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실존과 미술
[예술과 목회] 실존과 미술
  • 신사빈 박사
  • 승인 2022.09.27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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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 <문(門), A Gate> 1938년

‘실존’이라는 용어를 처음 철학의 중심 무대로 올린 사상가는 실존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덴마크 사상가 쇠얀 키에르케고어 였다, 그는 헤겔주의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이성의 사변시스템 안에 가두는 것에 대한 반발로 신앙은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 개인의 내적인 문제임을 증명하는 차원에서 실존개념을 세상에 내놓는다.

‘실존’의 라틴어 어원 ex-istare는 문자적으로 “밖에 서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밖’이란 이중의 밖을 말한다. 일상의 밖과 존재의 밖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밖에 홀로 서서 존재를 향하는 것이 실존이다. 그래서 실존자는 온전히 일상에도 존재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일상과 존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경계인이며 고독과 불안정(unstable)함을 특징으로 지닌다.

실존에서 존재로 나아가는 것은 오직 ‘순간’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성이 세상의 시간으로 침투하는 양상이 찰나 곧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은 시간의 핵이자 영원의 시간이다. 순간이지만 영원으로 다가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다. 그러나 그 순간은 너무도 초월적이다. 이성적 사변으로는 결코 해명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이성의 한계에서 저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따를 때 체험된다. 그래서 존재는 나의 힘을 벗어난다. 존재는 존재하려는 의지만으로는 안된다. 나의 존재 의지와 저쪽으로부터 오는 존재의 부름이 만나 합일을 이룰 때 일어나는 사건이다.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 안에 존재의 부름이 내재한다고 본다. 예술 작품은 상징(symbol)이다. 상징에는 시와 신화, 성서가 대표적이고 문학, 미술, 음악 등 모든 예술 작품도 상징이다. 상징은 분명한 과학 언어도 논리적인 개념 언어도 아니다. 일차의미 안에 이차의미가 내재하는 수수께끼 같은 언어이다. 이차의미 안에 과학적,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의 영역이 함축된다. 그래서 상징에는 존재의 힘이 내재한다. 그 힘이 나를 존재로 이끈다. 그렇게 미술작품은 우리의 실존 안으로 들어와 존재로 나아가는 준(準) 믿음의 길에 동행자가 된다.

종교적 믿음이 너무 초월적이라면, 미술작품을 매개로 하는 해석의 길은 실천 가능하다.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작품 안에 내재하는 존재의 힘에 이끌려 새로운 자기 이해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작품 안에서 들려오는 존재의 부름을 듣고 그 소리를 내면화하여 새로운 자기 이해에 이름으로써 실존의 불안정함을 존재의 확신으로 바꾸어갈 수 있다. 그렇게 미술작품은 실존의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훈련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이데거는 파울 클레의 <문(門)>이라는 작품을 보고 마치 번개가 번뜩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30센티 가량의 작은 추상화 안에 자신이 평생 사유한 철학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는 그림 속의 문의 형상을 보고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죽음 앞에 담담히 홀로 선 자신의 모습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문(門)>은 클레가 죽기 1년 전 그린 작품으로 화려한 색은 다 빼고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무채색만 남겨놓은 작은 과슈화이다. 몇몇 도형 모양의 조합이 전부이지만, 이 모양들은 화가가 평생에 걸쳐 다듬어온 상징의 이미지들로 저쪽으로부터 오는 존재의 부름을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은 그림 안에 한 사상가의 사상 전체를 품는 힘이 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살다 보면 실존이 불안정하듯 신앙도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할 때 이런 그림 한 장이 믿음의 굳건한 닻이 되어준다면 미술은 분명 신앙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신사빈 박사<br>이화여자대학교<br>'미술사의 신학' 저자
신사빈 박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의 신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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