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칼스루에, 화해와 일치의 비전
[예술과 목회] 칼스루에, 화해와 일치의 비전
  • 임재훈 목사
  • 승인 2022.08.25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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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 1 Karlsruher Schloss 2014
칼스루에 궁성(Karlsruher Schloß),

1. 독일 서남부 라인강 상류지역(Oberrhein)의 도시 칼스루에(Karlsruhe, 1715)는 금년에 도시설립 307주년을 맞이한다. 로마제국 시대에 건립된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도시들이 숱한 유럽에서 이제 갓 300년을 넘어선 도시의 나이는 오래되었다고 내세울 것이 못 된다. 오히려 베르사유에서 시작해 러시아의 상트 뻬쩨르부르크(St. Pertersburg, 1703)에 이르기까지 18세기 내내 전 유럽에 확산되었던 바로크 계획도시(Planstadt)의 이상을 가장 잘 반영한 도시라는 데에 건도(建都)의 건축사적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2. 루이 14세 시기의 프랑스는 르네상스를 지나 그간의 축적된 문화·예술의 역량이 절대왕정이라는 정치권력과 맞물려 바로크 양식으로 폭발하던 시대였다. 파리 근교 베르사유궁성(Château de Versailles, 1661-1710) 증축 프로그램은 궁성의 중심부 ‘왕의 방’에서부터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세 갈래 길 조성을 위한 도시계획을 포함하였다. 이는 온 세계의 중심에서 세상을 호령하는 절대권력의 시각적 표현이었으며 소리 없는 전쟁과 외교의 상징이었다.

베르사유궁성(Château de Versailles, 1661-1710), Pierre Patel, 1668

18세기 동시대의 주변국들 특히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제후들은 경쟁적으로 베르사유를 모방해 새로운 집정궁성(Residenz)을 건설하였다. 중세 유럽을 흔들고 근세로 들어서게 한 종교개혁의 격변은 그 여파로 삼십년전쟁(Dreißigjähriger Krieg, 1618-48)을 유발함으로 독일 전역 대다수 중세도시들이 전화를 입는다. 특히 서남 지역은 프랑스와의 팔츠 왕위계승전쟁(Pfälzischer Erbfolgekrieg, 1688-1697)까지 더해 심각할 정도로 파괴된다.

당시 바덴(Baden) 변경의 방백 칼 빌헬름(Markgraf Karl III. Wilhelm v. Baden-Durlach, 1679-1738)은 잿더미가 된 수도 두얼락(Durlach)을 재건하지 않고 바로크 양식의 계획도시 칼스루에(Karlsruhe=Carols Ruh, 1715-19/1749-81)를 새로 건설하였다. 기존의 궁성을 증축한 베르사유와 달리 완전히 신축한 칼스루에 궁성(Schloß Karlsruhe)은 절대왕정체제(Absolutismus)의 시각적 표현을 의도한 바로크 건축이념을 더욱 충실히 반영할 수 있었다.

칼 빌헬름(Markgraf Karl III. Wilhelm), Johann Rudolf Huber, 1710

신도시 칼스루에는 우주의 중심을 뜻하는 원의 중심부에서, 즉 전면의 시가지와 후면의 정원 가운데 위치한 궁성에서 도시 전체(온 세계)를 조망하는 부채 형상의 도시(Fächerstadt/fan-shaped city)로 건설되었다. 도시의 모든 길이 궁성에서 시작하는 도로체계는 국운이 칼스루에와 바덴 지역은 물론 온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조형화 한 것이다. 한 도시에서 온 세계(oikoumene)를 품으며 지향한 것이다.

칼스루에 평면도(Grundriß), 1721

3. 그런데 칼 빌헬름은 도시를 건립하며 궁성을 마주한 장소에 자신이 속한 루터파 일치교회(Konkordienkirche)를 세우고 그 좌우에 개혁교회와 가톨릭교회를 지음으로 종파 간의 화해(confessional reconciliation)와 그리스도교회의 일치(unity)를 구상한다. 물론 그의 계획은 당대에는 루터파와 개혁파 교회만이 세워지고 가톨릭교회는 공터로 남겨졌다가 한 세기가 지나서야 도시의 다른 곳에 세워지는 것으로 지연된다. 하지만 이전 세기에 유혈의 종교전쟁을 겪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관용정책(Tolerant) 이었다. 앙리 4세의 낭트칙령(1598)을 폐기하고 퐁텐블로칙령(1685)으로 위그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루이 14세와는 다른 길을 간 것이다. 베르사유를 수용하되 화해를 전제로 한 일치의 에큐메니즘이 칼스루에 건도(建都)에 배여있다.

칼 빌헬름 당시의 칼스루에, 바덴 주립 박물관(Badisches Landesmuseum)

4. 그래서였을까 워싱턴 대통령의 위임으로 유럽의 도시들을 순방하며 미국의 새 수도 건설의 모델을 모색하던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1788년 4월의 칼스루에 방문 후 부채형 평면(fan-shaped city)에서 받은 인상을 건축가 피에르 샤를 랑팡(Pierre CharlesL'Enfang)에게 권유한다. 그 결과 워싱턴DC의 도시설계는 부채형의 칼스루에 도로체계와 같은 방사상 도로체계(Radial road system)를 지닌 도시로 전개된다. 미국의 도시들이 개척기에 토지매매와 교통편의를 위해 바둑판 모양의 격자 패턴(Grid Pattern) 도로체계를 기반으로 조성된 데 반해 워싱턴DC의 경우는 예외적이었다. 그리고 방사상 도로체계의 중심부에 국회의사당(Capitol)이 위치함으로 동시대 유럽의 절대왕정 국가와는 차별된 공화정을 실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정체(政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워싱턴DC Capitol Hill
워싱턴DC 평면도, Andrew Ellicott’s 1792 revision of the L’Enfang of 1791

5. 구한말 을미사변(1895)과 아관파천(1896)의 질곡을 경험한 고종황제는 1897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함으로 외세로부터 독립된 근대국가의 출범을 의도하였다. 당시 광무개혁(光武改革)의 일환으로 도시계획인 한성개조사업(1897-1905)이 한성판윤 이채연에 의해 주도된다. 그는 주미공사 재임 시 워싱턴DC에서 접한 방사상 도로체계를 경운궁(덕수궁)의 대안문(大安門, 대한문)을 기점으로 6거리가 조성되도록 적용함으로 현재 서울광장 주변의 방사상 도로의 기원을 이루게 한다. 칼스루에에서 비롯된 한 도시에서 온 세계(oikoumene)를 품으며 지향하던 이상이 위싱턴DC를 거쳐 서울광장에까지 연결된 것이다.

서울광장, 일제의 말살시도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 당시 조성된 육거리 도로체계를 확인할 수 있다.

6. 칼 빌헬름의 화해와 일치의 비전(Vision der Versöhnung u. Einheit)은 오는 8월 31일-9월 8일,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Christ’s love moves the world to reconciliation and unity)를 주제로 칼스루에에서 개최됨으로 현실에 근접하게 되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게 된다. 아울러 팬데믹과 기후변화 앞에서 인간존재의 연약함이 노출되듯, 직전 부산총회(2013)에서 바닥까지 드러난 한국 사회와 교회의 분열과 갈등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드린다.

칼스루에 전경(Schloss u. Fächerstadt)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 포스터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 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 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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