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신학대 권승일 총장, “하나님이 네팔선교를 준비시키셨다”
네팔신학대 권승일 총장, “하나님이 네팔선교를 준비시키셨다”
  • 엄무환 국장
  • 승인 2023.03.12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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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회사업학과 들어가다 졸업 후 사업하여 돈 엄청 벌었다
아내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서원기도하다
신대원 다닐 때 선교를 시작하다

(지난 호에 이어) 네팔신학대학교 총장 권승일 목사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선교의 삶을 살도록 훈련시키셨다"며 어떻게 네팔선교에 관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간증했다.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님이 사역하시던 때 새벽 4시 반 경 교회에 가서 목사님을 불렀다. 목사님이 파자마 바람으로 나오셨다. ‘대학을 가야겠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가겠습니다. 하다하다 안돼서 하나님의 도심을 받아 대학을 가려고 합니다’라며 기도를 부탁드렸다. 목사님이 기도해주셨다. 주일도 얼마나 잘 지켰는지 한 번도 안 빠졌다"

선교가 너무 은혜스럽다며 활짝웃는 권승일 목사 / 사진 엄무환
선교가 너무 은혜스럽다며 활짝웃는 권승일 목사 / 사진 엄무환

서울대 사회사업학과 들어가다

"대학교 입학원서 쓸 때 성령 충만했다. 그래서 신학교를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아버지가 서울법대 외엔 눈에 들어오는 게 없으셔서 최소한 서울대는 가야만 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구현할 학과가 어느 것인지 찾았다. 사회사업학과가 그래도 제일 가까운 것 같았다. 그래서 사회사업학과를 결정하고 원서를 썼다.

시험시간에도 기도밖에 안 했다. 시험을 치르는데 계속 아는 게 나와서 내 생각에 ‘희한하네 아는 게 막 나오네’

대학에 합격했다. 이게 나의 간증이다. 서울대 졸업생이지만 시험 볼 때 정말이지 ‘하나님 붙여주세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다. 내 실력으론 안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시험이란 게 그렇잖은가. 한두 개 차이로 떨어지고 하잖은가. 제가 수학을 못했다. 그런데 수학 문제가 줄줄줄 풀리는 거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막 풀리는 거다. 시험치르는데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아 하나님이 도와주시는구나’ 이런 과정을 거쳐 서울대에 들어갔다"

졸업 후 사업하여 돈 엄청 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슨 마음이 있었냐면 처음에 그 분야로 나가려고도 생각했었는데 ‘아니야 돈을 벌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40세까지 열심히 하고 그다음에 교수를 하든지 하겠다고 결혼 전에 아내랑 약속했다.

그래서 서울대 출신 선배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비지니스를 배웠다. 모델이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었다. 그 회사에서 2년쯤 있다가 나와서 회사를 세웠다.

마침 중동 붐이 일었다. 오일 달러가 엄청 많았다. 대한민국에서 우리 회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회사가 번창했다. 아마 우리나라 목회자 중에 나만큼 돈 번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제가 선교훈련을 어디서 받았느냐 하면 그때 받았다. 아무도 모르는 사우디에 가서 맨발로 찾아다니며 바이어들을 일일이 계발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서 비즈니스를 해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해야만 했다. 그 결과 아랍어는 물론 독일어 일본어도 하게 됐다.

그 때 돈 많이 벌었다. 그런데 회사가 뱅크런이 됐다. 교만이 하늘을 찔러서다. 잘 벌다가 문제가 터진거다.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사 망하고 나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아내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다

"그렇게 고생했지만 사업을 또 시작했다. 일본을 대상으로. 그런데 그때 아내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신장과 심장 쪽에 문제가 생긴거다. 그래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문제는 의사들이 수술을 안 시켜주는 거다. 치사율이 많다고 해서.

86년도에 수술을 하긴 했지만 77년도에 결혼한 이후 10년 동안 수술을 못했다. 치사율이 70~80프로라며 수술하다가 죽을 수 있다고 해서다. 그런데 사람이 아프면 신앙적이 되지 않은가. 아내가 점점 신앙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내를 고생시키신 것은 나를 당신의 종으로 부르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땐 몰랐다"

네팔신학대학 학생들과 권승일 총장(빨강색 안)
네팔신학대학 학생들과 권승일 총장(빨강색 안)

서원기도하다

"난 원래부터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는데 결혼하고서도 주일학교 교사를 계속 섬겼다. 그러다가 86년도에 제가 마흔 살 때 아내가 수술을 했다. 치사율이 80%가 된다고 하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아내가 수술하고 중환자실에 나와 56일간 6인실 일반병실에 있었는데 거기서 수술한 사람 다섯 명이 죽었다. 당시 심장판막 수술이 그만큼 어려웠다.

아내의 수술을 앞두고 ‘아내를 살려만 주시면 제가 주의 종의 길을 가겠습니다’ 서원기도를 했다. 서원기도 때문인지 하나님이 아내를 살려주셨다. 확률로 보면 80%는 죽고 20%는 살 수 있다고 했으니까 20%에 들어간거다.

어쨋든 서원을 지켜야해서 순복음신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순복음교회를 다녔기 때문이다. 순복음신학교밖에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졸업하고 순복음교회 전도사가 됐다.

그런데 부족한 게 있었다. 교수들이 부흥사이다 보니 학문성이 부족했다. 구약학교수도 부흥사고 신약학 교수도 부흥사고 학문성이 떨어지는 거다. 게다가 신학대학원이 없었다. M.Div가 없었다. 당시엔 한세대학교도 M.Div가 없었다. 그래서 간 곳이 장신대다.

그런데 그때 장신대가 학내소요사태로 인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험을 보지 않았다. 시험을 봤으면 떨어졌을지도 모르는데 시험 안 보고 붙여주신거다.

사실 장신대 시험 보러 갈 때 붙을 거라고 생각하고 간 게 아니었다. 그냥 한 번 응시해보자고 해서 간 거였다. 장신대 시험 과목이 뭔지도 몰라 단지 그냥 시험지 얻어다가 1년 동안 준비해서 들어가면 되지 하고 간 거였는데 덜컥 합격했으니 내가 놀랐다"

신대원 다닐 때 선교를 시작하다

"신대원 다니면서 내가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선교였다. 나는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 세계를 다녔기 때문이다. 내 나이에 그만큼 외국에서 일해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금도 외국에서 일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신대원 다닐 때부터 뭘 했느냐면 선교를 다녔다. 외국을 다니는 게 재밌어서였다.

전임 전도사를 하면서 신대원을 다녔다. 순복음교회 전임 전도사하면서 순복음신학교에서 영어 교수도 했다. 신대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를 가르쳤다. 힘은 엄청 들었지만 재밌게 다녔다.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사업하던 친구들 전부 예수 믿게 하고 싶어서였다.

일본을 다니며 사업할 때 만났던 비지니스 파트너들에게 복음을 전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서 방학하면 일본을 갔다. 예전엔 끌고 다니던 샘소나이트 가방에 비즈니스 서류만 넣어 돈 벌러 다녔는데 복음 전하러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비행기 타고 가는데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행복했다. 전에는 물건을 팔아야 했는데 이젠 복음을 팔면 되는 거였다.

내가 일본 가는 건 교회도 몰랐다. 방학하면 한 일주일 동안 일본을 다녀왔다. 나중엔 일본 선교팀을 이끌고 다녀오기도 했다.

교회를 개척하여 2000년 초까지 일본 선교하고, 그다음에 중국을 가게 됐다, 중국을 가니까 이건 완전히 선교의 황금어장이었다. 그런데 중국 동북삼성을 가서 보니까 돈 안 가지면 선교를 못하겠는거다. 한국 교회가 돈을 주고 선교를 해 가지고 교육원도 돈을 주고 뭐 가르치려고 배우러 오는 사람도 돈 주고 해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돈 없이도 선교할 수 있는 게 뭐냐. 학교세우는 거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시안을 갔다. 시안에 학교를 세웠다. 거기는 당시 한국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삼성도 나중에 진출하고 한국 사람이 없는 데가 참 좋았다. 내가 외국 생활을 많이 해봐서 아는데 한국 사람이 별로 도움이 안된다. 시안에 학교를 세워서 한족들 교육시켜 교회 개척하여 내보냈다.

네팔 신학교처럼 신학 교수가 강의하는 건 아니고 방을 얻어서 목회자 친구들이 구약과 신약을 다 가르쳤다.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가르치고 왔다 갔다. 갈 사람들은 많았다. 그래서 졸업시켜가지고 내보내서 개척시켰다. 아주 재밌게 하다가 하나님이 선교지를 네팔로 바꾸셨다. 미국 신학교에 Ph.D(철학박사)를 하게 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하나님이 신학교 총장시키시려고 Ph.D까지 하게 하신 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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