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타락했을지라도, 교회는 내 어머니"
"비록 타락했을지라도, 교회는 내 어머니"
  • 가스펠투데이 보도팀
  • 승인 2022.12.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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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urch is a whore, but she is my mother"
성 어거스틴 인용한 송재식 목사
"예배당 건물이 교회로 둔갑할 때 타락"
텐트처치, 서림교회 수완예배당 전경. 보도팀.
텐트처치, 서림교회 수완예배당 전경. 보도팀.

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 교회는 다음세대와 미래교회의 향방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전통적 교회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새 물결, ‘지키기와 변하기’라는 간극 속에서 피눈물 나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본보는 2023년 신년 목회 특별기획 시리즈로 전통 교회와 미래 교회 사이에서 모범적인 목회를 이어가고 있는 현장을 탐방하고 있다. 지난 155호에서는 전주 동신교회(신정호 목사 시무, 예장통합 105회기 총회장)를 소개했고, 이번 호에서는 광주 서림교회(송재식 목사 시무)를 소개한다.

11월 11일, 취재팀은 서림교회 수완 예배당에서 송 목사를 만났다. 76년의 역사를 가진 서림교회는 광주 북구에 임동 예배당과 광산구에 수완 예배당을 세운 멀티처치다. 임동 예배당은 전통적 교회로서 옛 정취가 느낄 수 있으며 수완 예배당은 일명 텐트처치로, 개방적이고 신선하다.

28년간 서림교회를 섬긴 송 목사는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참된 교회란 무엇인가?’ 고민했다.

“하나님의 통치(헬-바씰레이아 뚜 데오’)가 우리 교회를 통해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통제하고, 교회를 가르치려 한다. 통탄스러운 일이다.”

송 목사는 “이 세상에서 뽑아낸 사람들이 모인 에클레시아,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교회다.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곳은 채플, 예배당이다. 우리가 진짜 교회”라며 “역사적으로 예배당이 교회로 둔갑할 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타락할 때다. 개신교회가 출발할 때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하고 항거, 프로테스트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의 권위는 회칠한 웅장한 건물에 있지 않다는 것, 교회의 권위는 오직 성경, 말씀에 있다는 것을 송 목사는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종교개혁 당시 성직자들과 성도들은 뜻을 합하여 민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했다. 하지만 종종 ‘민주적’인 조치가 말씀보다 앞서버리며 생기는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중요한 고민거리가 됐다.

송 목사는 “민주적인 것, 민주적 절차는 좋으나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깊이 성찰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들의 뒷면에는 이러한 문제가 자리잡고 있는데, 영적인 공동체는 민주적인 것을 품을 뿐만 아니라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성 어거스틴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교회는 창녀다. 하지만 그 여인이 내 어머니다(The church is a whore, but she is my mother). 요즘, 우리는 교회를 사정없이 비난하곤 하는데 자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어머니의 품에서 자랐어요. 우리 신앙생활의 잔뼈가 만들어지고 성장하도록 ‘어머니’인 교회가 그 역할을 했지 않습니까? 교회를 비난 하는 것은 곧 어머니를 비난하는 것과 같아요. 문제가 있어도 교회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아프고 문제가 있어도, 교회는 변함없는 우리의 어머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교회일지라도 떠날 수 없는 이유. 여전히 사랑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함께 눈물 흘려야 하는 이유. 그것이 아무리 더럽혀지고 끝없는 수렁으로 추락했어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이유. 나를 존재하게 한 어머니이기 때문이라는 송 목사의 절규는 교회 앞 정문에 위치한 푯말 앞에 멈춰 서게 한다.

“근원으로 돌아가라.”


<특별 대담> 

다음 세대, 미래교회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날마다 죽는 삶, 날마다 죽는 목회

“우리는 매일 공사 중이다”

대담: 송재식 목사(서림교회)

진행 : 박진석 목사

송재식 날마다 죽는 삶, 날마다 죽는 목회를 강조했다.
송재식 날마다 죽는 삶, 날마다 죽는 목회를 강조했다.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두고 대안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미래교회는 어떤 교회이며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지, 이에 대한 방향성이나 구체성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내용들 또한 학문적이며 신학적이다. 가장 시급하게 답을 찾아야 하는 곳은 단연코 목회 현장인 상황 속에서, 본보는 “다음 세대, 미래교회는 어떻게 준비되는가?”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_편집자 주

Q. 다음 세대의 미래교회는 목회 철학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목회 철학은 목회자와 하나님과 만남에서 나오는데요, 목사님은 삶과 죽음의 고비를 세 번이나 경험하면서 어떤 하나님을 만나셨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사람의 신앙 고백이자 간증, 철학이 되지요. 저는 세 번의 죽음을 경험하며 만난 하나님, 그 체험적 신앙으로 목회를 했고 제 설교 또한 이론적인 강의가 아닌 체험 그 자체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제가 좋아하는 고린도전서 15장 31절 말씀입니다. 저희 교회 교인들은 압니다. 저는 이 말씀으로 설교를 참 많이 한다는 것을요. “죽자, 날마다 죽자, 한 번만 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자!” 바울 사도는 날마다 죽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다고 기록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부활신앙으로 살아야 한다고 외쳤으며 이것이 저의 목회철학입니다.

‘날마다 나는 죽는다’는 목회관을 가지고 지난 28년간 목회하면서 내가 살기 위한 어떤 주장을 펼치거나 강조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피택 장로님을 포함한 64명의 장로님들이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단 한 분도 불평이 없으십니다.

Q.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목회관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프랑스 유학 중에 마피아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가 일주일 만에 살아났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그때 저의 신학적 입장은 상당히 앞서가는, 소위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19살부터 38살까지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일반 대학을 포함하면 다섯 개 대학을 통해 많은 지식을 축적했고, 신학 또한 이론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관계는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제 몸에 열다섯 발의 탄환이 날아들었고, 배를 관통한 탄환의 파편들은 지금도 심장 옆과 간 옆에 박혀 있습니다. 당시 담당 의사가 가톨릭 신자였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이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는데 죽지 않은 것은 파편들이 치명상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찢어진 창자를 다시 잇지 못할 정도였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셋째 하늘까지 올라갔다고 했지만 저는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 사이를 경험한 것 같습니다. 그때 저는 마치 필름이 지나가듯이 어린 시절부터 그때까지의 모든 삶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프랑스의 도시 엑상프로방스에 개혁신학대학이 있는데 그곳에서 제 별명이 ‘배꼽 없는 목사’였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곳에 다녀왔는데 그 고을의 전설이 되었다고 합니다. ‘배꼽 없는 목사가 15발의 실탄의 맞고도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저는 이후에 또 한 번의 죽음을 만납니다. 간이 망가져버린 것이죠. 간수치가 3,200까지 올라가 도저히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사형 선고를 받았어요. 삼성의료원에서도 이것은 약이 없다며, 못 고친다는 통고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암 말기 환자였던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님과 제주도 펜션을 빌려 함께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고훈 목사님과는 호남신학대학교에 다닐 때 3년 간 기숙사 생활을 함께 한 사이였습니다. 식사 후 갯바위에 앉아 함께 기도하던 그 시절이 생생합니다.

우리는 울부짖으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한 번만 살려주세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우리가 둘 다 회복되면 돌아가서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간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도하며 드린 서원을 지키기 위해 임동 예배당을 짓기로 결심했어요. 당시 청년들이 500명에서 800명 정도 모였는데 이들이 활동할 공간도 없었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교회를 지으려니 학자 출신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자금을 구하는 법, 리모델링 또는 증축하는 법 등 복잡하기만 했죠.

고훈 목사님은 회복 되어 지금의 본당을 지으셨고, 저는 현재 광산구의 부지를 매입하려고 하다가 여러 문제로 예배당을 지을 수 없다고 판단한 이후 다시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시면 교회 건축하겠다고 기도해놓고, 막힌다는 이유로 포기하자 또 쓰러진 것입니다.

뇌출혈 수술을 받고 깨어났는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좌뇌가 파괴되어 중풍이 온 것이죠.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저는 눈만 뜨면 울었습니다. 팔이 마비되어 감각이 없으니 내 팔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저를 간호하던 아내는 제게 시편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여보, 억지로라도 감사해.” 아내는 노트를 건네며 “왼손으로 감사의 이유를 백 가지만 써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할 것이 없었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죠.

“여보, 내가 옆에 있는데 감사 안 해?”

지금도 그 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왼손으로 천천히 써내려간 첫 문장,

‘아내가 있어 감사합니다.’

‘두 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감사할 것이 참 많았습니다. 교인들은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청년들은 200명씩 모여서 저를 위해 기도했어요. 그들은 “목사님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확신 속에 살아갈 수 있다”며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저는 100가지 감사를 쓰고 화장실에 앉아있다가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중에 축도할 때 어떻게 왼손으로 하겠습니까. 오른손도 같이 들고 축도하게 해주십시오!”

그때 갑자기 두 손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이 터져나왔어요. 저는 아내와 함께 ‘아에이오우’ 발음 연습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간 요양 생활을 하다가 다시 설교를 시작했어요.

제가 만난 하나님은 크고 광대하신 분이면서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년 간 뇌출혈로 요양 생활을 하면서 기적을 체험했고, 5천 평의 부지 또한 사게 되었습니다.

기존 예배당을 팔고 새 예배당 건축을 시도했다면 무난했겠지만 유지하면서 지으려니 재정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서 ‘텐트라도 치자’고 생각했는데 성서적 의미와 여러 배경도 딱 맞고, 이 시대와도 매칭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었죠.

새 예배당에 입당한고 얼마 후, 저희 교회 김록현 장로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장로님은 운명 직전에 저를 급히 부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목사님 미안합니다. 제가 목사님 목회에 힘을 보태야 하는데 먼저 떠나서 미안합니다.”

저는 그 순간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장로님은 교인들에게 “우리 교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먼저 가면서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 잡음이 하나도 없었듯이 앞으로도 잡음 없이 부흥만 시키면 됩니다”라고 부탁하신 후 운명하셨지요.

장로님 생전에 몇 번 와보셨던 텐트처치, 성도들은 100%가 아니라 200%만족한다고 말합니다. 지을 때만해도 “텐트 처치가 무슨 교회냐? 기성교회가 무슨 텐트를 치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지어놓고 보니 이렇게 좋지요.

이처럼 세 번의 죽음을 경험한 후, 늘 하나님 나라를 전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시며 늘 강조하셨지요. 초대교회에서 선포되었던 말씀 또한 하나님 나라, ‘바실레야 뚜 데오’ 즉 하나님의 통치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들이 전했던 그 메시지를 전하자 교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면서 말씀을 선포하면 치유의 은혜가 임하고, 교인들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교회는 코로나 이후에도 여전히 부흥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돌아보면 저는 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살리시는 하나님,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 찢으셨으나 꿰매어 주시는 하나님,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날마다 죽는 목회, 날마다 죽는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에 ‘날마다 죽노라’고 쓴 후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들 때는 ‘내가 오늘 죽었는가?’ 성찰하고, 하나님께서 죽은 나를 어떻게 살리셨는지 묵상합니다.

우리 육체가 물리적으로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영’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제게 이론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제 간증집 ‘걸어 다니는 진흙 덩어리’을 통해 고백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주님은 공사를 하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한, 공사가 덜 된 작품이지만 날마다 죽으면 주님이 나를 만지시고 공사를 진척시켜 나가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얼굴을 마주할 때 공사가 끝나지요. 그래서 우리는 늘 공사 중이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움직입니다. 개신교는 움직이는 역정을 갖고 있어요. 아마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개신교가 가장 타격을 받은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움직이는 것이 개신교인데, 움직일 수 없도록 묶여버리니 충격이 크지요.

이제 움직여야 합니다. 코로나가 막아서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나아가야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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