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웠지만 행복한 목사
괴로웠지만 행복한 목사
  • 김민식 목사
  • 승인 2023.03.0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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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직가’를 경험해야 한다
진마루 마을에서 발견한 자족함의 은혜

글_김민식 목사(광주동광교회 원로목사)
진마루팜 앞에서.
진마루팜 앞에서.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고은 시인의 시다. 이 시를 이렇게 생각해 본다. ‘무대에 있을 땐 모르네. 무대를 내려와서 본 그 무대.’ 은퇴 후에 바라보니 강단과 목회, 교회와 교인들이 더 잘 보인다.

많은 후배 목사들이 목회 현장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교회에서 내어 쫒기는 경우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학력이 부족해서, 설교를 못해서도 아니다. 경험이 부족해서 성급하게 서두르다가 실수하여 큰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이다. 목회는 한번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가 없다. 목회 현장에서 쫒겨나면 어디에 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겠는가?

돌아보면 목회할 때는 견디기 힘들고 괴로웠지만 너무나 행복한 은퇴를 했다. 아마 한국교회에서 필자만큼 법적 송사에 시달린 사람도 드물 것이다. 경찰, 검찰, 법원, 노회, 총회, 그리고 구청 등 165번의 송사를 경험했다. 그 사건 이후 ‘괴로웠지만 행복한 목사란’라는 책을 펴내고 은퇴했다.

당회와 공동의회는 만장일치로 필자를 원로 목사 추대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에 감사하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매일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필자는 예수를 믿은 뒤 기도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기쁨으로 고백할 수 있다.

현역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님들이 목회를 아름답게 꽃 피우고, 아름답게 은퇴하시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40년 목회 이후

40년 동안 목회 사역을 마친 후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향을 떠나 경남 거창군 웅양면 진마루 마을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은퇴를 할 때 요한복음 3장 30절 말씀에 가슴 깊이 다가왔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후임 목사에게 맞춰져야한다. 은퇴 후에도 원로목사가 주목 받으면 교회가 묻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교회를 위해 광주를 떠나 거주할 곳을 찾기 위해 스물 다섯 지역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마침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신 거창 웅양면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머물 곳을 찾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진마루 팜’이라는 이름으로 밭을 일구고 꽃을 키우면서 남은 여생을 살고 있다.

올해 백일홍 꽃이 너무나 아름답게 피었는데 다 지고 씨를 받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 작은 씨 속에 지난여름에 아름답게 피었던 백일홍 꽃들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빨간 꽃, 파란 꽃, 노랑꽃, 분홍꽃,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그 꽃들.

우리 안에도 아름다운 꽃들이 숨어 아 있는데 그 꽃을 피워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고 만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믿음은 씨앗 속에 담긴 아름다운 것들을 피워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아름다운 꽃봉오리로 존재할 수 있다. 이제 피워내기만 하면 된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데 왜 우리는 꽃을 피워내지 못하고 있을까? 그것은 믿음이 작기 때문이다.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능력을 발휘할 때 그 믿음은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꽃으로 피워낸다.

또 한 가지 느끼는 것은 은퇴 후에 더 많은 깨달음과 행복이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만약 필자가 은퇴한 후에도 도시에 머물러 있었다면 무엇을 했을까? 아파트 안에서 외로움과 무료함을 견디며 죽음만 기다릴 것이다. 그런데 시골에서 ‘진마루 팜’이라는 조그만 밭을 일구며 사계절 꽃을 심고 살아가니 하루하루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진마루 팜 옆에는 제방이 있는데 그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볼 때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지 모른다. 마치 유년 시절의 행복을 되찾은 기분이다. 그리운 고향의 과수원, 꽃피는 산골, 뻐꾸기가 울 때 어머니와 손잡고 걷던 기억, 쟁기질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며 한가득 행복이 몰려온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이 말씀으로 얼마나 많이 설교를 했는가? 그러나 참으로 행복한 심령의 천국을 경험하고 설교했는지 돌아보면 부족했던 것 같다. 이제 자연으로 돌아오니 그 말씀이 진정으로 다가온다.

김민식 목사(광주동광교회 원로)
김민식 목사(광주동광교회 원로)

몸으로 전하는 설교

예배는 무엇인가? 예배는 ‘내가 죽는 자리’이다. 현장에서 그렇게 많은 설교를 했지만 왜 교인들의 삶은 변하지 않는가? 그것은 목사의 책임이다. 입으로만 설교를 했지 몸으로 설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예배 후 남자들도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나는 인사만 했지 설거지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설거지를 하겠다고 말했더니 담임목사님과 권사님들이 완강히 말리셨다. 그래도 한 달에 한번은 꼭 하겠다고 했더니 담임목사님이 본인도 설거지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왜 목회자에게 권위가 없고, 설교는 유창하지만 성도들에게 변하가 일어나지 않는가? 머리에서 나오는 설교, 가슴으로 전달되지 않는 설교, 몸으로 말하지 않는 설교는 변화를 주지 못하며 목회자의 권위도 세우지 못한다.

은퇴 후에 작은 사역을 한 가지 진행하고 있다. 마을 앞에 조그만 집을 마련하여 같은 마을에 사시는 목사님, 사모님, 서울에서 내려오신 장로님, 집사님 내외분들과 ‘봉우산 책 방’을 열었다. 그곳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책을 무료로 빌려드리거나 헌 옷을 진열하여 2-3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목회자의 직가

거창 읍내에서 웅양면으로 가다보면 도로가 쭉 뻗어 있는 일직선의 길이 나온다, 그곳을 운전 할 때면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 마을에 사시는 목사님과 함께 그 길을 지나갈 때 ‘직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동행하신 목사님은 터키 여행을 하시면서 본 ‘직가’의 모습을 설명해주셨다.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라.” (행 9:11)

직가는 곧을 ‘직’, 거리 ‘가’, 문자 그대로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을 의미한다. 다메섹 성의 동문에서 서쪽으로 1.6km 직선으로 뻗어 있는 큰 도로다. 누구보다 행동력이 뛰어나고 실천력이 충만했던 청년 사울.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시력을 상실 했다. 젊은 나이에 시력을 상실 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 왔겠는가? 성질을 이기지 못해 난폭해지거나 정신 이상자가 되거나 자살을 했을 수도 있다.

그곳은 절망의 자리, 실패의 자리였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 주님을 만나고 회심했다. 절망 가운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를 버림과 동시에 철저하게 주님을 선택하는 시간과 장소가 바로 직가였다. 지금까지 욕망을 좇아 살아가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듭 태어난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은혜의 거리, 철저하게 무너지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함 거리,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고 알지 못하는 은혜의 거리.

목회자에게는 ‘직가’가 필요하다.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내 능력으로 하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목회는 죄악 된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그러한 직가가 있었다. 처절하게 절망하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직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 구역 사거리에 자동차 터미널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1972년, 병이 들어서 서울에서 내려와 고향 장성에서 광주 직행버스를 타고 국도를 달리는데 얼마나 차가 뛰는지 터미널에 도착 하자마자 피를 얼마나 쏟았는지 모른다. 죽음이 바로 코앞에 있었고 절망과 허무의 자리가 바로 구역 사거리였다. 그 절망의 긴 터널을 헤쳐 나온 이야기는 짧은 지면에 다 쓸 수가 없다.

바울 사도가 눈이 먼 곳이 직가였던 것처럼 구역 사거리는 내 절망의 자리, 죽음의 자리, 허무의 자리였다. 거대하게 다가오는 근심과 염려, 절망, 불행을 처리하는 법을 몰랐다. 외로움과의 싸움, 허무와의 싸움, 고독과 싸우며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싸움이 얼마나 처절했던지 더 이상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생각했다.

그때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셔서 내 운명을 설득하셨다. 사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직가, 기적의 직가, 영원한 생명의 직가였던 것처럼 구역 사거리라는 직가에서 하나님은 내 삶에 간섭하셨다. 그 이전의 사람과 이후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외로움과 고독,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길

은퇴 이전에도 외로움과 고독감이 있었다. 은퇴 이후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과 친구들이 광주를 떠나지 말고 함께 지내자고 말했다. 많은 교우들도 가까운 곳에서 같이 살자고 권했다. 그러나 교회를 멀리 떠나왔더니 너무나 유익이 많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고전 9:27)

주님을 만나기 전, 병든 몸으로 인해 고통 받을 때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는지 모른다. 그때 권해경의 ‘산장의 여인’을 참 많이도 불렀다. 밤이 두려웠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고독이었다. 권태스럽고 외로워서, 고독해서 사람을 만나지만 더 외롭고 더 고독하고 더 허무해진다.

누구나 무대에서 내려 올 때를 맞이한다. 친구도 언젠가는 떠나가게 되고 교우들과도 헤어져야 한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서 살아온 지금, 때로는 외로움과 고독이 밀려오지만 외로움과 고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이끌고, 고독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한다. 나는 더 새로워지며 사랑 또한 더 깊어진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봄이 기다려지고 여름이 기다려지고 가을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은퇴 후에 배우게 되는 것들

은퇴 후에 가장 목사를 힘들게 하는 것이 경제적인 문제다. 누가 연금 재단에서 농단을 부리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연금에 손을 대는 목사들을 향한 분노가 작지 않다.

은퇴를 앞둔 목회자들은 미리 설계를 잘해야 한다. 어떤 목사님은 은퇴하실 때 교회 재정잔고가 75억 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해당 교회는 목사님에 대한 예우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으나 목사님은 일절 거절하시고 이곳 진마루 마을에서 남은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그분을 보며 참 많은 것을 배운다.

필자는 지난 날 가난과 염려, 근심과 불안을 해결하는 법을 모르고 살았다. 인생이 무너지고 삶이 무너져 자살을 생각할 때, 죽음이 코끝에 와 있었을 때 하나님을 만나 지금까지 살아있다. 그러면 목사로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족하는 비결이다. 자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거나, 초라하게 은퇴를 하지 않는가? 얼마나 많은 목사님들이 훌륭하게 목회를 하시고 큰 교회를 이루었지만 초라하게 은퇴를 하는가? 자족하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1-12)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남은여생이 불행의 연속이다. 자족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자족하기를 배운 사람이다. 억만금이 있어도 자족하기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이곳 진마루 마을에서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더욱더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말씀을 의지하게 된다.

베토벤의 아다지오가 흘러나온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환희의 송가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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