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커피를 내리다, 마음을 내리다
[전문가 칼럼] 커피를 내리다, 마음을 내리다
  • 안준호 목사
  • 승인 2022.09.27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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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적에는 커피는 타서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려고 할 때, “커피를 탈까?”라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인스턴트커피를 주로 마셨을 때, 커피는 그저 ‘타서’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커피를 내린다’는 말로 대체되었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통해서 커피를 만들 때, 전문적인 용어로는 ‘추출’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커피를 내리는 방식에 따라 ‘커피를 타다’, ‘커피를 추출하다’, ‘커피를 내리다’라고 그 표현이 바뀌는 셈입니다.

문을 열기 전에 저는 핸드드립커피를 통해서 커피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일산의 작은 이태리식당에서 핸드드립커피를 처음 마셨는데 그 맛이 좋았습니다. 제 삶에는 없던 향기와 상큼한 맛이 한순간에 들어왔습니다. 가게 주인께서 정성을 다해서 내려주셨는데 그분은 전문 바리스타가 아니라 주방장이셨습니다.

그 분의 정성을 다한 커피 한잔이 제 삶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었습니다. 나중에 그 분을 찾아갔지만, 이미 다른 가게로 바뀌어서 만나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마신 뒤 제 삶에서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 뒤로 저는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나서 작은 교육공동체를 꾸리고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은 뒤에 제가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오랜 시간동안 웃고 울면서 일상을 함께 했습니다. 그 가운데 동네 골목에 작은 카페가 생기게 되었고, 커피를 매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바울 사도가 한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5~8)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익숙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데 그 마음은 곧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면서 항상 이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고, 제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커피를 내리는 것은 마음을 내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커피는 타거나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행위입니다. 에스프레소 머신도 위에서 아래로 커피가 내려옵니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행위는 뜨거운 물을 커피에 붙는 일입니다. 뜨거운 물을 만난 커피는 가스가 폭발하여 자신이 머금고 있는 향과 맛을 서버로 온통 내려줍니다. 그리고 적당하게 내려졌을 때 드립퍼를 분리해 주어야 합니다. 결국 핸드드립 커피는 잘 내려야 맛있는 커피를 만나게 됩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는 자신을 물보다 커피를 더 좋아한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커피를 더 많이 알아갈수록 물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의 성질을 잘 간파하는 이가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습니다. 물의 성질을 알지 못하면 좋은 바리스타가 될 수 없습니다. 산위의 작은 골에서 시작한 작은 물은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시냇물이 되고 평지에 와서는 강물이 되고, 이내 바다와 만나게 됩니다. 그 가운데 물은 모든 대지를 적시고 물고기들의 살만한 집이 되고 농작물들을 자라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시원한 생수를 주기도 합니다. 아래로 흐르는 고요한 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치유와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커피를 내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래로 흐르지 않고 위로 솟구치는 물은 사람의 생명을 삼키기도 합니다. 얼마 전 태풍 힌남로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생명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아래로 흐르는 물은 생명을 살리지만, 위로 솟구치는 물은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입니다. 커피를 내리면서 제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어떤 이는 마음이 뇌 속에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인들에게는 그들의 맑은 눈에 마음이 있기도 합니다.

목수들에게는 망치를 든 그 손에 마음이 있습니다. 매일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도 그 손에 마음이 있습니다. 커피를 내리면서 마음을 내려 봅니다. 가장 낮고 낮은 곳까지 흘러가서 그곳에서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지금 이 곳에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우리들의 마음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아니면 높은 곳을 점령하기 위해서 태풍으로 솟구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높은 곳을 향하여 솟구칠 때, 우리들의 마음은 낮은 곳으로 평화롭게 흘러가야 할 것입니다.

안준호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참포도나무교회 목사 커피마을, 달려라커피 대표마을공작소 대표 가구제작기능사
안준호 목사
참포도나무교회 목사
이중직목회자연대 대표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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