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교회를 흔드는 실체, 근본주의를 파헤친다 (6)
정통교회를 흔드는 실체, 근본주의를 파헤친다 (6)
  • 한국일 목사
  • 승인 2022.11.0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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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와 선교적 교회로

 

한국 개신교를 지배하는 신앙은 근본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 개신교를 지배하는 신앙은 근본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교회 신앙은 70%, 학자에 따라 90%가 근본주의적 신앙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반드시 한국교회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교회 신앙의 성격을 보면 대부분 보수적인 것은 맞는데, 그 중에 근본주의와 보수적 복음주의, 복음주의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학자에 따라 한국교회 신앙은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이 미국의 제2차 각성대회의 주역을 담당했던 무디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서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졌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다른 입장은 그 당시는 아직 미국에 근본주의 신앙운동이 발생하기 이전으로 부흥과 회개운동으로 그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근본주의 신학은 1920년대 미국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이후에 온 선교사들은 가능하지만 초기 선교사들은 청교도신앙과 부흥운동의 영향을 입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가장 넓고 강하게 영향을 미친 신학은 근본주의 신학이다. 한국교회가 근본주의 신앙을 갖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아직 논쟁 중에 있다.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미국 선교사에 의해서 이식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다른 입장은 선교사의 신학은 근본주의가 아니라 온건한 복음주의 신학의 배경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자를 주장하는 입장은 한국교회가 대부분 근본주의적 영향을 입은 것이 선교사의 편협한 신학 때문이라는 것이며, 후자는 선교사의 신학을 근본주의가 아니라 복음주의로서 미국에서 내한한 초기 선교사들은 아직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기 이전 시대로서 제2차 각성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며, 복음주의 운동이 지향하는 폭넓은 선교관을 실천하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내한 선교사들은 영혼구원을 강조하였으나 그것과 함께 교육을 통한 문맹퇴치와 지도자 양성, 의료 활동, 생활양식의 개선 등 온건한 차원에서 개인구원과 사회적 발전을 선교활동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한국 개신교는 근본주의 또는 보수적 복음주의 성향으로 인하여 80년대까지 짧은 시간 내에 국내에서 급격하게 부흥, 성장하였지만, 바로 그 근본주의 성향이 이제는 반대로 국내와 해외 지역에서 선교를 어렵게 하는 장애가 되고 있다. 개신교 선교가 시작되던 시기는 한국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심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19세기말 서구 열강이 전 세계에 식민지를 세우던 시기에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국가상황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태로운 시기였으며, 더욱이 일본으로부터 침략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서구 열강들과 외교관계를 맺기 시작하였지만 누구도 진정으로 한국의 입장에 서 있는 우호국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내한한 선교사들로 인해 복음이 전파된 이후 짧은 기간에 엄청난 수용성으로 전국으로 확장된 것은 당시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당시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개인이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국가의 존망에 직면하여 유일한 대안으로 선택하였다. 선교 초기 및 일제 강점시기에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은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해방과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였으며, 성경에서 발견한 출애굽 사건은 한국교회에 중요한 신앙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어쩌면 개신교는 이런 극한 상황에 직면한 한국 상황에 유일한 희망으로 보였다.

물론 기독교 배경 뒤에는 근대화된 서구 국가들의 종교라는 점에서 그들의 국력과 문명에 대한 매력적인 요소도 작용하였으나, 오랫동안 강대국에 치여 살았던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는 개인의 문제 뿐 아니라 국가가 직면한 비극적 운명을 새롭게 만들어 줄 힘이라고 생각하였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내세의 구원 만 아니라 사회를 개혁하는 현실적인 힘으로 받아들였다. 구한말 무너져 가는 대한제국을 바라보면서 몰락한 왕족과 양반들이 죽어가는 국가를 살릴 수 있는 최고의 명약을 찾고 있었을 때 누군가 구약과 신약이 유일한 약이라고 소개하였고, 그것이 왕족으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런 사례들은 기독교에 대한 한국인의 현실적 기대감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케 한다.

한국에 전파된 개신교는 보수적 신앙의 강력한 힘으로 한국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초기 개신교 신앙을 형성하며 선교활동의 동력이 되어 온 보수적 또는 근본주의적 신앙의 이중적 역할을 잘 이해하고 진단하여 그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지 않으면, 이제 개신교는 한국사회에서 선교는 물론 존재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 선교의 특징: 근본주의 신앙의 영향을 받은 선교

한국 개신교를 지배하는 신앙은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바와 같이 보수적 신앙을 넘어 근본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 개신교의 특성을 보자면 내세 중심의 구원론, 방주적 교회론,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 편협한 신앙관, 교리를 강조하는 분리주의적 특성, 공격적 전도와 선교 방식 등과 같은 전형적인 근본주의 신앙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의 한국교회 선교의 주력형태이다. 물론 이런 평가가 다른 형태의 선교를 함께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한국교회 선교초기부터 중국 산동성 선교나 러시아 지역의 선교를 현지 교단과 협력관계를 기초하여 수행하였다. 그러나 선교초기 선교와 달리 한국교회가 점점 일반적으로 근본주의적 성향을 갖게 된 이유는 1930년대 후반에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을 배우고 돌아온 학자들의 영향과 정치, 종교, 문화적으로 한국사회가 처했던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근본주의적 성향을 더 선호하거나 강화되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기존의 불교나 유교에 비하여 힘있는 종교, 강한 종교로 출발하였으며, 이런 성향이야 말로 개신교의 급속한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근본주의 신앙에 선교에 미친 영향들을 살펴보자.

선교의 목표로서 개인(영혼)구원을 강조

한국에 온 초기 미국선교사들은 대부분 제2차 각성운동을 통해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에서 강조한 것은 회개와 영혼구원이었다. 여기에 정치 사회적으로 어두웠던 한국의 상황이 심리적으로 작용하였다. 그것은 1919년 삼일 운동의 실패와 그 이후 더욱 강화된 일제의 탄압으로 독립의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은 현실에 희망을 상실하게 되자, 이용도 목사 같은 신비주의적 종말론자들에 의하여 기독교 신앙은 신비주의와 곧 오실 예수의 재림을 고대하는 종말론적 신앙이 강조된다. 이러한 종말론적 신앙은 한국교회에 오랫동안 작용하여 7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심령 부흥회에 핵심 주제였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예수 재림을 강조하는 전천년적 설교가 중심 메시지였고, 어떤 면에서는 마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본문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된 이후 예수가 재림하신다”는 내용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예수의 재림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전도와 선교를 강조하게 되었다. 전천년설에 근거한 임박한 종말론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악으로 가득한 비관적 세계관과 태도를 갖게 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교회를 방주와 도피처로 인식하면서 교회중심적 신앙을 형성해왔다. 사회와 가정에서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는 유일한 안식처였으며, 이런 특성은 자연스럽게 모이는 교회를 강조하는 교회중심적 신앙관을 형성하였다. 교회를 중심으로 주일성수와 수요예배, 금요기도회와 새벽기도 외에도 교회에서 개최하는 다양한 구역모임과 성경공부에 성도들이 참여하는 것은 처음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앙관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중심적 신앙은 교파주의와 함께 개교회주의를 강조하는 한국교회의 특성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방주적 교회론

19세기의 선교는 개인구원과 교회개척이 활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한국에서의 선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개인구원과 함께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하여 자립을 실현하는 것이 선교의 목표였다. 네비우스 원칙으로 알려진 삼자원리(자립, 자치, 자전)가 한국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것은 특이할 만한 사항이다.

교회개척은 선교사들이 강조하였지만 이러한 선교전략을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매우 자발적이며 헌신적으로 응답한 결과이다. 교회개척은 많은 경우에 한국교회 성도들에 의해 실천되었다. 이렇게 교회가 강조된 것은 선교 초기부터 강조한 선교관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역사적 상황도 함께 작용하였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 속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성전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에 교회 건물을 예배당으로 부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헌신과 동일시되었다.

한국사회가 기존의 불교와 유교, 민간신앙이 존재하였던 다종교 사회이며, 사회적으로 또는 가정에서 핍박을 받았던 현실을 고려하면, 교회건물은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유일한 피난처이며 안식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건물 중심의 교회론은 세상 안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을 보지 못하고 신앙을 교회 안에서의 예전적 행위로만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경기독교”의 이중적 현상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성경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였다. 교회사가들은 이러한 한국교회를 “성경 기독교”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 교회는 미국에서 선교사들이 오기 이전 에로스역으로 불리는 한글성경과 이수정 역본을 가지고 있었다. 언더우드 글을 보면, 선교사가 한 번도 전도한 적이 없는 평안도 지역의 교인들 30여명이 모여 세례 받기를 원하는 서한을 보내었는데 이들은 모두 성경을 구입하여 읽고 공부하다가 신앙을 갖게 된 자생적 그리스도인이었다.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내한하면서 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때 그것을 촉진한 활동은 사경회였다.

사무엘 마펫 선교사가 1910년 에딘버러에서 한국교회를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당시에 이미 전국적으로 사경회 운동이 조직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성경이 신앙의 중심이 된 것은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에서 활동할 때 경전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그들 손에 경전 대신 성경을 들려주면 앞으로 세계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말한 예언이 중국이 아니라 유교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 실현된 것이다.

길선주 목사가 성경을 오백 번 통독하며 계시록을 일만 번 통독 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성경통독이 한국교회에서 중요한 신앙의 전통이 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축자영감설에 근거한 성경무오설과 같은 이론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종교와 평화로운 공존을 거부한 배타적 신앙

한국교회는 함께하는 타종교에 대하여 매우 배타적이며 공존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장로교회가 1913년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그 선교의 동기가, 중국이 한국에 유교를 전해주어 동방예의지국이 되게 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한국교회는 함께 공존하는 타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며 공존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편협한 선교관을 갖는다. 선교의 동기나 열정은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과 비례한다. 개신교의 배타적 구원론과 함께 기독교로의 개종은 이전에 믿었던 불교와 유교, 민간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신앙을 갖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후에 떠나온 옛 신앙과 함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한국인의 기질은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을 가진 주변국과 다르게 여러 종교를 같이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한 종교만을 선택하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른 종교에 대한 강력한 배타적 태도를 갖는 성향이 있다.

이런 개신교의 배타적 구원론은 더 나아가 공격적인 선교관 형성의 원인이 된다.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선교를 향한 열정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해외 선교 프로그램으로 행하는 땅밟기, 타종교 사원 앞에서 통성으로 기도하기, 백 투 예루살렘 등은 주로 선교단체들에 의해 진행되지만 적지 않은 교회들이 단기선교 때 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활동은 한국교회 선교의 익숙한 프로그램으로 전형적인 근본주의의 전투적 신앙을 선교에 적용한 사례이다. 신앙과 선교에 열심을 가질수록 전투적이며 공격적이 되는 것이 한국 근본주의적 개신교의 특징이다. 한국의 개신교는 다종교사회에서 다른 종교와 평화로운 공존의 관계에서 선교하는 것을 신학적으로나 선교적으로 배우지 못하였다. 타종교와 평화로운 공존에서 선교하는 건강한 종교신학이 형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전투적인 십자군의 영성에서 십자가의 영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전투적인 십자군의 영성에서 십자가의 영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친자본주의 성향을 가진 한국 기독교

한국의 근본주의와 보수 교회들이 세계교회협의회(WCC)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용공단체라는 비난이다. 한국기독교는 한국전쟁을 통해서 공산주의의 부정적 경험이 컸기 때문에 반공주의 이념으로 강하게 무장되어 있다. 이런 성향으로 건강한 사회주의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며, 사회 각 분야에 균형을 추구하는 진보진영을 공산주의와 동일시하며 거부한다.

자본주의가 가진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부의 양극화 현상이다. 자본주의의 이런 독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의 생산뿐만 아니라 공정한 분배를 위하여 북유럽 국가들이 실행하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보완되어야 한다. 독일의 보수정당의 하나인 기독교사회당(CSU)은 정치적 보수성을 가졌음에도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결합하여 자본주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전형적인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북유럽 국가들과 같은 좌우의 균형을 이룬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교회들은 더 나아가 성장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현세의 물질적 축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에 열심을 가질수록 세상이 주는 탐욕에 더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보수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극우성향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한국교회의 급성장은 경제성장 시기에 함께 실현되었다. 이런 현상은 한국교회가 성공과 치부와 같은 세속적 가치를 신앙의 이름으로 수용하여 추구하게 하였다. 특별히 이런 현상은 70년대 급성장한 대형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교회가 현 사회체제의 모순을 발견하고 건강한 사회로 변화되는 일에 참여하기보다 오히려 사회의 기득권층 의식을 가지고 현 체제를 고수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근본주의를 넘어서 진정한 하나님 나라와 선교적 교회를 회복하는 길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근본주의적 성향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신앙과 사고가 성경을 편협하게 그리고 왜곡된 해석과 적용으로 시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절대적 교리로 받아들여 수많은 교파분열과 배타적 태도는 사회적으로 공신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 신앙은 현실사회와 적절한 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분리하는 이중적 신앙을 형성하였다. 선교 초기에 한국사회에 희망을 주었던 강력한 신앙이 교회와 선교에 활력으로 작용하였지만, 이제는 그 역기능이 너무 심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여 개신교의 이미지는 밑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오늘의 상황에 선교적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편협하고 배타주의적 근본주의 신앙을 극복하고 새로운 개신교의 정체성과 선교관을 정립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신앙회복

선교의 목표는 예수의 복음 선포(막1:15)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이다. 구원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출발하는 시작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평생 구원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 개인의 영혼구원이 평생의 신앙의 목표로 삼는다면, 기독교신앙은 매우 단편적이며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한다.

더욱이 구원을 내세에 주어질 천당으로만 이해하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약해지고,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도피적이거나 심판자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신앙과 선교에 열심일수록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강화된다.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고 실천하도록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행위이다. 선교는 하나님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변호하는 행위이다.(창18:22) 산 안토니오 선교대회(1989)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하여 심판자의 자리가 아니라 증인의 자리에 세워졌다.

한국교회는 구원의 특별한 사건을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요3:16)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여 그 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인 것 같은 배타적인 사랑이 아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정의와 평화, 생명존중을 실천하며 특히 약자와 동일시하신 예수를 구원자로 믿고 또한 그의 삶을 따르는 사람이다.

-공교회 회복과 교회론의 확장

한국교회의 문제는 대럴 구더가 언급한 바와 같이 축소주의적 신앙관과 교회론에 있다. 구원의 방주, 교회와 세상을 성속으로 분리하는 이원론적 교회론, 건물 중심의 교회론 등이다. 교회론은 신앙의 넓이와 깊이를 결정한다. 편협한 교회론은 신앙의 범위를 제한한다..

한국교회는 교파주의와 개교회주의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개교회가 강화되었지만 공교회 이해가 부족하다. 자신이 속한 교회경험을 교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의 우주성,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교회가 서 있는 토대이다(엡1:23).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과 교회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교회절대주의는 구별된다. 선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이며 교회는 자신의 인식과 경험보다 더 크고 넓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은 공동체다.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를 통해서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를 유대인 중심의 구원관과 교회관으로부터 이방인과 세계 선교를 향해 인도하신 것을 주목해야 한다. 현실적 교회는 인식과 경험에서 언제나 시대와 상황의 제약 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보다 앞서 가시며 교회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선교이다. 교회의 사명은 교회 자체에 있지 않고 세상의 변화에 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변화를 실현하는 것이 선교적 사명이다.

-메시지와 메신저가 일치하는 선교

한국교회는 복음의 불모지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복음을 들려주는 것을 전도와 선교에서 중요한 활동으로 인식하고 실천하였다. 이런 전도방식은 적어도 70-80년대까지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다. 짧은 기간에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초대교회부터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공동체의 사회적 공신력은 선교를 실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인프라다.

그러나 90년대부터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이 약화되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교회가 급성장하는 과정에 세속주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 것이다. 세상은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와 메신저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모순을 보고 있다. 교회가 성장하고 대형화 할수록 오히려 교회의 윤리적 상황은 사회적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는 이제 메시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메신저를 원하고 있다.

전도와 선교를 주로 교회의 특별한 활동으로 수행해온 기존의 선교방식에 전환이 와야 한다. 이제는 복음을 말로 전할 뿐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동안 교회의 활동으로 전도하였다면, 이제는 지역사회와 직장과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상의 삶을 통해서 복음의 실현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회의 이런 요구는 우리 시대에 적합한 선교방식일 뿐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의 성숙함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다종교 사회에서 평화로운 공존에 근거하여 사랑과 관용을 품고 실천하는 선교

한국사회는 다종교사회이며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다문화사회이기도 하다. 더욱이 점점 우리 사회에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다민족 사회로 이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증대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종교사회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선교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하였다. 기독교를 선택할 때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개신교는 다종교에 대하여 공존하기를 어려워하며 특히 선교관이나 정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선교가 가장 힘든 이슬람 국가들에게 선교사를 파송하며 막대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으나, 막상 우리나라를 찾은 무슬림들을 적대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갖는다.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는 편협한 종교이해를 가지고 있으나, 역사적으로는 삼일운동 당시 불교와 천도교와 함께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협력한 사례가 있으며 현실적으로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다종교인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국사회가 점차적으로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 사회로 이전하는 중이고 또한 이런 현상은 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이제껏 다른 가치나 낯선 상대를 대할 때 지녔던 이중성을 극복하고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면서 선교하는 법을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개신교는 강하고 힘 있는 종교에서 자기를 비우는 예수의 십자가의 영성과 삶을 받아야 한다.

한국교회 초기에 교회는 사회적으로 소수자에 머물렀지만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는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영향력을 특권의식이나 지배자의 논리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토대가 되는 십자가의 영성에 대한 무지 또는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독교인의 사회 영성에 대한 오해가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 현대 한국교회의 도덕적 위기는 단지 기독교 지도자들의 비도덕적 행위에 있지 않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러한 행위를 유발하게 된 한국 교회의 영성이 병들었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전투적인 십자군의 영성에서 십자가의 영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참된 기독교 영성 회복은 십자가의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로부터 주어진다. 선교는 교회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근본주의 신앙은 힘 있는 기독교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음의 참된 힘은 교회 내적으로 형성되어야 하며, 사회와 타인에 대하여는 사랑과 겸손, 관용의 표현으로 나타나야 한다.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외형적으로 사회에서 영향력이 드러날지라도 정교가 분리된 세속사회와 다종교사회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바른 영성은 십자가의 영성이다. 그것은 물질적 탐욕과 세상적 인기와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 안에서 강하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연약함으로 섬기며 증인으로 살아가는 “연약함의 신학”, “십자가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선교는 공생애 중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며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을 담당하는 예수의 삶을 실천하며 증거하는 것이다.

지난 2일 퇴임식을 가진 한국일 교수.
한국일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은퇴교수,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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