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와 이정표
묵시와 이정표
  • 가스펠투데이
  • 승인 2018.01.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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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박국 2:2)

우리는 침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침대로 돌아오기까지 디자인된 제품과 환경을 하루종일 접하며 살고 있다. 디자인된 제품을 성경으로 읽으면 하루내내 하나님의 음성을 의식하고 힘을 얻으며 살 수 있다. 디자인을 인문학으로 읽으면 우리의 주변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역사적이고 철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매사에 중용을 지킬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안에만 가두어 놓지말고, 삶의 전 영역에서 찾으면 온전하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기에 디자인을 성서와 인문학으로 읽는 여정을 시작한다.

모로코 페스
모로코 페스

모로코의 페스는 미로의 도시로 유명하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난 도시의 골목길에는 이정표가 없어서 초행이면 길을 잃기십상이다. 출구를 찾기 위해 열심히 걸어도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왔던 길을 맴돌뿐이다. 미로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시에 프랑스군이 페스를 공격해서 점령하지 못하고 도시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건축가인 승효상은 이러한 구조를 민주적으로 발전한 도시 구조라고 말하며 서울시 달동네의 구조와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달동네도 미로의 도시이다. 미로에서 길을 찾으려면 이정표가 꼭 필요하다.

스페인의 서부 도시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의 이정표는 눈여겨 볼만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정표
산티아고 순례길 이정표
산티아고 순례길 이정표
산티아고 순례길 이정표

‘별이 빛나는 시골마을의 성야고보’란 뜻을 가진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3)란 말씀이 생각나는 도시이다. 야고보 시절에 산티아고는 땅끝 중에서도 끝이었다.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열망은 열두 제자들과 사도 바울의 열망이기도 했다.(로마서 15:23) 야고보는 산티아고까지 예수님의 증인으로 이 길을 걸어갔다. 그의 걸음이 길이 되었고 목적지는 그의 이름이 되었다. 중세에 성지 여행의 열풍이 일었을 때 이 길은 조가비 이정표로 표시되기 시작했다. 이 길의 지도는 가리비 조개 무늬처럼 스페인 전역과 프랑스나 포르투갈에서 산티아고로 수렴되는 모양이다. 이런 역사가 있는 길에서 순례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발견하고 상처가 치유되며 기독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기독교 성지 순례길이 있다. 이 길의 이정표는 물고기 모양이다.

제주 올레 순례길 이정표
제주 올레 순례길 이정표
제주 올레 순례길 이정표
제주 올레 순례길 이정표

바다를 연하여 있는 순례길의 이정표를 물고기로 디자인한 이유는 물고기가 성경 이야기를 담은 상징이기도 하고 제주 바다에서 나는 고기를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고기 상징을 통해 자생적으로 형성된 제주 기독교 공동체의 특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교통 표지판은 달려가면서 읽을 수 있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 글자의 크기가 충분히 커야하고, 색 대비가 좋아서 시인성이 높아야 한다. 노랑 바탕에 검정 글씨가 시인성이 제일 높고, 파랑색 바탕에 흰색 글씨도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시야는 달리는 속도와 관계가 깊다. 시속 100km이상이면 시야각이 40도이어야 하고 교통표지판은 시야각 안에 들어오게 디자인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고려해서 디자인해야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다. 요즘 KTX를 타면 어안이 벙벙하다. 시속 300km로 달리면 이정표는커녕 마음 놓고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할 여유조차 없다.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무궁화호가 그립다.

KTX 속도로 달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고 보아야할 이정표가 있다. 아니 어느 시대나 이 이정표는 놓치지 않고 보아야 길을 잃지않고 제대로 인생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이정표는 하나님의 존재이다. 구스타프 칼 융은 무의식을 영이라고 했고 영인 무의식 속에 담겨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존재라고 마르틴 하이데크는 그의 저서 ‘이정표’에서 말하였다. 인류역사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모양은 여러가지로 발전해 왔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 중세의 신, 르네상기의 이성, 헤겔의 절대이성, 현대의 하나님의 실존 인식 등이다. 이러한 발전은 하나님에게로 가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이데크는 “존재의 공간은 시간이다.” 라고 했고 존재의 다가옴과 존재로부터 이탈을 이야기했다. 최초의 인류가 에덴 동산을 떠난 것은 하나님 존재로 부터의 이탈이다. 성자 하나님이 아기 예수로 태어남은 하나님 존재의 다가옴이다. 룻기의 엘리멜렉과 나오미 일가의 이야기는 빵집인 베들레헴에서 이탈과 그곳으로 귀환을 이야기한다.

하박국의 시대는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한 세상이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했기에 불의를 정의로 인식하는 시대가 되었다. 겁탈과 강포를 장려하기도 했고 거짓말을 삶의 지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득세한 세상이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싼 사회였고 기도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는 시대였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질문한다. “악인이 의인을 삼키고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 2:2)였다.

판은 돌판, 나무판, 금속판, 마음판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판은 마음판이다. 개인과 사회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는 판에 명백히 새길 묵시는 하나님이 없는 사회의 종말은 속히 온다는 것과 의인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모시면 산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갈대아 사람의 잔혹성을 사용하셔서 징벌하신다. 그리고 난 후에 갈대아 사람의 잔혹성을 벌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사회는 망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의인은 산다’는 이정표를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기록하여 만인이 보게 하라는 말씀이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으면 이것을 읽은 사람이 묵시에 힘을 입어서 달려가고 이 묵시를 전하기 위해 달려갈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무서운 속도를 내며 바뀌는 세상에서 우리가 보고 달려야 할 이정표는 하나님의 존재이다. 이 이정표가 우리를 가야할 목적지로 인도한다.

 

 

김한윤박사 프로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이콘으로 초대교회사를 연구하여 신학박사(Th.D)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랜드에서 디스플레이디자이너로 일했고 성서와 디자인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사)예술과문화선교회 지도목사, 미호교회 목사로 섬기고 있고,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디자인된 제품을 성경과 인문학으로 읽으며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는 성도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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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영 2018-01-31 11:26:15
성서와 인문학. 산티아고 이정표와 제주의 올레 순례길 이정표. 하이데거의 철학적 안목과 하박국 선지자의 메시지를 담아낸 수준있는 글 앞으로도 필독하며 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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