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바울의 해체, 우리의 해체
[전문가 칼럼] 바울의 해체, 우리의 해체
  • 장준식 목사
  • 승인 2022.12.05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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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해체(deconstruction)한다. 그에게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해체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넘나드는 보편적인 구원을 이루는 것이었다. 바울의 신학이 담고 있는 정치신학은 인간(유대인)과 인간(이방인) 사이에 놓인 막힌 담을 허무는 것이었다.

바울 신학의 정신을 이어받은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생태 위기를 맞아 더 진행시켜야 할 해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해체시키는 일이다.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정치신학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막힌 담을 허무는 것을 넘어서(이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작업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놓인 막힌 담을 허무는 정치신학이다.

바울의 정치신학이 유대인 중심의 세계관을 이방인도 포함시킨 보편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이었듯이,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정치신학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비인간도 포함시킨 보편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이다.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하여 자신들과 동일한 가치를 인정할 때 그것이 곧 구원이었듯이, 인간이 비인간에 대하여 자신들과 동일한 가치를 인정할 때, 구원이 임할 것이다.

비구원은 가치의 불균형에서 온다. 구원은 가치의 균형이다. 마르틴 부버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비구원은 '나와 그것'의 가치이다. 나 중심에서 사로잡혀 상대방의 가치를 '그것(it)'으로 상대화시키면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악들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행위로 둔갑한다. 구원은 상대화된 '그것'의 가치는 '너(당신)'의 가치로 대등화되는 것이다. 구원은 '나와 너(당신)'의 가치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상대방의 가치를 '그것'으로 전락시키는가. 자신이 무슨 성취를 이룬 것처럼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에게 특히 이러한 가치 전락이 발생한다. 동양철학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이(理)'가 상대방의 '이(理)'보다 높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그것'으로 취급하며 하대하게 된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에게 이를 높이는 수단으로 전통적으로 나이, 성별, 가문, 학식 등이 쓰였고, 요즘에는 재산, 학벌, 외모가 자신의 ‘이(理)’를 높이는 수단으로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바울이 하려했던 유대인과 이방인의 해체도 그 완성이 묘연할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절실하게 요청되는 인간과 비인간의 해체는 이제 걸음마 단계인 듯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수도 없이 존재를 '나와 그것'으로 설정지어 차별하고 혐오하고 폭력을 저지르며 산다. 우리는 언제쯤 ‘나와 너(당신)’의 관계 속에서 평화를 이루고, 서로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아주 묘연할 뿐이다. 이렇게 구원이 묘연한데,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자기의 구원을 자랑하는 자들이 말하는 구원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삶 속에서 성취하려는 구원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상대방(당신)을 ‘그것’으로 상대화시키지 않고 ‘너(당신)’로 대등화시키는 것이다. 나보다 ‘이(理)’가 낮다고 생각되는 존재도, 나보다 ‘이(理)’가 높다고 생각되는 존재도, 그저 나에게는 ‘너(당신)’일 뿐이다. 나는 누군가를 하대하거나 누군가에게 굽실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굽실대는 존재를 거부한다. 나는 나를 하대하는 존재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와 너(당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구원받은 존재이지, 상대방은 ‘그것’의 가치로 상대화시키는 비구원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되기를! 비구원의 존재가 아니라 구원의 존재가 되기를! 무엇보다, 요즘 더 긴급하게 요청되고 있듯이, 비인간을 ‘너’로 받아들이기를!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여 생명이 지속적으로 번성하기를!

장준식 목사<br>세화교회 담임<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br>
장준식 목사
세화교회 담임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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