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우의 후예(44) - 중국 화교 건축자재상과 담판
아라우의 후예(44) - 중국 화교 건축자재상과 담판
  • 엄무환 국장
  • 승인 2022.09.10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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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철원 집사(전 아라우부대장, 예비역 대령)

파병초기, 태풍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도시가 바닷물에 잠겼었기 때문에 건축자재를 파는 곳이 없었지만, 1월 말부터 서서히 건축자재가 반입되기 시작했다.

자재를 운반중인 고등학생들
자재를 운반중인 고등학생들

우리는 건축자재상에게서 자재를 구매하였으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재에 비해 공사소요가 워낙 많다 보니 자재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보통은 세부와 마닐라에서 배에 자재를 싣고 타클로반항에 정해진 날짜에 도착하였지만, 기상이 좋지 않으면 5~7일 지연되기도 하였다.

더욱이 항구로 들어오는 물동량이 폭주하다 보니 세관을 통과하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주둔지 공사업체도 베트남에서 자재를 들여오다가 세관에서 발이 묶여 주둔지 공사도 지연되었고 설상가상으로 현지에 공사자재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가면 계획된 공공건물 복구에 차질이 생길 것이 명백하였다.

나는 주지사를 만나 “자재 수급이 안 되어 복구공사에 차질이 예상되니 건축자재상들이 아라우부대에 자재공급을 우선적으로 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달라”라고 요청하였다. 주지사는 “나도 얘기를 해 보겠지만 워낙 여러 기관에서 건축자재를 구매하려고 하고 또 장사가 목적인 자재상들을 어쩔 수 없으니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해보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나는 우리와 주로 거래하는 자재공급업체 사장들을 부대로 초청하였다. 이들은 모두 중국 화교상인들로 큰 상인답게 2~3명의 수행인원들을 대동하고 부대로 찾아 왔다.

나는 자재 상인들에게 캠프를 안내하여 부대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보여주고 부대활동을 소개하였다. 이들은 우리의 컨테이너 숙소와 시설에 깜짝 놀라며 “군부대 방문은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으로 왔는데 한국군이 캠프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필리핀 주민을 위해 활동하는 모습이 감동입니다”라고 얘기를 했다. 이에 나는 녹차를 대접하며 좋은 분위기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그동안 여러분의 적극적인 자재지원으로 아라우부대가 학교, 병원, 양로원 등 공공기관을 복구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난 번 필리핀 대통령께서 우리가 복구공사를 하고 있는 타나완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얘기를 하라'라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정말 영광스러웠습니다. 한국 속담에 '좋은 부자는 백성이 재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때 재산을 불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곳 타클로반에 사상 초유의 재난으로 12,00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져 주민들의 삶에 터전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기회로 삼아 과도한 이익을 남기려 한다면 나쁜 사람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조상인 중국의 공자께서는(사실은 공자가 아니고 조선시대 제주 상인 김만덕의 말) '훌륭한 상인은 장사를 하면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남긴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익에 너무 눈이 멀다 보면 사람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이 자리에 초대한 것은 부하들로부터 '여러분이 상인의 도를 지키고 인품이 훌륭한 분들이다'라고 보고를 받아서 뵙고 싶기도 했지만, 앞으로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아라우부대는 건물 복구공사를 통해서 이익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고 모두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기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다른 단체보다 합리적인 가격과 자재 구매의 우선권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지원은 제가 잊지 않고 대통령을 포함한 장관과 주지사 등 정치인에게 꼭 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말에 자재상들은 한동안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아라우부대를 최우선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중국 사람은 손해를 보면 참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화교들은 장사 수완이 좋아 어디에서나 큰 이익을 취하는데 익숙하다고 한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폭리를 취하지 말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장사를 할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초청행사 후에 이들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재가 들어오면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판매를 하고 때론 외상으로 지원을 해 주었고 대금지급이 늦더라도 재촉하지 않았다. 다른 단체나 관공서는 공사자재 수급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아라우부대는 철수할 때 까지 어려움 없이 화교 자재상들로부터 자재지원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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