌을 리가 없다. 고흐에 대한 어느 일본 평론가의 고흐에 대한 몰이해의 산물이다.

오히려 부산하게 운동하는 하늘과 달리 정적으로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을의 중심에 교회가 있다. 지독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의 순간에도 고흐가 예술혼을 품고 미래를 향해 다시 일어날 수 있게끔 희망을 불어넣은 그 근원에 뉴넨의 교회, 그의 믿음이 있다.

 

4. 폭풍우 치는 바다의 요동하는 물결과도 같이 묘사된 하늘의 움직임과 짙은 코발트블루와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가득한 화면은 이 작품을 고흐의 병든 심리상태와 연결 짓게 한다.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의의는 관람자가 ‘별이 빛나는 밤’에서 느끼는 기쁨과 밝음, 리듬감, 생명력, 에너지, 꿈틀거리는 밤이 지나 동터올 새벽에 있다.

고흐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어려운 처지에서 희망을 구했고 그의 예술혼에 불을 지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고향 누넨교회의 첨탑으로 상징되는 믿음, 가족,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놓여있다.

 

시인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이렇게 별을 헤아리다가 어머니에 이르러서 별은 어느덧 북간도의 어머니에게로 도달한다.

윤동주에게 어머니가 민족, 교회, 신앙을 의미한다면,

고흐에게 부친이 목회하던 뉴넨의 교회당 첨탑은 가족, 그리운 고향, 희망의 근원지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표현된 하늘의 빛나는 별들은 굴하지 않는 고흐의 예술혼과 희망을 상징한다. 그리고 교회 첨탑은 고흐 예술의 근원이 되는 기독교 신앙과 영성(Henri Nouwen)을 의미한다.

 

임재훈 목사 <br>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br>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br>​​​​​​​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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