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일 총장, "네팔신학대학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셨다”
권승일 총장, "네팔신학대학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셨다”
  • 엄무환 국장
  • 승인 2023.02.20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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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하나님이 디자인하셨다 네팔신학교도 마찬가지다 수도인 카투만두에서 동남쪽으로 540키로 떨어진, 산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로 14시간 걸리는 ‘이타하리’라는 시골 마을에 신학교를 세웠다"

네팔신학대학 총장인 권승일 목사를 서울 종로 5가에 위치한 연동교회 1층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 학교가 지금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말문을 연 권 목사는 “그래서 정신이 없다. 이 일을 하나님이 시키시는데 몇 년을 더 시키실 것 같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올해 75세인 그는 목회에선 은퇴했지만 그러나 네팔선교에 올인해선지 은퇴라는 단어와 전혀 무관하게 보였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지금이 가장 황금기가 아닌가 싶다.

네팔선교가 너무 은혜스럽다며 활짝웃는 네팔신학대학교 총장 권승일 목사
네팔선교가 너무 은혜스럽다며 활짝웃는 네팔신학대학교 총장 권승일 목사

어떻게 네팔선교에 관여하시게 되었습니까.

- 2002년도에 목회하던 생명나무교회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에 다니던 네팔인 학생이 영어사역 담당자로 왔다. 생명나무교회는 제가 개척하여 시무한 교회다. 당시 저희 교회가 외국인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선교와 해외선교에 열심이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우리 아이들 영어교육을 시켜야겠다 해서 영어사역자를 모셨다. 그때 네팔인 전도사님이 왔다. 그 학생을 잘 교육시키면 본국에 돌아가서 귀한 일을 하겠다 생각들어 공부하도록 도왔다. 2012년 말 그 학생이 돌아갈 때쯤 다른 네팔인 두 신학생이 왔다. 세 명이 제게 ‘목사님, 네팔에 가면 신학대학교 설립하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거다. 처음엔 예스(yes) 안했다. 우리 형편 알지 않으냐. 거절하면서 기도는 하겠다고 약속했다. 기도하겠다는 말은 목회자가 늘 하는 말이니까. 그런데 실제로 기도했다. 며칠 기도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사도바울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건너간 것처럼 네팔인이 계속 건너와서 우릴 도우라는 거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나님의 부르심이구나’ 생각되어 예스(yes) 했다. 그리고 그들은 네팔로 돌아갔다.”

당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 사람들이 생각하면 조금 무모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을 시키실 때는 사람의 이성을 거의 마비시키시고 바보처럼 만드신 후 보내신다. 신학교를 설립하는 일은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지 생각도 못하게 하시고 그냥 순수하게 신학교를 세워서 목회자를 양성하여 교육시켜 교회를 개척하여 네팔 복음화를 이뤄야겠다. 이런 생각만 갖게 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사업도 해봤다. 그런데 신학교 세우는 일에 있어서 재정계획을 한 번도 세워본 적 없다. 그런 마음으로 네팔에서 신학교를 세우기 전에 한국에서 먼저 신학교 창립감사예배를 드렸다. 그때 네팔 출신 교수 세 분이 부인들과 함께 한국에 와 있었다. 2013년 3월 28일 장신대에서 네팔신학교 창립 감사예배를 드렸다. 당시 총장이신 김명용 총장님에게 설교를 부탁드렸다. 김 총장님이 ‘목사님 신학교 언제 세우십니까.’, ‘하나님 때에 세우지요.’. ‘학교 어디에 세우십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세우지요.’. ‘재정은 얼마나 준비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준비하시지요.’ 김 총장님이 총장 임기 마치시고 우리 학교 컨퍼런스 주강사로 오셨다. 그때 ‘제가 권 목사님을 몰랐다면 설교 노우 했을 겁니다.’라고 하셨다. 그 정도로 준비가 안됐다. 그런데 김 총장님이 네팔에 오셔서 학교가 이렇게 잘 될 수 있느냐고 놀라워하셨다.

네팔신학대학교 전경
네팔신학대학교 전경

네팔신학대학교 설립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지요.

- 네팔 사역자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한국에 있었다. 저희 교회 뿐 아니라 주안장로교회, 온누리교회에도 있었다. 네팔신학교를 세워달라고 저에게만 말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을 인정해주고 자신들이 하는 것에 대해 그래도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저였다는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0여 년간 관계맺기를 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얼마씩 후원도 하고 식사도 같이했다. 저희 교회에 오게 된 것은 우리 교회 여전도사가 햇불트리니티 선배였기 때문이다. 참 괜찮은 학생이었다. 당시 결혼한 상태였다. 한국어 통역 정도는 했다. 지금은 우리 학교 학장이다. 제자를 키운 거다. 77년생, 마흔여섯이다. 참 열심이다. 한국에 와서 공부했던 학생들이 현재 네팔신학교에 다 있다.

신학대학을 어디에 세웠습니까.

네팔의 수도가 카투만두다. 카투만두에서 540km, 자동차로 14시간 걸리는 시골에 세웠다.

네팔신학대학교가 세워진 이타하리
네팔신학대학교가 세워진 이타하리

그곳에 세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선교는 하나님이 디자인하셨다. 네팔신학교도 마찬가지다. 수도인 카투만두에서 동남쪽으로 540키로 떨어진, 산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로 14시간 걸리는 아주 시골 마을인 ‘이타하리’라는 지역에 신학교를 세웠다. 거기에 학교를 세우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셨다. 제가 주도해서 세운 학교도 아니고 네팔인 학생들이 주도해서 세운 학교도 아니다. 학교 이름은 NNCC(Nepal New Covenant College 새언약신학대학교)다. 아주 시골에 학교를 세우게 하셨는데 왜 시골에 세우게 하셨는지 나중에 가서 보니까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요.

- 카투만두에는 신학교가 30여 개 된다. 한국의 모든 교단들이 다 세웠다. 영국과 인도 캐나다 미국 선교사들과 네팔인도 세웠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에 세우게 하지 않으시고 시골에 세우게 하셨다. 그곳엔 신학교가 없어서다. 참고로 네팔 동쪽이 인도, 북쪽이 히말라야, 티벳, 차이나다. 네팔이 1951년도에 나라가 개방된다. 그 이전엔 어느 나라 국가와 관계가 없었다.

51년도에 복음화가 되는데 51년 전에 네팔 복음화를 위해 세계선교회들이 눈독을 들였다. 미국 선교단체, 영국 선교단체들이 네팔 동쪽인 인도에 있다가 인도에 갔던 네팔인들이 자기네 나라 복음 전하겠다고 준비하다가 51년도에 개방되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동쪽 지역에 복음화가 가장 많이 이뤄졌다. 카투만두에는 한국인 선교사만 현재 6백명이다. 그런데 대부분 수도에만 있다. 이타하리엔 한국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이 동쪽 복음화에 관심을 갖고 계셨다. 그래서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이 디자인 하셨고, 하나님이 현지인들에게 그곳에 신학교가 필요하니까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다. 그리고 학생들을 한국에 보냈다. 2008년도에 한국에 오기 전 네팔에서 ‘목사님, 제가 공부를 더 해야겠는데 도와주세요’ 하기에 오라고 하여 장신대에서 공부하게 했다. 그리고 횃불트리니티에서 철학박사(Ph.D)를 했다. 두 번째 왔을 때 네팔 동부지역 크리스천 소사이티(society)에서 ‘우리가 신학교를 세우자’, ‘한국에 유학을 보내자’ 하여 한국에 보내서 공부하게 한 후 이 사람들을 통해서 신학교를 세우자고 한 거였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 다시 온 사람이 세 명이었다. 그들이 때가 되어 나에게 ‘도와달라’고 한 거다. 내가 차출된 거다. 하나님이 보실 때 ‘권 목사를 통해서 하면 잘될 거다.’ 하신 것 같다. 그때 저희교회 교인이 60명 정도 되었다. 크지 않은 교회였지만 그러나 엄청나게 선교했다.

목사님에 대한 소개를 좀 해주시지요.

-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못 들어갔다. 그래서 독학하여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사업을 했다.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게 뭘까를 찾다가 택한 것이고, 40세까지 돈을 벌자는 생각에서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곧바로 사업을 할 순 없어서 서울대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에 들어갔다. 그 회사가 대우 김우중 회장을 모델로 삼았기에 많이 배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2년 있다가 무역회사를 세웠다. 때마침 중동 붐이 일어나 오일달러를 엄청 벌었다. 대한민국에서 목회자 가운데 나만큼 돈을 벌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주로 시멘트를 팔았다. 한일 시멘트, 쌍용시멘트를 팔았다. 그때 선교 훈련을 거기서 받았다. 아무도 모르는 사우디에 가서 맨발로 다니면서 일일이 바이어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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