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정통교회를 흔드는 실체, 근본주의를 파헤친다 (7)
[특별기획] 정통교회를 흔드는 실체, 근본주의를 파헤친다 (7)
  • 박성철 목사
  • 승인 2022.11.18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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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근본주의, 근대성을 거부하는 종교 병리적 현상
근본주의는 남성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여성차별을 정당화한다.
근본주의는 남성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여성차별을 정당화한다.

I. 들어가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시민사회 영역으로부터의 신뢰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 위기의 주원인은 근본주의 대형교회들이 보이는 다양한 종교 병리학적 증상들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 내 근본주의자들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이를 외면하기에 바쁘다.

종교 사회학적 측면에서 한국교회 내 근본주의의 바로 ‘정통주의 신앙에 대한 집착’과 연관되어 있다. 교회사 속에서 소위 정통 교리를 적립하기 위한 노력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내 기독교 근본주의의 정통에 대한 집착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본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19세기 유럽 사회의 변화에 대한 거부감에서 시작되었기에 그들이 집착하는 소위 ‘정통’은 미국의 전근대적 세계관을 문자주의와 교조주의로 강화한 가치 체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신학적 담론이나 교리의 정립과는 아무런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신학적 토론이나 담론의 전개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감에서 형성된 것이기에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근대적인 미국 사회를 이상화하고 그 시대의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는 오류는 종교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극우 정치세력과 쉽게 결탁하는 현상은 미국 내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근본주의와 극우 정치세력의 결탁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미 개발 독재 시대에 군사독재 세력과 결탁하여 그 비호 아래서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교회는 극우 정치세력과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2020년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전광훈 현상과 한국교회 내 극우화 세력의 과잉 대표 현상은 근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한국교회의 몰락을 피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근본주의의 특징과 폐해를 정치신학적 측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가 가져올 파국을 피하기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II. 기독교 근본주의의 특징

개발 독재 시기에 한국교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앙 체계를 정통주의(orthodoxy)로 규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근본주의와 전통적인 정통주의(traditional orthodoxies)는 분명하게 다르다. 사전적 의미로 근본주의는 “과거의 사건들, 텍스트들, 권위 있는 인물들에게 호소하고 특정한 집단을 보호하는 다양한 교리, 이야기 또는 법률을 미래에 투영하는 현대 종교 운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근본주의는 단순한 종교적 현상이나 신학적 경향이 아니다. 오늘날 근본주의는 어떤 사상이나 원칙 혹은 이념에 대한 엄격한 복종과 신앙적 고수를 강조하며 “종교적 신앙, 도덕적 이념, 정치적 신념, 이데올로기적 강령의 뿌리를 수호하고 방어하려는 태도”를 포함한다. 근본주의 집단은 “그 운동에 헌신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돕지만 집단 외부 사람들에 대해 다소 공격적인 태도와 행동을 취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 내 기독교 근본주의의 기원은 19세기 천년 왕국설과 함께 부상하였던 보수적인 개신교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운동은 성서에 대한 문자적 이해, 임박한 예수의 재림, 동정녀 탄생, 부활, 속죄 등을 강조하며 노동 불안, 가톨릭 이민자의 증가, 성서 비평에 위협을 느낀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을 중심으로 1890년대까지 확대되었다. 새로운 세기의 도래와 함께 일시적으로 약화하였던 근본주의 운동은 1910년에서 1950년 사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발행된 「근본: 진리를 향한 증언」(The Fundamentals: A Testimony to the Truth)과 함께 신학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잡지에는 당시 과학적 발전, 근대주의와 다원적 문화를 반대하는 짧은 논문들과 평론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후 여기서 ‘다섯 가지의 기독교 교리들’(성서 무오영감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 부활, 기적적인 능력)과 문자주의(Literalism)가 결합하여 교조화하였고 이후 미국 내 기독교 근본주의의 중요한 이념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후반에 근본주의자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정치 영역에서 “기독교 우파”(Christian rights)를 지지하며 사회적 목소리를 내었다.

오늘날 기독교 근본주의의 일반적인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전근대적 종교 전통에 대한 집착하는 현상이다. 둘째, 권위에 대한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 셋째, 분리주의적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집착은 ‘선’(善)으로 규정된 특정한 이념체계를 공유하는 진영으로 도피하도록 이끈다. 넷째, 극단적인 배타성을 표출한다. 다섯째,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다. 여섯째, 번영신학과 같은 자본주의적 가치의 신성화를 부춘긴다.

1. 권위에 대한 왜곡된 인식

권위주의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주요한 특징이다. 권위주의는 권위에 대한 인식이 왜곡된 결과이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전근대적 권위주의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근본주의가 정치적 영역에서 극우 정치집단과 쉽게 결탁하는 이유는 양자가 극단적인 권위주의를 정당화함으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서가 말하는 권위는 단순히 “지배 서열”(pecking order)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조종하고 통제하기 위한 권위가 아니라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기능의 권위”(authority of function)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권위는 위계적 질서 속에서 강요되는 지도자에 대한 일방적 복종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부인을 기반으로 한 상호 섬김을 위해 필요하다(고전 16:16; 히 13:17). 성서는 교회 지도자가 “본”을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이를 위해 은사를 활용해야 하며 “주장하는 자세”로 조종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벧전 5:3).

하지만 근본주의는 권위주의로 인해 왜곡된 가치 체계의 영향으로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을 외면한다. 이를 바로 잡지 않고 권위주의가 종교적으로 지속적으로 정당화되면 결국 권력 중독의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의 근본주의 교회에서 권력 중독의 문제가 종종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전근대적 종교 전통에 대한 집착

일반적으로 세계 종교(Weltreligion)는 보편적 인류애에 대한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한 종교적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일정 부분 타종교에 대해 배타성을 가진다. 종교가 건강할 경우 보편적 인류애에 대한 가르침이 종교적 배타주의를 제어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종교적 배타주의는 공격성이나 폭력성을 표출하면 이는 문자주의(literalism)를 통해 정당화된다. 문자주의적 성서 이해에 집착하는 이들은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편협한 해석이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근본주의의 신학적 기반이 되는 문자주의는 계몽주의 이후의 근대화와 세속화를 거부하고 전근대적인 종교 전통에 집착함으로써 강화된다.

전통에 대한 집착은 결국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을 개인적이고 내세적인 구원으로 전환하려는 구원론적 환원주의로 나아간다. 1920년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자 존 그래샴 메이첸(John Gresham Machen, 1881-1937년)은 근대 이후의 신학적 발전을 “현대의 비구속적 종교”로의 전환이라고 비판한 후 이를 “현대주의”(modernism) 혹은 “자유주의”(liberalism)라고 규정하였다. 메이첸에 따르면, 기독교는 “위대한 구속의 종교”이다. 이러한 인식체계는 구원에 대한 담론만이 기독교적 가르침이며 기독교의 다른 가르침들에 대한 현대적 담론은 구속의 교리를 약화시키고 세속화를 촉진하는 반(反)기독교적 경향일 뿐이다.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 1894-1962년)는 미국 내 이러한 신학적 흐름을 “강경한 근본주의”(strength Fundamentalism)라고 표현하였다. 강경한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은 구원론에 대한 강조가 신학적 관심에서 나온 것이라 주장하지만 사실 강경한 근본주의는 미국 내 농촌문화와 도시문화 사이의 갈등이라는 문화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다. 세계대전 이후 농업적 가치가 침체하면서 농업에 의존하였던 그리스도인들이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미국 사회의 세속화를 비기독교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강경한 근본주의가 부상하였던 것이다. 강경한 근본주의는 미국의 도시 지역과 산업화 지역에서는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많은 농촌 지역의 주들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강경한 근본주의자들은 표면적으로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강조했지만,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들 자신의 특별한 형태의 경건성과 신앙이 지배적이었던 황금기”는 세속화 이전, 즉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던 근대 시민사회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강경한 근본주의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군사독재세력과 결탁하여 막대한 이익을 누렸음에도 외형적으로 엄격한 정교분리와 극단적인 성속이원론을 맹목적으로 주장한데에는 강경한 근본주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이후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러한 현상은 근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잘 드러낸다.

3. 분리주의적 강박관념과 진영논리

전근대적 종교 전통에 대한 집착은 세속화된 세상(혹은 문화)에 대한 분리주의적 강박관념을 자극한다. 미국의 강경한 근본주의는 근대사회의 등장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에 대한 충격으로부터 전근대적인 기독교 문화를 지키려 했던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저항으로 인해 발생했기에 계몽주의 이후의 근대화와 세속화를 거부한다. 이들은 세속화로 인해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보다는 “세상의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분리주의적 강박관념”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분리주의적 강박관념은 근본주의 운동의 ‘종교적 게토화’(religious ghettoization)를 촉진하였다. 이러한 퇴행적 의식은 결국 ‘세상의 소금과 빛’(마 5:13-16)으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게토화는 결국 문자주의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미국 내 문자주의의 문제는 이미 1925년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에서 잘 드러났다.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던 존 스코프스(John T. Scopes)는 비록 패소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창조론’(creationism)이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현대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분리주의적 강박관념을 더욱 강화하였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1930년대 이전에는 ‘비순응주의자’(Nonconformist)로, 1930년 이후에는 ‘분리주의자’라고 부르게 된 이유도 스코프스 재판 이후 분리주의적 강박관념이 근본주의 운동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4. 반대자 혹은 비판자에 대한 공격성

기독교 근본주의는 외적으로 비판자 혹은 반대자에 대한 공격성을 표출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전근대적 종교적 전통에 기반하여 교회나 종교적 영역뿐 아니라 현실사회 혹은 현실정치를 평가하려는 ‘종교적 도덕주의’(religious moralism)를 맹신한다. 종교적 도덕주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공격성을 표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러한 공격성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초기에는 교회의 게토화를 지향하다가 점차 정치적 도덕주의(political moralism)에 사로잡히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부터 불어 닥친 미국 사회의 근대화와 세속화의 바람은 그리스도인들 내에 미래에 대한 비관적 관념을 확산시켰고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적 신앙을 보수해야 한다는 “전투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이러한 강박관념이 초기에는 근본주의 교회의 게토화를 부추겼다. 하지만 이후 사회가 불안해지고 사회 병리적 현상이 심화하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되면서 근본주의는 정치적 도덕주의를 내세워 미국 사회 내 주류적 세력으로 부상하였고 공적 영역에서 강력한 폭력성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한 근본주의자들은 차별과 억압의 기제를 통해 사회·종교적 다양성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더구나 우파적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권력을 획득할 경우, 적대적 타자로서 반대자나 비판자에 대한 물리적 폭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당화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독재 초기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성속이원론에 기반하여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사독재에 협력함으로써 사회적 헤게모니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랜 군사독재로 인해 사회 병리적 현상이 심화하면서 한국사회가 폐쇄적으로 변하였고 근본주의는 사회적 주류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군사독재세력과 결탁한 근본주의자들은 개발독재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였다. 그들은 군사독재세력에 대한 비판을 비기독교적인 것으로 낙인을 찍었고 권위주의적 가치를 기독교적인 것으로 둔갑시켰다. 동시에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였던 이들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고 군사독재세력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였다. 그 결과 근본주의 교회들은 군사독재의 지원으로 양적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였다.

5. 가부장제

기독교 근본주의는 전근대적 가부장제(patriarchy)를 기반으로 한다. 근본주의는 남성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여성차별을 정당화한다. 물론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고대의 강력한 가부장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황제 숭배와 노예 제도에 기초하였던 로마 제국을 인정하였다고 해서 21세기에 왕정과 노예 제도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고대 문화의 한계로 인해 형성된 가부장제를 오늘날과 같은 성(性)평등의 시대에 아무런 해석의 과정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가부장제에 대한 집착은 기독교적 가치의 전도 현상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약한 성별”로서 과소평가하기에 “여성적” 특성들에 대해 필연적으로 저평가하고 여성이 남성과 같이 공동체적 삶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배제한다. 왜냐하면 가부장제는 단순한 가족체계가 아니라 권력을 위한 투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부상과 함께 이전의 모계 중심적 문화들은 쉽게 “선-사적”(先-史的, prä-historisch)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근본주의자들은 근대사회의 등장 이후에도 십계명을 비롯하여 구약의 일부 기록들을 통해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근본주의는 세속적인 경제체제인 자본주의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
근본주의는 세속적인 경제체제인 자본주의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

6. 신성화된 자본주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세속적인 경제체제인 자본주의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 이러한 가치 전도 현상은 ‘신성화된 자본주의’(sanctified capitalism)를 강화한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근대적인 경제체제로서 자본주의를 거의 종교적 가르침과 같이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경제체제가 종교적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신성화된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의 이익은 인간의 가치보다 우선하며 종교적 권위에 의해 모든 사회적 가치는 자본의 가치로 획일화된다. 더구나 신성화된 자본주의의 추종자들은 현실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공격성을 표출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근본주의가 전근대적 종교 전통에 대한 집착에서 출발하였음에도 경제적 영역에서 철저하게 근대적 가치 체계인 자본주의를 신성화하는 현상은 근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을 잘 보여준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가치 체계가 아무런 갈등 없이 수용되어 있다는 것은 근본주의가 신학적 담론이나 기독교적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신성화된 자본주의에 익숙하다. 왜냐하면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교회는 개발독재 이데올로기와 번영신학이 결합한 신성화된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군사독재세력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불가결하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크게 제한하였다. 개발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성장’이라는 환상을 통해 시민들을 통제하며 독재를 정당화하였다. 모든 사회적 가치는 개발과 자본의 논리에 적합하게 획일화되었고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극심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해야 했다. 권위주의적 사회는 경제적 영역에서의 풍요를 제외한 모든 사회적 욕구(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를 금지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경제적 성공에 대한 강력한 강박을 가져 왔다. 성공에 대한 사회적 강박은 경쟁을 격화시켰고 개발독재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집단 외상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심화하였다. 더구나 ‘성공한 소수’의 우월감과 ‘실패한 다수’의 열등감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건강한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악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변질된 사회적 욕망은 권위주의적인 사회체제가 강화될수록 현실을 왜곡하여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망상과 허상을 필요로 했다.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의 번영신학과 한국의 개발 독재 이데올로기를 결합시켜 한국적인 번영신학을 만들어 냈다. 번영신학을 받아들인 한국교회는 자본주의를 신성한 체계로 선전하였고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풍요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르쳤다. 현실 도피 욕구와 현실의 왜곡을 필요로 했던 이들은 한국식 번영신학에 열광하였고 한국교회는 앞다투어 이런 흐름을 쫓아갔다. 하지만 신성화된 자본주의와 이를 정당화하는 번영신학은 일종의 우상숭배와 그 우상숭배를 부추기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III. 나가며

기독교 근본주의는 근대성을 거부하는 왜곡된 심리가 양산한 종교 병리적 현상이다. 근본주의자들에게 이성과 합리성은 기독교 신앙과 대립하며 세속화는 기독교적 가치를 무너뜨리려는 사악한 계략일 뿐이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권위주의와 차별 기제를 강화하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종교적 배타성을 강화하고 전근대적인 전통에 대한 집착을 자극하였다. 이 집착은 한편으로 내적으로 분리주의적 강박관념으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 비판자(혹은 반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표출되었다.

근본주의는 사회가 개방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발전할 때에는 폐쇄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소수의 종교 운동으로 머문다. 하지만 사회 병리적 현상이 심해지면서 사회적 불안이 가증되면 정치적 권력이나 사회적 헤게모니를 쥐게 되고 극우적인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파시스트 운동으로 변질된다. 한국교회 내 근본주의의 문제를 냉철하게 파악하여 비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문제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점진적으로 편집증적 공산주의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로, 군사문화를 넘어 민주적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교회가 몰락의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왜곡된 근본주의의 가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공적 영역에서의 기독교 근본주의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성철 목사
박성철 목사
정치신학연구소
교회와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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