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영화 〈헤어질 결심〉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3.01.20 0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년 11월 25일, 2022년 청룡영화제의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가운데 하나는 2부 시상식에서 가수 정훈희와 라포엠이 협연한 공연이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O.S.T.이기도 한 ‘안개’가 구슬프면서도 아련하게, 크로스오버로 결합한 장르로 재해석되어 무대와 객석에 울려 퍼졌다. 탕웨이는 자신이 연기한 영화 속 주인공 서래가 오버랩했는지 눈물을 흘렸고, 사회자 김혜수와 공연을 관람한 관객도 감동의 도가니에 젖어 들었다.

‘안개’는 모호하다. 사물과 상황을 분명치 않게 만든다.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 없게 한다. 영화 속 주인공 서래의 삶이 그렇다. 한국에 밀입국한 중국인이었지만, 함께 왔던 동료들이 강제 출국당한 것과 대조적으로 독립운동가 할아버지를 둔 덕에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도움을 준 효녀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의 고향인 호미산을 찾아 그분들의 유해를 뿌리는 장면은 그가 단순 패륜아가 아님을 증명한다. 보이는 현상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순 없다.

서래는 죽은 남편의 유력한 용의자이다.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해준(박해일)은 서래를 의심하지만, 왠지 모를 분위기에 피의자에게 감정이 이입된다. 유력한 정황증거가 나왔음에도 무죄 추정으로 기울고, 결국 사건은 남편의 자살로 종결된다. 하지만, 서래가 돌보던 치매 노인의 집을 우연히 방문한 해준은 거기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발견한다. 사건을 재구성하고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그러나 때는 늦었고, 해준의 마음은 이미 서래에게 기울어진 상태다. 심적으로 붕괴된 해준은 서래에게 증거물을 바다 깊은 곳에 던지라고 말한다.

13개월 후, 이포에서 그들은 다시 만난다. 우연찮게 발생한 살인사건, 이번에도 서래는 재혼한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용의선상에 오른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다르게, 진짜 범인의 자백이 나온다. 그럼에도 해준은 서래를 의심한다.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다. 형사로서의 냉정을 잃지 않으려는 해준의 태도와 그를 사랑하는 서래의 마음이 대조를 이룬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서래의 독백이 흐른다. 그리고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이 남자와 결혼했습니다.”라는 서래의 고백에 해준의 마음도 흔들린다.

유사한 두 번의 살인사건에 해준은 서래에게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라고 묻는다. 서래가 답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서래가 윤리·도덕적으로 옳은 건 아니다. 하지만, 누가 서래를 욕할 수 있고 비난할 수 있을까? 정죄는 쉽지만, 이해와 용서는 어렵다. 그 누구도 직접 당사자가 아닌 이상 함부로 비난할 순 없다.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아 해준의 기억에 각인된 서래는 이제 그 누구의 정죄로부터도 자유롭다. 그러고 보면, 안개와 바닷속은 공통점이 있다. 헤아릴 수 없고 다다랄 수 없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누군가에 대한 비난과 정죄에 혈안이 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비난당하는 사람 역시 희생양일 수 있다. 진짜 나쁜 놈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경우도 많다. 안개는 모든 걸 모호하게 한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과 그녀를 정죄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돌이켜본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죄는 나쁘지만, 사람은 소중하다.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본보 편집위원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